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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기념관

잎새

by 미하

시인 윤동주와 관련된 서울의 몇 곳 중 연세대학교 핀슨관에 자리 잡은 윤동주 기념관을 찾기로 한 데는 이유가 있다. 독립된 나라의 후손 하나는 사사로이 사랑을 찾아왔다.


이곳의 전신은 서울 연희전문학교로 핀슨관은 윤동주와 그의 벗들이 재학 기간에 머물렀던 남학생 기숙사다. 그 친우들은 훗날 회고(정병욱)와 유고 시집에 실린 발문(강처중)을 통해 그의 사랑에 대해 언급했다. 연희전문학교 시절이었다.


윤동주의 사랑은 가까운 친구들에게도, 그 대상인 당사자에게도 내보이지 않는, 수줍고도 힘써 감추는 사랑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그 사랑의 흔적을 만날 수 있을까.


정문이 아닌 후미진 곳에서 버스를 내린 탓에 긴장이 앞선다. 지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지금 서 있는 곳 간호대학 근처는 핀슨관과 꽤 거리가 있다. 한참을 걸어야 한다. 캠퍼스가 너무 크다. 내 머릿속처럼. 헤매지 않고 잘 찾아갈 수 있을까.


매번 헤매는 것은 길이 아니라 길 위의 너.

부유하고 있어 한 번에 잡을 수 없다. 먼지처럼 반짝이며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간다. 바람이 불어 감정이 땅 위의 낙엽처럼 들떠 소용돌이친다. 인정하긴 싫지만 이 감정에 길들어 있다. 언젠간 이 벽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오늘은 일단 바람이 무척 거세다. 그래서 같이 거세어지는 한숨.


도슨트 예약 시간은 1시인데 다행히 십 분 전에 도착한다. 5분 전부터 입장이 가능해서 잠시간 계단 아래에 세워진 윤동주 시비를 본다. 원래는 제목이 없었던 시 <서시>가 새겨져 있다.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그토록 작은 바람이 마음을 훑는다. 쓰라리게 흔들린다.

너는 바람처럼 나를 흔든다.


도슨트를 2명이 예약했는데 한 명이 오지 않아 본의 아니게 전세를 낸다. 그래서 설명을 더 열심히 듣는다. 리액션도 좋고 퀴즈 성적도 좋다. 열성의 참여자는 도슨트를 기분 좋게 만든다.

너도 그런 기분을 느껴볼 수 있을 텐데, 나는 그걸 아직 모르는 네가 안타깝다.


기념관은 3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옛 기숙사답게 여러 개의 방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것이 이곳을 더 기념관답게 만든다. 조형물, 영상, 소리, 낭독 등 예술 다방면의 콜라보를 전시한 방들도 있다.


어떤 방들에는 특수 제작된 듯한 큰 서랍장이 있고 기증품들이 빼곡히 잘 전시되어 있다. 서랍장 위에 배치된 라이트 돋보기로 사진과 친필 원고 글씨를 본다.

사진 속 윤동주는 거의 항상 가장자리에 있다. 중앙에서 찍은 사진은 마지막 사진 한 장뿐이다.

윤동주의 장난기를 엿볼 수 있게 자그마한 거울도 구비되어 있다. 거울로 봐야만 제대로 볼 수 있는 글자가 있다. 내 마음의 거울, 네 생각 속에 숨은 글자들은 어떤 모양이지.


1938년 7월 25일 금요일 12시가 재현된 기숙방에서는 윤동주의 숨결에 닿기라도 한 듯 잠시 이상한 기분에 빠져든다. 침대에 이불이 정갈하게 흩어져있다.


2층에 올라 기념관의 수장고도 직접 열어본다.

네가 잘 보관되어 있다. 온도와 습도도 적당하게.

그리고 넓은 공간에 윤동주와 관련된 많은 장서가 수집, 기증되어 진열, 보관되고 있다. 꺼내어 볼 수도 있다.

그리고 번외로 3층에서 열리고 있는 고 김수영 시인의 유고 특별 관람을 한다


자유 관람 시간이 한 시간 반 정도 더 주어진다. 처음부터 차곡차곡 윤동주를 되돌아본다.

너와 함께.


마지막으로 3층 햇빛 드는 창가에 마련된 책상에 앉아 방명록을 작성한다.

너로 인해 느끼는 내 마음을 윤동주 시인과 앞으로의 미지의 방문객들에게 하소연하듯 써버린다.

그리고선 뭘 한 거지 싶어 낯에는 열이 오르고 부끄러워진다. 얼른 그곳을 빠져나온다.

내보이지 않는, 수줍고도 힘써 감추는 사랑을 이곳에 드러내놓고.

그렇게 윤동주 시인의 사랑의 흔적은 나의 글씨가 되어 이곳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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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며 머물며, 오늘의 BGM>

Love Poem (by 아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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