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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흔살 어른이 Oct 06. 2019

4화.독도는 내 땅이 아니라 잘 모르겠습니다.

일본인 아내와 사는 한국 남자의 진솔한 이야기

한일전은 누굴 응원해요?


일본인 아내와 사는 내가 듣는 단골 질문 중 하나다. 축구나 야구와 같은 스포츠 한일전을 할 때면 나는 당연히 한국팀을, 아내는 일본을 응원한다. 비록 내가 아내를 만나기 전에는 다소 과격한 표현의 응원을 했지만, 지금은 매우 건전한 표현으로 응원을 한다.  하지만, 이번 화이트리스트와 같은 한일전은 스포츠 경기와는  전혀 다르다.


얼마 전 가족끼리 한자리에 모여 저녁을 먹었다. TV에서 뉴스가 오고 있었고,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에 대한 소식이 들렸다. 그 순간 식탁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럴 때 TV를 갑자기 끄는 것도 어색하고.. 어떻게 해야 하나?"란 엄마의 말에 침묵 끝났고 우린 서로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어떡하긴 어떡해? 시간이 지나면 적응되고 괜찮아지겠지"라고 말하고 다시 식사를 이어갔다.


우리나라에 다문화가정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하지만 한국과 일본 커플이라면 이런 어색함은 흔하게 겪어봤을 게다. 어떤 커플의 얘기를 들어보면 남편이 대놓고 "너 나라는 왜 그러는 거야?"라고 따지듯이 물어본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일본인 아내는 매우 기분이 나빴지만 별 내색은 안 했다고 한다. 


나는 아내와 역사를 주제로 대화를 하지 않는 편이다. 로 불편할까 봐 일부러 피한 거다. 광복절 같은 날이면 TV에서 유독 항일항쟁과 위안부에 대한 내용이 많이 나오는데, 이때면 개그 프로와 같이 안전한 (?) 채널을 찾느라 바쁘다. 또, 이순신, 봉오동 전투 등 항일항쟁 역사를 담은 영화 정말 보고 싶으면 혼자 보기도 했다.


한일 관계가 좋았던 적이 없긴 지만, 올해는 유독 한일관계가 나다. TV 뉴스부터 시작해 다큐멘터리, 심지어 정규 프로그램 사이에 방송되는 5~10분짜리 영상까지 항일 독립운동과 위안부를 주제로 하는 내용이 쏟아져 나왔다. 이런 내용들을 계속 듣다 보니 나도 모르는 애국심(?)이 생긴 것인지 일본이 약 오르기도 다. 그래서 결국 10년 동안 일본인 아내게에게 묻지 않았던 한일 관계와 역사에 대해 진지하게 물어봤다.


역사를 해석하고 평가하는 한국, 역사를 Fact로 보는 일본

아내의 의외로 평온하게 대답했다. 일본에서도 역사는 배운다. 하지만 우리와는 방식이 좀 다른 듯하다. 우리는 생육신과 사육신을 얘기하며 생육신이 옳은지 사육신이 옳은지 생각해 보는  역사를 해석하고 평가한다. 하지만 일본의 역사 공부는  팩트(Fact)만을 알려준다고 한다. 예를 들면 '일본이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고 한국을 식민 통치했고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져 전쟁을 끝냈다.' 여기서 어떠한 주관적인 평가와 해석은 내리지 않는다고 한다. 또, 일본에서는 한국처럼 역사공부를 많이 하거나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지나간 역사보다는 앞으로의 미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랄까? 결혼 초반에는 아내가 학창 시절 공부를 열심히 하는 모범생이 아니라서 역사를 잘 모른다고 오해하기도 했는데 그건 아닌가 보다.


애국가는 한국만 있는 거 아닐까?

아내가 한국에 15년 넘게 살았지만 아직도 이해하기 힘든 것 중 하나가 한국인은 자기 나라를 너무나도 사랑한다는 거다. 그러면서 "애국가는 아마 한국밖에 없을 거야"라고 말했다. "일본은 애국가가 없다고? 그럼 올림픽에서 금메달 따면 나오는 노래는 뭐야?"라고 물으니 아내는 "그건 '국가''애국가'라고 하지 않아."라고 한다. 일본에는 한국에서 월요일 아침마다 하는 '애국조회'란 개념도 없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우 '애국'이란 말을 어릴 때부터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었다. 아내의 입장에서 보면 '애국가', '애국조회', '국기에 대한 맹세'와 같은 것들이 낯설고 제국주의 같아 다소 무섭게 느껴진다고도 한다. "일본은 옛날에 가미가제와 같이 천황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군인들도 있어잖아?"라고 물어봤지만 아내는 "그건 옛날이지, 지금 시대에 누가 그런 짓을 하겠어?"라고 한다. 


독도는 내 땅이 아니라 잘 모르겠습니다.

일본어 선생님을 하고 있는 내 아내는 가끔 수업 시간에 학생들 짓궂은 질문을 한다. "선생님! 독도은 누구 땅이라고 생각하세요?" 여기가 한국이라고 독도를 한국땅이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일본인이라고 독도를 일본땅이라도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아내는 '독도는 내 땅이 아니라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답한다. 처음 이 얘기를 들었을 땐 아내의 답변 센스가 참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보 '독도는 내 땅이 아니라 잘 모르겠다'는 말은 센스가 아니라 진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다. 상당수의 일본인도 비슷한 생각인 듯한데 일본이 개인주의가 심하다 보니 나라에 대해, 정치에 대해, 역사에 대해 별 관심이 없 한다.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사무라이 문화가 있어 쇼군을 위해 할복하는 것을 명예로운 일이라 생각했다. 또,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천황을 위해 전쟁에 참가해 목숨을 바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개인주의와는 전혀 상반되는 '애국'의 역사를 갖고 있는 일본이 언제부터 정치와 나라에 대해 무관심하게 된 걸까? 혹시, 이 무관심은 패전 이후 일본 기득권층이 만든 잘 짜인 각본대로 오랜 기간 공들여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닐까?

 

한국말을 모르는 한 외국인이 있다. 이 외국인이 지하철에서 내 발을 밟았다. 지하철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 외국인은 내 발을 밟은지도 모르고 있었다. 마침 나는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나온 새하얀 운동화를 신고 있었고, 소중한 내 운동화엔 시커먼 얼룩이 생겼다. 나는 화가 났고 외국인한테 한국말로 따지기 시작한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외국인, 낯선 한국사람이 울그락 불그락 하며 따지는데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다. 분명 화가 난 거 같은데 이유도 몰라 어리둥절하기만 할 뿐이다. 계속해서 알 수 없는 말로 따지는 나를 보고 슬슬 짜증이 났는지 외국인도 화를 내기 시작했다. 물론 난 그 외국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지금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이런 게 아닐까 한다. 소중한 내 운동화에 얼룩이 생겨서 맘이 아프단 것을 먼저 이 외국인이 알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게 순서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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