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를 즐겨 하지는 않지만, 그 세계도 골프와 마찬가지로 전설이 가득하다.
3미터짜리 대어를 잡았다가 놓친 것부터 돔 열 마리를 놔준 이야기는 흔하다. 티샷 300야드는 기본이라는 말처럼, 그곳에서도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신화가 만들어진다.
그 말인즉슨, 낚시터는 언제나 희망과 환상으로 가득 찬 장소인 셈이다.
낚시꾼들은 낚시를 하는 이유에 대해 자연을 벗 삼아 인생을 반조(反照)하기 위함이고 물고기는 덤이라고 말한다.
정말 그럴까? 일반적으로 여성들은 낚시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 이유를 성별 호르몬에서 찾는다. 남성은 본능적으로 잡거나 낚는 것(수렵)을 즐기는 반면, 여자는 기르거나 캐는 것(채집)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대박을 노리는 남성과 현실적인 여성의 기질 차이에서 비롯된다고도 한다.
낚시에 담긴 미적 매력
내가 보는 미적 관점에서 낚시의 매력은 세 가지다.
우선, 물고기의 아름다움이다. 완벽한 대칭의 체형, 매끄럽고 윤기 나는 비늘, 그리고 육지의 생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화려한 색채는 자연이 만들어낸 미적 교과서다. 물속에서 빛나는 물고기의 비늘과 생동감 넘치는 움직임은 마치 자연이 선사하는 예술 작품 같다.
두 번째는 물고기의 신비로움이다. 우리는 수면 위에서 그들의 세상을 상상할 뿐이다. 물고기가 사는 세계는 우리와 전혀 다른 물속의 세계다. 약 3만 5천 종의 물고기들이 각기 다른 모습과 생태로 수중 세계를 채우고 있다. 그들의 보이지 않는 세계는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그 신비감은 낚시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마지막으로, 낚시는 미적 쾌감을 선사한다. 새치는 시속 112km, 삼치는 시속 80km로 물속을 질주한다고 한다. 어뢰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생명체가 낚싯줄을 물고 물살을 가르며 도망칠 때, 낚시꾼은 짜릿한 전율을 느낀다. 수면 위로 떠오르기 전까지 상대를 알 수 없는 긴장감과 불확실성은 낚시가 주는 쾌감과 희열을 극대화한다.
낚시, 자신의 가치를 낚다
낚시하면, 헤밍웨이의 명저 <노인과 바다>가 자연스레 떠 오른다.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 산티아고가 거대한 다랑어를 낚는 여정은 단지 한 마리 물고기를 잡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는 84일 동안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했지만, 마침내 대양 한가운데에서 거대한 다랑어를 만난다. 그와 물고기의 싸움은 마치 인간과 자연, 혹은 인간과 운명의 대결처럼 보인다.
하지만 노인이 진정으로 낚고 싶었던 것은 다랑어 자체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오랜 자존심, 인간으로서의 존엄, 그리고 세월 속에서 사라져가는 자신의 가치였다.
노인 산티아고에게 거대한 물고기는 외부 세계로부터의 인정, 더 나아가 자신이 여전히 싸울 가치가 있는 존재임을 증명하는 상징이다.
낚시, 완벽한 사랑을 낚다
낚시를 소재로 한 작품 중 <흐르는 강물처럼 (A River Runs Through It)>도 주목할 만하다. 로버트 레드포드 감독, 브래드 피트 주연의 이 영화는 낚시를 통해 자연과의 교감, 가족의 유대, 그리고 삶의 의미를 탐구한다.
몬태나의 광활한 자연을 배경으로, 아버지 맥클레인 목사는 두 아들 노먼과 폴에게 플라이 낚시를 가르치며 자연 속에서 신과 가까워지는 순간을 경험하게 한다. 그들 삼부자에게 낚시는 삶의 철학과도 같은 존재다.
형 노먼은 안정적이고 현실적인 삶을 선택한 반면, 동생 폴은 자유로운 영혼으로 자신의 길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폴이 예기치 못한 사고로 짧은 생을 마감한다.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던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완벽하게 사랑할 수는 있다."
이 말은 가족 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인간이 자연과 맺는 관계에도 울림을 준다. 우리는 강물의 흐름과 물속 세계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지만, 그것들을 깊이 사랑하고 경외할 수는 있다.
낚싯줄이 물살을 가르고 강물이 반짝이는 그 순간, 낚시는 취미가 아닌 삶의 중요한 은유가 된다.
낚시가 주는 고요와 성찰
낚싯대를 드리우는 순간, 일상의 소음에서 벗어나 고요한 자연과 마주한다. 물 위에 뜬 찌를 바라보며 한없이 기다리는 시간은 마치 명상과 같다. 그 순간 우리는 자신과 대면하며 생각과 감정을 정리할 시간을 갖는다.
낚시의 세계는 물고기를 낚는 행위를 넘어, 자연과의 교감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이다. 낚싯대가 휜다면 그것은 물고기가 걸렸다는 신호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우리가 잊고 있던 생동감과 존재 가치를 다시 깨닫게 되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진정으로 낚고 싶은 것
노인이 다랑어를 낚은 후 상어들에게 물고기를 빼앗겼을 때,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물고기 이상의 무언가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재확인, 인간으로서의 자존심, 그리고 자연과의 교감이었다. 그는 다랑어의 잔해 만을 가지고 돌아왔지만, 싸움에서 이겼다.
결국, 우리가 낚고 싶은 것도 이러한 것들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