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번째 자작시 - 오늘부터 1일

빛났던 그 해 여름밤

by 서쪽 숲나라

스물 세살의 여름이 그토록 아름다웠던 이유는 막 여름방학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었고, 나무들과 풀들이 갖가지 초록빛 연두빛 그라데이션으로 찬란하게 빛났기 때문이었으며, 내가 맘에 두고 있던 그에게서 고백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건 사람이 살아가면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달달한 기적이 아니었을까. 서로의 마음과 시선이 상대방을 향해 똑바로 뻗어있다는 것.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역시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


그 여름 밤, 우리집이 있던 아파트 단지의 놀이터 벤치에서 나란히 앉아 있던 우리의 심장은 터져 나갈 듯이 뛰고 있었다. 잠시의 뜸을 들인 다음 수줍게, 하지만 용기 내어 그가 고백하던 순간 나는 정말이지 너무나 행복해서 이대로 죽어버려도 좋겠다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차마 그의 눈을 바라보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인 내 손을 그가 살며시 잡아왔고 나는 자연스럽게 그의 어깨에 기댔다.


눅눅한 여름밤의 공기마저 싱그러웠고 밤하늘에 별 대신 도드라지게 반짝이던 인공위성조차 황홀했다. 마법에 걸린 것 처럼 온 세상이 달라 보였다. 마주 잡은 손에서, 머리를 기대고 있는 어깨에서 느껴지는 어떤 믿음직스러움이 너무나 기꺼웠다.


우리 드디어 사귀는구나, 오늘부터 1일이구나, 하는 생각에 너무나 벅차올라서, 앞으로 그의 여자친구로서 함께 할 날들이 꿈만 같아서 나도 모르게 그의 팔을 꼭 잡았던 것 같다.


마치 어제인 듯 지금도 선한 기억, 내가 가장 여리고 예뻤던 그 시절 그때의 기억은 여전히 나를 가슴 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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