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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쓴이 Sep 29. 2022

'괜히 병'에 걸린 사람들

자기 초점적 사고

최근에 계속 잠을 설치고 새벽에 잠드는 바람에 카페인을 끊어보기로 했다.

카페인 금단 증상으로 두통이 올 수 있다는데 역시나 머리가 지끈거린다. 무엇인가를 끊어내는 일은 이토록 머리가 아픈 것이다. 하지만 이 두통이 나쁘지만은 않다. 결심대로 잘 지키고 있다는 증거니까. 일단 새벽까지 뒤척이지 않아도 되는 게 참 좋다.

커피를 끊은 지 고작 일주일뿐이 안됐는데도 이렇게 반응이 빨리 오는 걸 보니 그동안 어지간히 카페인에 의존하며 살았나 싶다.


그리고 의외로 카페인을 끊으면서 한 가지 더 좋은 점을 발견했다. 카페만 가면 어김없이 쭈뼛대는 내가 커피가 아닌 다른 음료를 단박에 고르면서 본의 아니게 결정 장애를 극복한 것이다.

사실 돌이켜보면 나는 커피를 그다지 즐겨먹지 않았다. 워낙 급속도로 많은 카페들이 생겨나고 커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괜히 커피를 모르면 뭔가 촌스럽다고 생각할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 탓에 자연스럽게 마시게 되었다. 물론 맛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굳이 당기지 않을 때마저 습관처럼 커피를 마셨음은 분명하다.

그동안 이 커피처럼 내가 굳이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남들을 따라서 했던 일들이 무심코 떠올랐다.

 

얼마 전에 세금을 환급받을 일이 있었고, 덕분에 150만 원이라는 공돈(?)이 생겼다. 갑자기 생긴 나름의 거금을 어디에다 쓰면 좋을지 한창을 고민 한 끝에 나는 난생처음 백화점 명품관에 갔다.

매번 백화점의 명품관 앞에 일렬로 긴 줄을 지어 기다리는 사람들을 볼 때면 괜히 다른 세상 사람들인 것만 같았는데, 막상 가보니 그냥 놀이동산에서 줄 서있는 기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미리 찜콩 해둔 지갑을 실물로 영접하고 무려 90만 원 상당의 지갑을 지르는 순간을 맞이하였다. 또 언제 올지도 모를 명품관 전용 고객 카드를 작성하고 돌아서려는데, 굳이 그 가벼운 쇼핑백을 손수 들어주시며 고작 몇 발자국 안 되는 입구까지 배웅해 주시는 직원의 과다 친절에 살짝 당황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사람들이 이 맛에 여길 드나드나 싶었다.)


그런데 그날 이후 의외의 반전은 지갑을 꺼내 들 때마다 드는 나의 생각이었다. "내가 이걸 도대체 왜 산 거지?" 솔직히 처음 거금을 투자한 지갑치고는 그다지 애정이 가지 않았고,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질리는 느낌까지 들었다. 예전에 지금 쓰고 있는 지갑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에 수제 지갑을 산 적이 있었는데, 그 지갑은 볼 때마다 좋았고 예뻐 보였다. 낡을수록 더 빈티지스러운 느낌이 나는 게  좋아  꽤 오래 사용했던 기억이 있다.


결국 명품 지갑 또한 나에겐 커피와 별다를 바가 없었던 모양이다. 솔직히 돈이 아깝다는 생각보다도 남들이 책정한 명품의 가치가 내 욕구나 취향과는 거리가 먼 느낌이었다. 그 이후로 사람들이 명품에 열광한다고 해서 굳이 나까지 그럴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의 가치가 나의 가치는 아니니까.


살면서 우리는 그저 남들이 하는 게 좋아 보여서, 괜히 나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하는 일들이 생각보다 너무나도 많다. 한 번쯤 우리도 모르게 걸려버린  '괜히 병'에 대해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정말로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인지, 아니면 남들 시선이나 비위 따위에 휘둘려 '괜히' 하는 일인지 한 번 더 의심해 볼 여지가 있다는 거다.


인생 또한 남이 짜 놓은 계획표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대학을 가고, 번듯한 직장에 취직하고, 때가 되면 결혼을 하고 또 아이도 낳아야 한다. 물론 그 시기에 맞춰해야 하는 일들도 분명 있겠지만, 오히려 남들의 계획을 따라가다 정작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들을 시기적으로 놓치기도 한다.

저 모든 숙제(?)들을 다른 사람의 시간표에 맞춰 해내려고 하다 보니 자꾸 마음이 불안해지고 초조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강박은 우리의 시야를 더 넓히기는커녕 점점 더 편협한 사고에 빠져들게 만든다.


결국 삶의 질은 얼마만큼 자기 초점적으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 모두는 인생이라는 장편 드라마에 주인공이지, 결코 시청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는 자각해야 할 때이다. 각자의 드라마 속 주인공인 그대들이 일생일대의 중요한 일들을  적어도 '괜히' 하게 되는 오류는 범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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