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찮은 면들
(※무의식 흐름 주의)
10편이 잘 써지지 않는다. 남사봄을 쓸 때, 어떤 소재로 써야겠다고 글 구성을 대충 잡아 둔다. 1~9편 다 그런 식으로 썼는데, 마지막 본편이라 그런가.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10편,
10편,
10…….
9와 10.
“9가 10이 되지 못하는 건, 자신이 1이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라고, 내가 좋아하는 ASMR 유튜버가 지인이 한 말을 전해 주었다. 9에서 1만 더하면 10이 될 수 있는데 9는 미약했던 자신인 1을 잊어버린다는 이야기였다.
9는 10이 되는 법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거다. ‘애써서 9만큼 커 왔는데, 별 볼 일 없었던 자신을 합쳐야 한다고?’ 하며 발목 잡히는 기분이지 않을까. 제일 하찮았던 나와 마주해야 한다니 말이다.
9의 처지를 알 것만 같다.
살면서 공통적으로 들은 말 중 하나는,
‘자신이 없어 보인다.’이다.
일본어 선생님도, 취업 상담 선생님들도, 타로 선생님도, 연기 선생님도, 그 밖의 어른들과 친구들도.
충분히 할 수 있는데 왜 자신이 없냐, 자신을 가져라, 라는 응원을 감사하게도 덧붙여 말씀해 주셨다.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너무 그러고 싶은데 그게 너—무 쉽지가 않아요, 선생님들….)
해도 될까 말까 하는 순간들에 ‘이것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걸 그대로 표현해 버릴 때. 그럴 때 부끄럽긴 하지만, 아쉬움이 가슴 어딘가를 돌아다니지 않게 된다. 그리고 그걸 보는 타인이 나를 좋은 쪽으로 바라봐 줄 때가 있었다.
(저도 대충 알긴 압니다. 어떻게 자신을 가질 수 있는지.)
자신을 그대로 보여 줬다가 비웃음 받을까 봐, 남들에 비해 모자랄까 봐, 그런 거 다 재서 한없이 조심스러워지는 거. 그것만 좀 없애면 지금보다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놈의 쫄보 자아가 강력해서 문제지.
덩치 산만 한 쫄보 자아보다 중요한 문제는 비웃음 받는 나, 모자란 나를 품어 줄 아량이 못 된다는 거다.
아니다, 못 된다기보다 서툴다는 말을 쓰고 싶다. 못 된다고 하면 앞으로도 그러지 못하는 사람이 될 것 같으니까.
그래, 어쨌든. 그런 나를 품어 주는 데 서툴다는 것이다. 못난 구석들을 보고 싶지 않다. 잘난 구석만 보고 싶은 마음이다.
<한끼줍쇼>라는 예능에서 한 영상 클립이 예전에 회자된 적 있다. MC가 어린아이에게 “훌륭한 사람이 돼야지!”라고 말했다가, 게스트가 “뭘 훌륭한 사람이 돼. 그냥 아무나 돼.”라고 받아친 장면이었다. 짧지만 사람들에게 다른 시각을 보여 준 한마디였다. 나도 그 말이 참 속 시원했다. 우리가 말하는 훌륭한 사람은 하나만 말하는 것 같았다. 근데 꼭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나? 당연하게 들어 왔던 가르침에 반기를 들었고, 무척 공감했다.
그렇지만 마음속 깊이, 나는 정작 자신에게서 하나의 훌륭함만 추구하였고, 인정하려 했다. 관습을 따르지 않는 사람인 듯한 자신을 만끽하고 싶었지만, 한없이 세속적인….
그 모습이 꼭 9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가는 한 절대 10이 될 수 없을 것이다. 1을 부끄러워하는 9라면, 더더욱.
이번 10편, 잘 쓰고 싶었다. 본편의 마지막 편이라서 내심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나 보다. 그 전편을 쓸 때보다 성숙한 내가 아름다운 10편을 쓰고 싶었다.
그건 헛된 욕심이었던 것 같다. 아직 그런 나약한 모습까지 포용할 만큼 성숙해지지 못했다. 갑자기 뭔, 세상살이를 통달한 깨달음을 얻었다거나 하지도 않았다.
다만, 남사봄을 쓰는 내내 걸렸던 1을 직접적으로 풀어내고 싶었다. 그걸 어떻게 보기 좋게 글에 녹일 수 있을까 깨작이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쓰면서 알았다. 아름다운 글을 쓰고 싶은 게 아니라 여태 써 왔듯이 솔직하게 얘기하고 싶었던 거다. 까발리고 싶은 만큼 까발리자고. 숨지 않고 똑바로 볼 수 있도록.
물론 이 글을 썼다고 해서 모자람을 바로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지 않다는 걸 안다. 한 번 더 너그럽게 타이르는 거다. 그럴 수도 있다고. 두려워하지 말자고.
자신 있는 기분은 어떤 기분이었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10이 지척에 있다고 느낀다. 1을 잊지 않은 9는 10이 될 수 있다는 말. 1을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에게 꼭 필요한 응원이기에 간직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