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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May 08. 2020

세 가지 색 - Red

Yellow와 Blue에 이어 이번 편에서는 Red를 중심으로 한 작품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블루 편은 여기에서  

 https://brunch.co.kr/@milanku205/415


옐로우편은 여기에서

https://brunch.co.kr/@milanku205/414






첫 작품은 Mona Hatourm 의 <Hot Spot>입니다.


Mona Hatourm은 레바논에서 태어난 팔레스티나인 입니다. 현재는 이란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의 이슈로 상대적으로 조용하지만 사실 20세기 후반의 세계 역사에 가장 심각한 분쟁지역 중 하나였던 곳이죠.

이런 지정학적 특징을 숙명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작가이기에, 분쟁과 갈등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작품에 깊숙이 배어 있습니다.


그런데 상당히 재미있는 것은 그녀의 작품들이 다루는 소재 (이미지 및 재료)입니다.

그녀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아주 흔한 이미지와 소재들을 가지고 명확하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데,

그 방법이 저에게는 '콜럼버스의 달걀' 같이 느껴집니다.


위의 <Hot Spot>은 거대한 지구본에 Red와 Orange의 네온사인이 켜져 있습니다.

관람자 대부분의 머릿속으로 종교적, 인종적, 경제적, 정치적 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지구의 현재 모습이 직접적으로 떠오를 것입니다. 거기에 더해 점차 뜨거워지고 있는 지구의 환경 이슈 역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제가 '콜럼버스의 달걀'이라고 부른 이유는, 많은 현대 미술 작품은 보는 순간 쉽게 그 의미들이 다가오지 않습니다. 사전 학습이 필요하고, 작가나 평론가들의 설명들이 필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뭔가 상당히 어려워 보이고, 그리고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이미지들을 등장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그에 반해 등장한 미니멀리즘은 반대로 너무 단순해서 직관적인 이해가 쉽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본인은 극구 부인하지만 미니멀리즘의 대표작가로 뽑히는 Donald Judd처럼 그냥 보고 있으면 '예쁘다' 이런 느낌이 드는 작품도 있지만 대부분은 뭔가 '예쁘다' 또는 '마음에 든다' 같은 쉬운 표현을 쓰기에 버거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Mona Hatourm의 위 작품은 미니멀리스트 작품들처럼 쉽고 단순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면서, 작품이 전달하는 메시지도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완성된 작품을 보면 막상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어도, 처음에 어떻게 저런 소재와 이미지를 가지고 이렇게 표현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달걀의 껍질을 깨서 똑바로 세운 콜럼버스와 같이 생각의 전환을 통해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해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Grater Divider>


그녀의 또 다른 대표작품인 <Grater Divider>에서도 사고의 전환을 가져오는 작가의 독특한 시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치즈 가는 도구를 거대하게 확대해서 룸 디바이더를 만들고 있는데, 마치 초현실주의에서 볼법한 과장되게 확대된 이미지는 하지만 르네 마그리트의 사과처럼 거대한 사고의 장벽을 만들고 있지는 않습니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쉬르 레알리즘적인 경향을 차용해 현실 속 사소한 일상 용품들의 이미지로부터 미처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다양한 의미들을 증폭시켜 내고 있는데,  치즈를 가는 강판이 거대한 크기로 확대되자, 숨겨져 있던 이 도구가 지닌 날카로운 폭력성이 드러나며, 위험 또는 위기라는 개념을 직관적으로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런 직관적인 의미를 내포한 오브제가 그것이 놓인 공간을 다시 물리적으로 나누고 있는 모습에서 우리는 바로 현재의 지구가 직면한 수없이 많은 국지적인 분쟁들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최근에 본 <작가 미상>의 감독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크가 영화를 통해 이야기했던


"삶의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용기이야 말로 가장 위대한 예술 창작의 원동력이다"


라는 표현은 역시 많은 예술의 위대한 거장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면모인가 봅니다.



두 번째 작품은  Anish Kapoor의 <Sky Mirror, Red>입니다.


아니쉬 카푸어는 '블랙'편에는 무조건 등장할 작가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레드'편에서도 그의 작품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리움 미술관 전시를 통해 아주 친근해진 아니쉬 카푸어는 몇 년 전 '벤타 블랙'이라는 완전한 검은색 물감의 독점 사용권을 놓고 미술계에 재미있는 이슈를 만들어 냈습니다. 특정한 색을 한 예술가가 독점하는데 반대하는 한 미술가는 벤타 블랙에 버금가는 블랙을 만들었다며 kickstart를 통해 펀딩을 이어 가고 있는데요, 사실 지난번 블루 편에서 이브 클랭의 블루를 언급했었는데, 특정 색에 애정이 있는 작가가 새로운 색을 만들어 내고 자신만이 독점권을 가진 다는 것이 단순한 애호가인 저의 입장에서는 그리 나쁘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자신만의 시각이나 고민 없이 유명한 작가가 사용하는 것을 따라 쓰려고 하는 미술계의 일부  모습이 더 문제가 아닌가 생각되기도 하고, 아니쉬 카푸어에 반대한다며 끊임없이 그의 이름을 사용해 노이즈를 펼치는 모습도 좀 안타깝기도 하고요.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어디서 저런 상상력이 나올까입니다.

