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낯선생각 Oct 08. 2021

문화공작소 낯선생각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사람들은 나보고 나름 예술인의 피가 흐른다 말한다. 아마도 자유분방한 생각의 흐름이 그렇게 보이도록 한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자유로움 속에도 나름의 규칙이 있고, 선이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예술가나 이상주의자라기보다는 ‘현실주의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가끔 내 마음이 남의 마음과 같지 않아서 문제지.    


  방송작가로 일을 하다가, 여러 문제들이 겹쳐 잠시 방송을 내려두고 스토리텔링과 기획, 홍보 영상 작업 등을 하는 사무실을 열었다. ‘문화공작소 낯선 생각’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인생은 낯선 길의 연속이니까 그 길에 새로운 생각으로 함께 하겠다는 의미였다.       


  방송 일을 하면 외주제작 프로그램이 많았다. 그리고 방송국을 통해서 오는 개인적인 일들도 많았고, 그런 일들을 누구의 구애 없이 내가 선택적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아마도 접근했던 기억이다. 세상에 어떤 일이 그리 쉬우랴.    


  티끌처럼 모은 돈으로 사무실을 얻고 이곳에서 엄청난 회의라도 할 수 있도록 가로 1600mm 짜리 테이블을 2개나 놓고, 이것만은 놓칠 수 없다며 청록색의 쇼파도 넣었다. 아, 냉장고가 필요하지. 빨간색 귀여운 냉장고도 넣고 ‘여기는 글쟁이의 사무실이니까’ 제일 큰 책장을 3개나 넣었다. 그리고 집에 가득 쌓여있던 책들 중에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옮겨와서 책장을 채웠다. 커다란 모니터에 옆에는 노트북을 두고, 사무실 모양을 갖추었다. 이제 일만 들어오면 된다.    


  ‘아, 그런데 내가 이런 사무실을 차린 걸 사람들이 어떻게 알지?’    


  내가 사무실을 차렸다는 걸 알아야 일을 맡기든, 상담을 하든 할 것 아닌가? 그래서 SNS에 나의 사무실을 공개하고 난 이런 일을 한다고 나름의 홍보를 했다. 홍보 전문가라면서 내 일은 그렇게 적극적으로 할 수가 없었다. 부끄러웠다고나 할까.    


  그리고 들어온 첫 번째 일은 사회적 기업의 탄생 스토리텔링에 관한 의뢰였다. 일반 기업이었다가 예비 사회적 기업이 되었는데 그 안에 스토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만나서 회는 몇 차례 했다. 이 일을 왜 시작했는지부터 그동안 이 일의 비전은 어떠했는지, 왜 사회적 기업으로 만들고 싶은지 등등. 며칠을 고민해서 이 기업이 사회적 기업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한 스토리텔링이 완성됐다. 그리고 P.P.T로 정성스럽게 작업해서 대표님께 전달했다. 그런데 그새 대표님의 생각이 바뀌어 있었다.    


  “굳이 스토리텔링 이런 것까지 할 필요가 있겠나~ 대화 나누면서 좋았네.”   

 

 사람들은 ‘글을 쓴다’는 일을 가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몇 글자 끄적거리는 것이 돈을 받고 할 일인가?’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계셔서 예술가들은 배고프다. 글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나눠보면 디자인 작업에 있어서도 실컷 의뢰해놓고 캔슬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것 잠깐 해보는 것, 그것 잠깐 써보는 것이라는 식으로 우리 일을 가볍게 보는 거다. 일주일을 고민해서 탄생한 한 사회적기업의 탄생 비화 스토리텔링은 그냥 그렇게 사라졌다. 정말 속상했다.    


 또 한 번은 두 사장님이 식당을 오픈하시는데 식당이름, 식당에 대한 스토리텔링, 그리고 인테리어 콘셉트, 간판 디자인, 메뉴 디자인까지 모든 걸 맡아 달라고 하셨다. 나를 믿고 이렇게까지 맡겨 주시다니 감개무량한 순간이었다. 가게 내부를 실측하고 메뉴를 받아와서는 가게 이름부터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이가 50이 훌쩍 넘은 친구 둘, 사장님들의 인생 역경을 생각하면 인생이 한 편의 영화 같았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당장은 돈이 없어요. 하작가. 돈 좀 벌어서 꼭 비용 지불할게”     


 ‘그래, 지금 당장 받지 못해도 돈 벌면 준다고 했으니까 작업을 시작해 보자. 이곳에 오면 인생을 배우는 것이다. 음식에 녹아든 인생, 오늘 지친 나의 삶을 이 식당에 와서 나이 지긋한 사장님들의 음식을 먹으면서 푸는 거다.’    


 그렇게 식당의 콘셉트와 스토리텔링을 완성하고 간판에 들어갈 글자와 메뉴판도 직접 캘리그라피로 적었다. 이제 내부 인테리어, 간판과 메뉴판은 단순하게 갔지만, 내부의 느낌은 강렬하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짙은 청색과 톤 다운된 다홍색으로 벽의 이미지를 그렸다. 한참 열과 성을 다해 작업하고 인테리어는 직접 사장님들이 페인트를 사와서 칠하시고 메뉴판과 간판도 작업이 되어 달렸다. 손맛 좋은 사장님의 음식 덕에 식당은 손님들이 몰려들었고, 지금 2호점, 3호점도 내셨다. 2호점, 3호점 역시 내가 한 콘셉트와 나의 글씨로 말이다.


하지만 아직 사장님들께는 연락이 없다. 아직 돈을 다 벌지 못하셨나 보다. 벌써 6년이 흘렀다.    


 프리랜서로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든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었다. 작업 비용부터 받고 일을 하면 괜찮았을 텐데, 또 그렇게 되진 않았다. 내 스스로가 확신이 들어야 작업 비용을 받을 수 있다고 할까. 어쨌든 문화공작소 낯선 생각은 내가 갑작스럽게 구청에 들어가면서 주인을 잃었다. 그리고 먼지가 더 쌓이기 전에 친구에게 작업실을 좀 치워달라고 부탁했다. 나의 첫 손 때 묻은 물건들이 나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2019년 다시 ‘문화공작소 낯선 생각’은 문을 열었다. 아직 사무실은 없다.

이전 10화 매일  매일 글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