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초 일본인 아내가 시어머니에게 많이 했던 말 중 하나는 바로 '죄송합니다'였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한국으로 시집온 일본 며느리가 고약한 시어머니에게 시달림을 당하는 줄 알 테지만, 시어머니의 대답은 항상 이랬다
얘야~ 이럴 땐 '죄송합니다'가 아니라 '고맙습니다'라고 해야지~
2011년 봄, 처음 일본에 갔을 때다. 장모님이 한국에서 온 예비 사위를 공항으로 마중 나왔다. 장모님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지났다. 장모님 차엔 하이패스가 없어 요금소에서 현금으로 통행료를 지불해야 했다. 요금소에 들어선 순간 장모님은자동차 창문을 열고 '스미마셍~' 하고 돈을 공손히 건넸다.
'스미마셍? 스미마셍은 '미안합니다' 아닌가? 톨게이트 요금소에서 돈 내는 게뭐가 미안한 거지?'하루 종일 궁금증을 안고 있던 난 그날 밤 아내에게 장모님이 왜 요금소에서 스미마셍이라고 했는지 물어봤다. 아내의 대답은 매우 놀라웠다.
"일본에서 만약 누가 내 발을 밟으면 발을 밞은 사람은 당연히 '스미마셍'이라고 사과해. 하지만 발을 밟혀 아픈 나도 '스미마셍'이라고 말해"
일본 사람은'스미마셍'이란 말을 참 많이 한다. 누군가가 나 때문에 어떤 행동을 하게 하거나, 당혹 또는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에 대해 미안함일까? 이 '스미마셍'이란 단어에는 '미안합니다'란 사전적 의미보다는 '실례합니다' '감사합니다'와 같이 더 많은 함축적인 의미가 있는 듯하다.일종의 배려심의 표현?
한국의 배려는 남에게 플러스를 주는 것 일본의 배려는 남에게 마이너스를 주지 않는 것
한국 사람도 배려심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의 배려와 일본의 배려는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 배려라 하면 타인을 위해 양보를 하거나 떡 하나라도 더 주는 플러스(+)의 개념이라면, 일본의 배려는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게 하려는 즉, 마이너스(-)를 주지 않으려 하는 마음인 듯하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지금의 한일 관계를 떠올리며 "일본 사람들이 그렇게 미안하단 말을 잘하면서 우리나라한테는 미안하단 말을 안 하는 이유는 뭐냐?"라고 반문할 수 있을 듯하다.
최근 붉어진 한일 관계로 인해 나도 이 점이 매우 궁금했다. 그냥 스미마셍 한마디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이 이렇게 커져버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얼마 전 한국과 일본의 사태에 대해 우리 부부는 진솔한 대화를 나눴고 그 이유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지극히 개인적인 깨달음). 글이 길어진 것 같아 이 이야기는 다음 편에 소개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