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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묘 Sep 15. 2024

호스피스 병동 602호 입주자

쉴 새 없이 재잘대던 중년 여성은 ‘강해’라는 이름만큼 단단해 보였다. 40대 중반의 여유가 느껴지면서도 깊이감 있는 눈은 어딘가 따뜻했다. 나의 여든 살에는 딸이 있다. 


꾸역꾸역 살았더라도 결국엔 이렇게 병원신세를 지고 있는 나를 마주하게 되는 걸까. 남들은 타임슬립을 하면 과거로 돌아가 첫사랑도 구하고 핑크빛 로맨스를 완성하는데 난 백발의 노인, 그것도 난소암 말기 환자가 된 여든 살의 몸에서 눈을 떠버렸다. 원래 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매개체가 나의 서사에도 등장할까 싶어 잠시나마 고민해 봤다. 그러다가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얼마 전까지 살아왔던 나의 이십대가 지금보다 나아 보이지는 않았다.   


며칠을 자고 일어났지만 변한 건 없었다. 매일 병실에서 눈을 뜨고 하루를 보내고 중간중간 잠을 잤다. 시간이 지날수록 꿈속의 나비처럼 익숙해졌다.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은 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병실을 지키고 있는 이 사람들이다. 나에게는 사위도 있고 손자, 손녀도 있다. 그리고 주말마다 모습을 보이는 아들도 있다. 무엇보다 80대 노인의 모습을 한, 남편이라는 사람도 있다. 


가족이라는 낯선 존재들은 끝내 익숙해지지 않아도 될 터였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난소에 있는 암세포 덕분에 죽을 테니까. 수면제를 털어먹고 잠이 들면 깔끔하게 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죽는 것마저도 내 뜻대로 되지 않고 귀찮아졌을 뿐이다. 호스피스라는 곳은 살면서 한 번쯤 들어본 적 있었지만, 감기에 걸려도 웬만해서는 병원에 가지 않는 나였기에 호스피스가 어떤 곳인지 알리 없었다.


그런 내가 602호 병실에 누워있다. 이론 없이 바로 실습이다. 나의 인생에는 노크가 없다.







602호.

아침이면 햇볕이 쏟아져 들어오는 6층이다. 하마터면 햇살 가득한 창가 자리가 좋아질 뻔했다.


따뜻하게 젖은 수건이 얼굴을 닦아내면 아침이 온 걸 알 수 있다. 거칠고 쭈글쭈글한 손에 로션을 묻혀 투박하게 바르는 남편의 손길 덕분에 아침잠에서 깬다. 병실에 상주하며 아내를 돌보는 80대 노인의 측은함을 생각해서 참아내고 있지만 영 마뜩잖은 손길이다. 엄밀히 말하면 몸이 내 마음만큼 움직여지지 않아서 참아진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알바가 아무리 힘들어도 내 몸 상태는 ‘피곤하다’는 단어 하나로 충분히 표현 가능했다. 그런데 지금 내 몸뚱이는 각개전투를 벌이는 것 같다.


내가 지내는 병실은 다인실이라서 나 말고도 세 명의 환자가 더 있다. 두 명은 연세 지긋한 할머니이고 나머지 한 명은 마흔 살의 젊은 여자였다. 이곳에서 내가 하루 종일 하는 거라곤 왜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 답이 없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었다. 그리고 병실 침대에 누워 주변 이야기에 귀동냥할 뿐이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화이트 군단이 들어왔다. 피곤함으로 잔뜩 엉클어진 머리를 한 의사의 표정만큼은 한없이 다정했다. 지난밤 차트를 보며 증상을 관리하고 통증을 조절했다. 내 옆에 선 남편은 마치 숙제 검사를 받듯 긴장한 모습이었다.


화이트 군단이 병실을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자, 핑크 군단이 들이닥쳤다. 핑크색 가운을 입은 이 사람들은 더 밝고 화기애애하다.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로서 따로 교육을 받고 병원 봉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 암 환자들이 있는 게 맞나 싶을 만큼 서로 이야기하며 밝게 웃는 모습이 아이러니하다. 


“이서은님~ 지난 주말은 잘 지내셨어요? 요 며칠 다리 부기 때문에 고생하셨다고 전해 들었어요. 오늘 발마사지 해드릴게요. 어때요?”


뭐라고 이야기한들 귀찮게 할 사람들이었다. 말할 기운도 없어서 그냥 고개만 끄덕여 본다. 


“여보, 잘 생각했어~ 다리 마사지 하면 이따 오후에 기분도 한결 나아질 거야. 오늘밤에 잠도 잘 오겠다, 그렇지?”


남편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내 다리를 연신 쓸어내리며 이야기했다. 가만히 있어도 웃상인 남편은 평생을 이런 표정으로 살아왔을 것 같았다. 괜히 옆 사람까지도 미소 짓게 만드는 그런 사람.


발마사지를 해주겠다던 사람들이 돌연 종교를 물어왔다. 


“이서은님, 혹시 종교가 있으신가요? 여기 기재되어 있는 건 천주교라고 되어 있는데, 천주교 기도를 같이 해드려도 될까요?”


묵묵부답인 나를 대신해 남편이 대답을 했다.


“그건 우리 딸아이가 쓴 것 같아요. 그 애가 성당을 열심히 다니거든요. 나랑 아내는 딱히 종교가 없었어요. 굳이 말하자면 불교에 가까울 것 같네요. 종종 날씨 좋은 날엔 나지막한 산을 오르기도 했고, 산 중턱에 있는 절도 좋아했죠.”


“그럼 저희가 불교 기도해 드릴게요.”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대여섯 명의 핑크 군단은 옆구리에 끼고 있던 책을 펼쳤다. 그리고는 이내 불교 기도를 시작했다. ‘이서은 님을 위해 마음을 모아 기도드립니다.’로 시작된 기도는 마치 마법의 주문 같았다. 잠으로 빠져 들 것 같이 아득해질 무렵 기도가 끝났다. 


“….. 나무아미타불...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이서은님, 조금 이따 발마사지 준비해서 다시 올게요~”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작된 부산스러운 움직임에 잠시나마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내 발에 신겨져 있던 수면양말을 벗기고 환의를 무릎까지 접어 올렸다.


“편하게 누워 계세요.”


이렇게 말하는 자원봉사자들의 말에 머릿속으로 대답했다. ‘참나, 어차피 혼자 힘으로는 못 일어나요.’


다리 밑에 깔아 놓은 방수 패드 덕분에 따뜻한 수건을 올려놓아도 문제 되지 않았다. 따끈한 온기 덕분에 잠시나마 통증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옆에서 떠들어대는 사람들은 싫지만, 발마사지는 제법 좋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다리를 맡겼다. 발 끝에서부터 아로마 오일 향이 은은하게 풍겼다. 다리 양쪽에 선 두 명의 봉사자들이 나의 표정을 살피며 마사지를 이어 갔다. 내가 조금이라도 찡그리면, 마사지하는 손의 힘이 약해지곤 했다. 누군가 내 발을 이토록 정성스럽게 어루만진 적이 있을까?


발마사지를 끝낸 봉사자들은 나의 평안한 오후를 바라며 병실을 떠났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발마사지는 종종 해볼까 싶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조금씩 익숙해지는 내가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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