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별빛서점 03화

그 사내

by 칠십 살 김순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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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우리집에 들어와 살게 된 것도, 아버지가 경성역에서 그의 인력거를 타게 되어서였다. 택시를 부르려 하는데 그가 아버지 앞으로 인력거를 끌고 왔다.


“타쿠시 요리 하야쿠 하시루 코토가 데키마스.

(“택시보다 빠르게 달릴 수 있습니다.” )


아버지는 그를 보는 순간, 이상하게 인력거를 타 보고 싶더란다. 조선인인데도 서툴지 않은 일본말도 마음에 들었고 산만한 덩치도 마음에 들었다. 얼마나 쏜쌀같이 달리는지 그의 말대로 택시보다 빨리 집에 도착했다.

“아나타 난사이?” (몇 살이지?)

“주우나나 데스”(17살입니다)


하마터면 큰 소리로 웃을뻔 했다. 서른은 되어 보였기 때문이다.


“아스노 아사 노세니 쿠루카?”

(내일 아침에 태우러 오겠나?)

“하이”(녜)


아버지는 그 짧은 시간에 그가 마음에 드셨다. 아버지는 한 달 동안 매일 아침 그의 인력거를 타고 출근을 했다. 사실 아버지는 회사에서 기사와 함께 내어 준 승용차가 있었다. 그럼에도 한 달 동안 인력거를 탄 것은 그의 됨됨이를 알아보고 싶어서였다. 그는 한 달 동안, 한 번도 시간 맞춰서 온 적이 없었다. 언제나 일찍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말이 없었다. 먼저 말을 건네오거나 무엇을 묻는 적도 없었다. 묻는 말에만 답했고 시키는 일은 성심껏 했다. 덩치가 나이에 비해 워낙 커서 산만해 보였지만, 몸에서 조선인 냄새가 나거나, 술, 담배 냄새도 나지 않았다. 뒤에서야 알았다. 그는 담배는 피지 않았지만, 술은 엄청난 주량을 가지고 있었다. 15살 때는 뚝섬 모래밭에서 열린 씨름대회에서 1등을 해서 황소를 탔다고 했다.그 사실은 부엌일을 하는 조선인 하녀에게서 들었다.


나는 조선에 와서 바로 오 년제 고등보통학교 상급반으로 들어갔다. 아버지가 그를 채용한 이유가 내 가방모찌를 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때는 조선의 시국이 어지러울 때였다. 조선은 일본의 지배를 받는 시절이었다. 학교에서도 조선말을 못 하게 하고 일본어만 가르치던 때이다. 완전히 조선이 일본화되어가는 시기였다. 거기에 반발하여 조선인들이 여기저기서 폭동을 일으키기도 하던 때였는데, 학교에서도 조선 아이들이 일본 선생을 괴롭히기도 하고, 근처 으슥한 곳에서 기다리다가 일본인 학생들이 나오면 테러를 하고 도망치는 일도 종종 일어났다. 그러니 절름발이 내가 무슨 일을 당할까 봐 힘 좋은 그를 가방모찌로 쓴 거다.


그가 하는 일은 인력거에 나를 태우고 학교에 데리고 갔다가 학교가 파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데리고 오는 일이었다. 그는 그사이에 만화책도 보고, 주위에 있는 꼬맹이들 데리고 다마치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몇 달 지나고 나서였다. 수업 중에 갑자기 경보가 울리고 이어서 다급한 교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지금 밖에 조센진들이 몰려와 있다. 긴급 대피하라.”


급우들이 급히 가방을 챙겨 들고 교실을 뛰쳐나갔다. 복도에는 각 교실에서 뛰쳐나온 아이들로 그득했다. 학생들은 힘차게 교문으로 뛰어나갔다. 검도부 학생들도 눈에 보였다. 그들은 검도를 차고 있었다. 그러나 이 와중에 칼이 아닌 검도는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 우리 학교는 조선인 학교를 접수한 것인데, 정문만 있고 후문이 없었다. 후문이 있었다 해도 별로 도움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나도 가방을 머리에 이고 뛰어나갔다. 이럴 때일수록 나의 한 다리는 보기에도 초라할 만큼 힘을 못 쓴다. 그들도 정문 가까이는 오지 못하는지 가까운 곳에서 돌멩이를 던지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퍽, 퍽 하는 소리가 들리고 비명도 들리는데 나는 어느 쪽으로 뛰어야 할지도 몰라서 한쪽 다리를 질질 끌며 아무 곳으로나 교문을 벗어나고자 뛸 뿐이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에서


