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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g May 03. 2024

독일이 패셔너블하지 않은 이유

독일이라는 나라 이미지를 생각했을 때 패션은 곧바로 이어 생각나는 단어는 아니다. 미학이라면 모를까. 사실 칼 라거펠트와 질 샌더 등 유명 디자이너는 물론이고 유럽에서는 꽤나 성공적인 몇몇 의류 브랜드 중에서도 독일 출신이 있는데도 말이다. 베를린의 독일의 패션 구원자가 될 거라는 말도 있지만, 베를린을 곧 독일이라 칭하는 것은 적지 않은 비약이다. 바로 여기에 중요한 이유가 있다. 독일이 패셔너블한 나라가 되지 못한 이유가.


특정 사회 현상의 원인을 명확하게 무엇 때문이라 정의할 수는 없다. 다만 독일 사람들도 이웃 나라인 프랑스나 이탈리아에 비해 왜 독일스러움이 곧 패셔너블하지 않은 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을 세우고 있는 것 같다. 독일과 패션은 왜 맞지 않는 단어인가, 독일은 왜 패션 국가가 아닌가 하는 담론이 종종 보이는 것을 보면  말이다. 개인적인 의견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모아 보니 나름의 이유가 있기는 하다.


우선, 독일은 연방 국가다. 각 주의 의회가 따로 있으며 바이에른의 경우는 정당도 따로 갖고 있다. 몇몇 법의 경우는 자치권에 의해 주마다 다른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학교 시스템이다. 독일의 수능과 비슷한 고등학교 졸업 시험인 아비투어(Abitur)는 주마다 각기 다르고, 초등학교 졸업 이후 인문계 고등학교를 어떻게 진학할 수 있는지 여부 역시 주마다 다르다. 학제 역시 주 자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바이에른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면 다른 주에 비해 1년을 더 다니게 된 적도 있었다. 지금의 '통일된 독일'이 된 지도 35년이 안 되었고, 그 이전의 여러 왕국 통일 역시 19세기 말이나 되어야 이루어졌다. 이 때문에 어떤 곳에서 하나의 유행이나 스타일이 시작된다고 해도 그것이 독일어권의 다른 작은 국가들로까지 쉽게 퍼지지는 않았다. 


옆나라 프랑스는 그 반면 오랫동안 하나의 왕국을 이루었고, 왕권이 강해지면서 왕족 및 귀족이 곧 셀러브리티가 되었고, 파리는 최첨단 유행이 시작되는 곳이 되었다. 런던 역시 많은 사람들이 왕족과 귀족의 스타일을 선망하고 모방하는 패션의 수도였다. 전쟁 이후 베를린의 재단사들도 파리의 스타일을 따라한 옷을 많이 제작했고, 1세대 독일 패션 디자이너라고 할법한 사람들 역시 자주 파리에 방문해 영감을 얻었다. 칼 라거펠트만 해도 아예 파리로 건너가 60여 년동안 프랑스어를 쓰며 생활하지 않았나.


또다른 관점은 종교와 관련된 해석이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 개혁이 일어난 나라가 독일 아닌가. 전체적으로 나라를 강하게 휩쓸었던 개신교 교리, 그중에서도 루터교와 절약 및 금욕 정신이 만나 방임적인 생활방식에 반대하는 풍조가 만연했기 때문에 비교적 '사치'와 쉽게 연결되는 외모 치장 역시 사람들의 주의를 끌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지금부터 몇 백여 년 전만 해도 종교관이 일상 생활 및 사회의 가치관에 미치는 영향이 어마어마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현대로 넘어오면 프랑크푸르트 학파와 68운동이 등장한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여러 유명 사회학자를 배출한 학파로 현존 사회를 비판하고 대안 사회 비전을 제시하는 ‘사회비판이론’으로 유명한 연구소다. 서구 중심주의적 성격으로 비판을 받는 면도 있는데, 개인과 주체의 합리성, 자율성, 독립성 등 서구의 계몽사상과도 연결되어 있다. 독립적인 개인의 자율적 합리성으로 전체주의에 동조하지 않고 비판적 의식을 취하는 것. 과연 트렌드에 탑승하는 패셔니스타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68운동은 탈권위 및 평등주의 운동으로 역시나 기성 사회에 의문을 제기하고 기존의 규칙에 도전하는 운동이었으며 반소비주의 운동의 성격도 띄었다. 트렌드를 따르든, 각자의 개성에 의한 것이든 겉모습을 꾸미는 패션 스타일링은 필연적으로 개개인을 구분짓기 마련이다. 자본주의 맥락에서는 특히나 개개인의 재력이나 사회적 위치를 표현하기도 하였으며 소비와는 뗄 수 없는 관계다. 즉, 68운동 정신과도 거리가 있다.


요약해보면, 독일은 어떠한 유명인 또는 스타일 롤모델을 정해놓고 그들의 패션을 모방하는 '트렌드'가 발생하기 쉽지 않은 작은 개별 왕국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종교 개혁 이후 개신교 교리 및 절약 정신이 사회적 풍조가 되었으며, 현대에 들어와 등장한 유명 철학 학파 및 사회운동 또한 권위나 집단에 따르지 않는 방향성이었다. 아직까지도 독일의 학교에서는 비판적 사고를 강조하는 교육을 중점적으로 하는데, 이는 소위 어떤 대세나 트렌드가 있을 때 한 번 더 '왜?'하고 묻는 습관을 들인다. 설명이 길었지만, 이것이 바로 왜 독일이 패셔너블하지 않은 지에 대한 변(辨)이다.


독일어 단어

der Stil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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