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화 風化
지표를 구성하는 암석이 햇빛, 공기, 물, 생물 따위의 작용으로 천천히 부서지거나 분해되는 현상
그런 검버섯은 처음 봤다. 왼쪽 광대뼈의 가장 오뚝한 부분에 회색빛 하트가 보였다. 어지럽게 엉퀸 잿빛 무늬 사이에 혼자만 또렷했다.
환자의 발을 마사지하며 보호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나의 시선은 왼쪽 광대뼈에 가 닿았다. 새끼손톱의 절반쯤은 되어 보이는 하트 모양의 검버섯. 주근깨를 지나 기미가 생길 나이마저 지나면 검버섯을 맞이하는 삶의 흐름, 피할 수 없는 피부노화라고 생각했었다.
살아온 이야기를 하는 내내 웃는 얼굴이었다. 칠십 평생 참 다사다난했다고 회상하는 동안에도 광대에는 옅은 미소가 번졌다. 병상에 누워 있는 남편과 젊은 시절에 했던 고생들이 하나하나 스쳐 지나는 듯 말 사이마다 정적이 흐르곤 했다.
목 아끼지 말고 노래해요.
몸도 아끼지 말아요.
열심히 일하고 그 순간을 오롯이 즐기며 살아가라고 하셨다. 호스피스 병동은 내게 특별한 공간이다. 다른 데서 들는 이야기는 '잔소리'라는 이름표를 받아 들고 왼쪽귀로 들어갔다가 오른쪽귀로 곧장 빠져 나간다. 하지만 여기서 듣는 이야기는 다르다. 마음에 쿡 박힌다. 저마다의 삶의 회한이 담겨 있어서일까.
"살다 보면 바람이 많이 불어 닥칠 거예요. 억지로 버텨내기도 하고 때론 넘어지기도 하죠. 그 단단한 바위도 깎아내 버리는걸요. 시간 앞에 세상 것들은 다 똑같더라고..."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갑자기 '짝'하고 손뼉 치며 말을 이었다.
"아차, 저축은 꼭 해요~ 그게 남더라."
"하하하, 네~!"
내 웃음소리가 마스크를 뚫고 나가버렸다. 인생 선배의 현실적인 조언 같달까.
남편이 아프고 절망도 원망도 많이 했다고 한다. 하지만 함께 살아온 지난 시간들이 힘이 되어주었다고 했다. 그땐 휘청거리면서 바람에 다 깎여가는 줄만 알았는데, 지나고 보니 그들의 삶은 작품이 되어 있었다고 했다.
활짝 웃으며 말하는 모습이 70대 할머니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생기 있는 모습은 마치 해변에서 반짝이는 몽돌 같았다. 얼굴에 가득한 검버섯이 페이드 아웃되는 효과, 사람의 시선에는 감정이 담겨 있다. 어느덧 할머니의 광대에는 반짝이는 하트만 남아 있었다.
호스피스 병동을 나서며 몸을 싣는 지하철은 늘 분주하다. 인생 선배들의 조언을 되새기는 시간이다. 오랜만에 은행 어플의 상품 탭을 눌러보았다. 적금 상품들을 한참 살펴보다가 놓칠뻔한 환승 역에서 급하게 내렸다. 그렇게 잊혀 버린 '저축'.
오늘도 이렇게 삶을 배우고 제멋대로 살아간다. 시간의 풍화 속에서 끝내 반짝이는 작품이 되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