"겐꼬”,


포효하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내 몸에 담요를 뒤집어씌우더니 가벼이 들쳐업고 뛰었다. 그의 등짝이 그렇게 단단하고 넓은지 그때 알았다. 그는 쉬지 않고 집에까지 날 업고 뛰었다. 인력거는 그사이 그들의 손에 망가지고 있었다. 그날 저녁, 그는 혼자서 부서진 인력거를 두 차례 왔다 갔다 하며 가지고 와서 고쳐놓았다.


그런 일이 있은 얼마 후, 아버지는 그를 고등보통학교에 들어가게 했다. 고등보통학교를 졸업시키고 나와 함께 경성철도학교에 다니도록 할 생각이셨다. 소학교, 고등보통학교는 조선인 학교와 일본인 학교가 따로 있었지만, 경성철도학교는 엘리트들이 모이는 기술학교라 조선인 학생과 일본인 학생이 함께 공부하는 시스템이었다. 나를 좀 더 밀착 보호하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 다행히 그는 소학교를 졸업했고 일본말을 잘했다. 단 글자가 서툴렀다. 특히 한자를 몰랐다. 일본어는 한자를 모르면 어려운 글을 읽을 수 없다.


아버지는 그에게 교과서를 구해주면서 나더라 가르쳐 주라고 하셨다.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그에게 글을 가르쳤다. 그동안 그의 말 없고 성실한 행동이 마음에 들었지만 그래도 조선인이라는 편견 된 마음이 항상 있었는데, 그날 그가 한 행동은 나를 완전히 장악했다. 나는 그에게 한없이 기대고 싶어졌다. 그와 함께 있으면 든든했다. 그는 아버지의 제안에 처음에는 머뭇거렸다. 특히 나는 일본에서 전학 와, 고등보통학교 상급반으로 바로 들어갔기 때문에 그도 상급반으로 월반해서 들어가야 했다. 그의 생각에 그것은 무리였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다. 그는 몸이 산만 해서 둔해 보였지만 머리는 지혜롭고, 비상했다. 거기다 성실하기까지 했다. 무엇이든 자신이 해야 할 일은 확실히 하는 성격이기도 했다. 지금으로 하면 편입시험이었다. 일본인 교장과 선생 두 사람이 앉아서 그에게 이거 저것 묻고, 국어 시험지를 내어놓고 시험을 치게 했다. 그의 말로는 너무 쉽더란다. 그렇게 해서 그는 내가 다니고 있는 일본인 학교 뒤에 있는 조선인 학교에 다녔다.


그는 매일 아침 나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운동장에 인력거를 대어놓고 조선인 학교로가서 공부를 했다. 내 수업에 맞추어 학교에서 나왔는데 사전에 아버지와 선생 간에 조율이 되어있었다. 아버지는 그 당시 조선 철도국에 총 책임자 다음 자리에서 일하고 있었다. 총 책임자는 대부분 일본에서 일을 하고 잠시 다녀가면서 보고를 받았고 실제적인 일은 아버지가 맡아서 하셨다. 아버지의 힘은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단언코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힘을 철도에 관련된 일 외에는 남용하지 않았다. 내가 아는 아버지는 인텔리 중에 인텔리었고 존경할 만한 분이었다. 그럼에도 조선인들은 단순히 철도국 높은 사람이라는 이유로 아버지를 미워하고 때로는 증오하기도 했다. 물론 아랫사람들이 현장에서 하는 행위를 아버지가 일일이 알 수는 없었기에 현장에서 일어나는 불미스런 일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 불미스러운 일을 하는 사람 중에 조선인도 더러 있다는 것을 조선인들은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우리 집은 자주 테러의 대상이 되었다. 지나가던 길손들이 집 담 너머로 돌멩이를 던져서 유리창이 깨지기도 하고, 밤에 괴한들이 담 넘어 들어와 인력거와 자전거를 부숴놓고 가기도 하고, 어떤 날은 마당에 똥을 싸 놓고 가기도 했다. 그때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모든 것을 처리했다. 그는 망치와 펜치만 있으면 못 고치는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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