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영업하시나요? 혹시 두 명 묵을 자리가 있을까요?" 우리가 가려고 한 알베르게(albergue: 순례자들의 숙소)로 향하는 길 앞을 막고 세워둔 공사간판(detour sign)을 발견한 남편이 숙소에 전화를 걸어 물었다.
"빈 방 많아요. 순례자들 많이 많이 데려와 주세요."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화통한 목소리.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이 공사를 이유로 폐쇄되어 있었다.마을 입구를 든든하게 지키고 있었던 키다리 아름드리나무들도 다 베어지고 없었다. 금방이라도 눈이 올 것처럼 잔뜩 흐린 하늘에 전과 다르게 휑한 길에서 슬픔의 향기가 묻어 나왔다. 사람들이 그녀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그녀에게 이런저런 텃세를 부린다고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흠... 이것도 그 방해 수작 중 하나일 수도 있겠군.' 생각하니 더 그녀에게 가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길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가야지 마음먹고 마늘 밭 사이로 난 좁은 길을 걸어 그녀에게로 갔다.
Villares de Orbigo(비야레스 데 오르비고)
그녀의 이름은 크리스티나. 벨기에 출신인 그녀가 이 작은 마을에 알베르게 문을 연 것은 불과 몇 년 전 일이다. 은퇴 후의 삶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던 그녀는 자신이 사랑한 산티아고 순례길 어디쯤에 알베르게를 오픈하고 싶었고, 운 좋게 지금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똑똑똑, 계신가요?"
누가 오려나 궁금한 표정으로 빼꼼히 내다보려는 듯 열려 있는 나무 대문을 밀고 들어갔다.
"아~~ 이게 누구야!!! 너희 부부가 전화한 거였구나?!" 뜨개질을 하던 중이었던지 한 손에 털실 타래를 움켜쥔 크리스티나가 우리를 단번에 알아봐 주었다. 2년 전 가을에 그녀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을 뿐인데 어제 만났던 사람처럼 반가워해주는 그녀와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달라진 것은 별로 없었다. 그녀의 집 안에 자리한 파티오(patio)에서 자라고 있는 식물들도, 대문 옆에 세워둔 카미노용 지팡이와 조개껍데기도 모두 예전 모습 그대로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잊지 않고 일부러 찾아와 준 우리가 고맙다며 크리스티나는 우리에게 그녀의 집에서 가장 좋은 방을 내주었다. 넓고 깨끗한 욕실도 딸린 방을.
그녀의 따뜻한 마음에 보답하고 싶었던 우리는 저녁 식사는 우리가 준비하겠으니, 부디 우리에게 대접할 기회를 달라고 청했다. 그런 우리 모습이 귀여웠는지 그녀는 또 한 번 크게 웃으며 알겠다고, 그렇지만 와인은 본인이 책임지겠단다.
걷는 동안에는 뱃속에 거지가 든 것처럼 시도 때도 없이 배고팠던 우리에겐 늘 시장이 반찬이었지만, 항상 그 자리에서 찾아올 누군가를 기다리고 또 그 누군가를 위해 요리했을 그녀를 위해서 우리는 다른 때 보다 더 정성스럽게 저녁을 준비했다. 2년 전 그녀가 우리를 위해 그랬듯이.
우리가 그곳에 도착한 이후로 다른 순례자들이 오지는 않았다. 3월의 어느 추운 날이었고 길을 걷는 사람도 거의 없었으니 이 작은 마을에 짐을 풀 순례자가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터.
셋이 오순도순 식탁에 둘러앉아 지난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알베르게 허가받는 데에만 일 년 가까이 걸린 사연부터 시작해서 왜 레스토랑을 겸하지 못했는지. 부엌 싱크가 꽉 막혔을 때도, 화장실 변기가 고장 났을 때도 부르고 불러도 오지 않는 수리공을 기다리다 포기하고 결국 본인이 고친 일까지.
