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끝에 있을 때 읽어보면 좋을 것 같은 책 <스포 가득 주의>
오래전 친할아버지와 사랑하는 외할머니의 죽음 외에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은 없었기에
이 책에 얼마나 많이 공감할 수 있을까... 약간의 의구심이 들면서 책을 열었습니다.
슬픈 감정을 느껴보고 싶었다기보다는 너무나 바쁘고 힘든 삶을 살다 보면 이대로 삶을 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아주 가끔이지만 말이죠. (누구나 그렇지 않나요? )
하지만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이 남긴 어둠의 그림자가 남겨진 사람에게서 벗어나는 장면을 글로 장면으로 만나게 되면 뭔가 나도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살고 있다는 증거를 남기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슬픈 이야기를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고급스러운 보라색 표지에 보랏빛 띠지는 제 눈에도 너무나 아름다워 보입니다. 쓸쓸한 한밤중의 기차역에서 느껴지는 그 고요함과 저 멀리서 천천히 다가오는 사랑하는 사람을 태운 기차는 유령의 기차임을 알지만 무섭다는 느낌보다는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설렘이 느껴집니다.
이 책은 총 네 가지 이야기가 들어있습니다.
사랑하는 약혼자와의 사별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만 그럴 수없음에 부끄러우면서도 귀찮은 존재인 아버지와의 헤어짐.
이제는 전할 수 없게 되어버린, 오랜 기간 혼자서만 간직했던 짝사랑 그녀의 죽음
그리고, 오랫동안 나만을 사랑해 준 당신.
이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우리 자신 이야기, 내 주변에서 쉽게 일어나는 이야기입니다.
매우 익숙한 이야기이기에 어느 하나 낯설지 않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늘 혼자였던 나에게 나만을 사랑해 주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만큼 소중한 사람이 또 있을까요? 엄마도 아빠도 잃어 이제는 그밖에 없는데 그런 그도 탈선하는 기차에 몸을 싣고 떠나버렸습니다. 이제는 이 사람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꿈꿀 수 있겠구나 하며 안심을 했을 그녀였을 텐데 이제는 누구에게 의지하며 살아가야 할까요.
가난과 부모님의 죽음으로 인해 남겨진 아이는 온갖 놀림거리의 대상이었고, 그런 그녀를 위해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 하나 없이 외로웠을 유년 시절. 남모르게 자신을 도와주고 어깨를 다독여준 그를 잃은 그 마음을 누가 알아줄 수 있을까요.
아무리 시부모님이 자식처럼 생각해 주고 보듬어 준다 해도 그의 빈자리를 채워줄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그의 마지막을 보기 위해 자정에 유령 기차가 온다는 역에 도착하였습니다.
조건은 네 가지
하나. 죽은 피해자가 승차했던 역에서만 열차를 탈 수 있다.
둘. 피해자에게 곧 죽는다는 사실을 알려서는 안 된다.
셋. 열차가 니시유이가하마역을 통과하기 전에 어딘가 다른 역에서 내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도 사고를 당해 죽는다
넷. 죽은 사람을 만나더라도 현실은 무엇하나 달라지지 않는다. 아무리 애를 써도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오지 못하며, 만일 열차가 탈선하기 전에 피해자를 하차시키려고 한다면 원래 현실로 돌아올 것이다.
신기한 것은 남겨진 사람들은 사랑한 사람들과 함께 죽고 싶어 하지만, 죽는 사람들은 어느 하나 그들과 함께 끝까지 가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즉, 남겨진 사람들이 잘 살아가기를 원하죠. 자신들의 몫까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랑한 사람을 만난 사람들은 모두 삶에 희망을 품고 꿋꿋하게 살아가게 됩니다. 현실을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이 있지만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어쩌면 이 책은 그렇게 어떤 이유로든 간에 사별하여 남겨진 사람에게 주어진 마지막 삶을 끝까지 잘 살아내라고 위로와 응원을 주는 그런 취지로 쓰인 소설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 이야기는 탈선한 열차를 운행했던 기관사와 그의 아내 이야기입니다.
여기서는 대 반전이 있는데요~ 이건 읽으실 분들을 위해 비밀로 해두겠습니다.
하지만 그 반전 이야기를 빼놓고도 충분히 읽을 만한 스토리입니다. 예상하셨겠지만 처음에 기차의 탈선의 이유를 기관사의 잘못으로 책임을 전가시켰기에 남은 기관사의 아내는 <살인자의 아내> 누명을 쓰고 죄송한 마음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 하루하루는 그야말로 가시밭 길 위를 걷는 기분이었을 것입니다. 매일 얼굴을 봐왔던 주변의 이웃들의 냉담한 표정과 한시라도 끊기지 않고 오는 악의에 찬 전화들, 집 앞을 진을 치고 있는 매스컴.. 그녀에게는 사랑하는 남편을 그리워할 시간도 허락되지 않은 채 근근이 매일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다 결국 회사의 잘못으로 인정이 되어 살인자 누명은 벗게 되었지만, 남편이 운전한 열차로 사람들이 죽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녀는 삶의 무게를 버티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남편을 만날 기회가 주어지죠.
그리고 그녀는 남편을 만나게 됩니다.
이 책의 매력은 이야기들이 각기 다른 이야기인 듯하면서도 각각 어느 정도 얽혀 있는 것입니다. 마치 눈덩이를 굴리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들의 여운을 느끼고, 세 번째 네 번째 이야기에서 앞에 나온 사람들의 그림자를 쫓게 됩니다. 이런 책 매우 좋아요. 추리해 보면서 읽게 되거든요.
그저 한 사건을 둘러싼 단편소설은 아닙니다.
슬프기도 하고, 감동적이며 소중한 사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고, 미래를 향한 삶에 희망을 보게 하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지금 휴가 중에 읽을 책을 고르고 계시다면, 이 책 추천해 드립니다.
제가 말씀드린 마지막의 반전을 찾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