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더 아껴 두어야 할 곳이 있다면 미암일기를 보러 가는 것이다 아내의 시를 엮어 둔 목판본 일기, 그의 서체를 보러 가는 날은 서둘러 나무향을 넘겨보지 말아야 할 일이다
꼭 오늘이어야 한다는 이유는 없겠지만 비의 행간으로 묶인 날이었지 내게 남은 한 사람의 비가(悲歌) 형식이 아니어도, 아름다운 해서체를 흘러내리듯 썼을 거라는 짐작은 있었지 미음으로 마무리 지어지던 저녁, 당신을 부르는 것 같아 입이 닫히지 않았지
책판은 유리 안에서 나를 내다보고 있지만 물 밑 수장고에 얼마만큼 쌓여 있는지, 어떤 행간이 숨어 있는지 숨겨 둘 일, 아내의 시구절을 자신의 마지막 서책에 붙여 일기의 형식은 무사히 마무리했다 그 시절의 꿈이 시편마다 스며든 아내의 종이책, 끝내 찾지 못해 마음이 거기까지 가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