영업 허가서가 없는 까닭에 순례자들에게 정해진 음식 값을 받을 수 없어서 기부금 명목으로 밖에는 받을 수 없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 말을 듣는 중에 식탁 한편에 놓아둔 낯익은 '기부금 통'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날 우리는 크리스티나의 훌륭한 요리에 보통의 레스토랑에서 보다 후한 점수를 그 통에 넣었었다.
"하루는 스무 명의 이탈리아인들이 단체로 묵은 날이 있었어. 모두 다 저녁식사를 내 집에서 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혼자 이십 인분 요리를 해내느라 손목이 아프고 땀이 비 오듯 했었어. 그래도 어찌어찌 코스 요리를 다 완성했고 모두들 넉넉하게 먹였지.
그런데 웃긴 게 뭔지 알아?
다음날 아침에 그 이탈리안들이 다 떠나고 난 후 기부금 통을 열었는데...
동전 하나 들어 있지 않았다는 거야. 내가 힘들게 차린 저녁과 새벽같이 일어나 준비한 아침식사에 대해 아무도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도망치듯 가버린 거야. 괘씸하고 분했지만 이미 가버린 걸 달려가서 목덜미를 낚아챌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냥 하늘에 대고 시원하게 욕 한번 찰지게 뱉고 말았어." 이미 엎질러진 물 주워 담을 수 없으니 그냥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했고, 지나고 나면 그냥 다 웃긴 일이라며, 크리스티나는 말을이어갔다.
"남편이 집을 나갔어. 하룻밤 우리 집에 묵었던 젊은 여자와 눈이 맞았더라고. 붙잡지 않았어. 잡는다고 잡힐 것이 아니란 걸 육십 년 넘게 살아보니 알겠더라고. 부는 바람을 움켜잡겠다고 허공에다 대고 손을 뻗은들 잡히겠어?! 내 손만 부끄러운 꼴이지..."
무덤덤하게 말하는 그녀와는 달리 망치로 한대 얻어맞은 듯한 우리의 머리는 멍해졌고, 눈은 그녀를 똑바로 볼 수 없었으며 입은 적절한 언어를 찾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었다.
알베르게 시작을 남편분과 함께 했다는 것은 지난번에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중간에 그런 일이 있었는 줄은 몰랐다.
억만 겹의 일기장 속에서 그녀는 단지 한 페이지를 펴 보였을 뿐일 텐데, 그 이야기에 무척이나 당황한 인생 초짜인 우리에게 그녀의 촉촉해진 눈빛은 '그냥 아무 말없이 들어주는 것으로도 충분하다'라고 전했다.
"이것 좀 봐봐! 어떻게 생각해?" 싸해진 분위기를 반전시킬 목적으로 크리스티나가 그녀의 사무용 테이블 위에 고이 접혀있던 스웨터를 펴 보였다.
벨기에에 살고 있는 딸을 위해 겨울 내내 열심히 떴다는 그 스웨터에는 그녀의 딸에 대한 사랑과 그녀의 인생에 대한 깊은 명상이 한 올 한 올 짜여 있었다.
다음날 아침 그녀의 집을 나서는데 어여쁜 봄 꽃이 밤새 내린 눈에 덮여있는 게 보였다. 햇살이 비치면 눈은 금방 녹을테고 꽃은 다시 환히 웃을테다. 크리스티나도 그럴테다.
'우리가 삶에서 참고 견뎌내야만 하는 어떤 상황에 부딪혔을 때, 그것을 이겨내는 가장 현명한 방식은 그 상황을 직시하고 단단한 마음을 품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 삶에 대한 또 하나의 연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조바심과 투덜거림은 고통만 더 가중시킬 뿐이다.
그렇게 되기를 악한 자들은 바란다.'
미국의 정치가이자 3대 대통령이었던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이 한 명언이다.
혹자는 크리스티나를 남편에게 버림받고 타국에 홀로 남겨진 기구한 운명의 여인이라고 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내가 본 크리스티나는 그녀에게 닥친 그 운명쯤은 그냥 장난처럼 그렇게 지나가는 일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시도 때도 없이 놓이는 태클에 당당히 맞서며 살아가는 그녀는 인생의 희생양(victim)이 아니고 승리자(victor)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