마치 외계에서 나타난 정체불명의 물체 같은 형태와 재질, 그리고 거대한 크기. 특히나 그의 공공 조각 작품들은 작품이 놓여야 하는 공간과의 조화나 균형을 고려한 느낌이 전혀 없고, 그 거대한 면적을 캔버스 삼아 아주 독특한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펼쳐놓았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데요, 작품을 직접 보신 분들은 다 느끼셨겠지만, 그의 작품은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죠. 작품에 점차 다가갈 때마다 작품이 우리의 시선을 왜곡하고 비틀어버리는 느낌에서 완전히 압도당하게 되는데,


그렇지만 이상하게 우리가 바라보는 시선의 높이나 거리가 아닌 아주 원거리 또는 높은 위치에서 전체를 잡아낸 사진들을 통해서 보게 되는 이미지들은 그런 개인적인 시각과 반대로 이상하리만치 그의 작품을 담고 있는 공공 공간과 그의 설치물이 하나가 되어 있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위의 이미지 역시 그런 느낌을 강하게 주고 있죠. 


시카고에서 있는 Bean이라고 불리는 그의 설치작품 <Cloud Gate>는 시간대에 따라 시카고의 다양한 모습을 담아내고 있었는데, 




작가는 약 10년의 시간이 흐른 시점에서 작품 위에 그의 블랙을 다시 입히고 있습니다.



사진으로 보이는 이미지는 마치 사진에서 그 부분을 찢어 낸 것 같은 느낌 아닌가요?


작가 스스로 밝히고 있는 이야기는 "최초에는 놀이와 표면의 모양(곡면)이 만들어 내는 이미지의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이 만들어내는 '공(空)'을 통해 혼란에 빠져 스스로를 잃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기 성찰의 공간이 될 것이다"인데, 안타깝게도(작가가 느끼기에는 아마도) 자기 성찰보다는 자기-사진 (셀피)의 공간이 되고 있습니다.


세 번째 '레드'에 관한 작품은 Magdalena Abakanowicz의 <Abakan Red>입니다.


  


폴란드 여류 작가인 막달라나 아브카노비츠 입니다. 섬유 아티스트인 그녀는 2차원적이던 섬유라는 소재를 3차원적인 조각의 형태로 확장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철제 골격 위에 다양한 실을 아무런 도구 없이 오로지 자신의 손을 이용해 작품을 완성해 나간다고 합니다. 


그녀의 말을 빌자면 "나의 손을 통해서 나의 에너지가 전달된다"하며, 그런 과정에서 개념이 형상으로 바뀌어 나가며, 뭔가 무의식적인 생각들이 드러나게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Abakan Red>의 표면은 마치 거친 동물 가죽처럼 보이며, 전체 형상 역시 무언가 현실에는 없지만 상상 속의 동물을 연상케 합니다. 이런 연상들은 그래서 섬유라는 2차원적인 것에서 형태를 갖춘 3차원적인 조각으로 바뀌는 과정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Abakan이라는 것은 작가가 그녀의 성(Family Name)에서 딴 이름으로 작가의 상상 속 생명체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새롭게 업그레이드돼서 나타난  현대적 '프랑켄슈타인'의 형상화 같다는 느낌도 드네요.



마지막 작품은 Jenny Holzer의 <All Fall Text: Truisms>인데요,

신개념주의 작가이며 페미니스트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신개념주의는 80년대 이후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 많이 등장하는 사조로서, 모더니즘의 형식 안에 특정 메시지를 담은 개념적 내용을 포함시키는 것이라고 합니다. 


정치 시스템이나 정치적 개념이 점차 중요해지는 현재에 이르러, 전통적인 아트가 가지고 있는 기능 보다, 공공적 디스플레이 기능이 강조되는 이런 형식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위에서 보여드린 4 작품이 잡지에서 선정한 것인데, 저에게 떠오르는 또 다른 Red를 대표하는 작품은 바로  박서보 선생의 작품입니다.


선생의 작품이 꼭 레드인 것은 아니지만 저에게는 레드 작품들이 가장 마음에 듭니다.


Ecriture(描法) No.070429 : 2007, Mixed Media with Korean Paper on Canvas / 97.5cm x 130cm, 2007



작가이며 동시에 미술이론가인 이우환 선생은 박서보의 묘법 작품들에 대해서 "이미지를 그리지 않으려는 저항, 이미지를 단념시키는 작업으로 발전시킴으로써, 행위가 순수한 행위 자체로 정화하게 되었다"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작가 자신은 "그림은 치유의 도구여야 한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비워낸 골들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입체적 색상이 신비한 느낌을 주며, 묘하게 가벼워짐을 느끼게 합니다. 


똑같이 자신의 그림이 치유의 도구로 사용되었으면 했던 마크 로스코의 그림에서 만나게 되는 레드에서는 한 없이 내부로 침잠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지만 박서보 선생의 레드에서는 오히려 공기처럼 가벼워져 날아오를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되는데, 이는 아마도 무수히 많은 색들이 합쳐져 최종적인 색을 만들어 낸 로스코와 색이 가득한 곳에서 그 색들을 지속적으로 비워나가는 박서보 선생의 작업 방식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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