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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모임이 너무 무서워

ISFJ 내향적인 초등 학부모의 속마음

by 두유진

“나, 요즘 진짜 힘들어요.”


카페 한켠, 따뜻한 라떼를 두 손으로 감싼 친구가 작게 속삭였다.

이제 막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한 아이를 학원에 맡기고, 간신히 짬을 내어 만난 친구는 예전보다 조금 수척해 보였다.


“처음엔 별생각 없었거든.

근데 입학하니까 진짜… 학부모 세계가 있더라.

같은 반 학부모 단톡방은 물론이고,

반 대표, 소모임, 생일파티, 등하원 픽업, 교류,

아이 생일엔 친구들 초대하고, 초대받고…

처음엔 다들 친절한데, 점점 사람들 사이에 미묘한 거리감도 생기고.

그걸 내가 다 읽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야.”


친구는 꽤 내향적인 성격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고, 관계 속에서 에너지를 얻기보단 소진되는 편이다.

나랑은 오래된 사이지만, 늘 새로운 모임은 조심스럽게 접근하곤 했다.


“그런데 말이야…

내가 이런 걸 못한다고, 우리 아이까지 소외되는 건 아닐까, 그게 너무 걱정돼.”


친구의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엄마가 된다는 건,내 성격과 상관없이 ‘잘해야 할 것들’이 갑자기 늘어나는 기분이니까.

심지어 나와는 다르게 우리 아이는 사회 속에서 잘 어울려야 한다는 ‘기대’까지 따라온다.


“둘이 집에만 있으니까,

이건 아닌 것 같고…

내가 너무 닫아놓는 건 아닐까 싶고…

모임 나가서 지쳐도, 아이를 위해선 참아야 하는 건가…

요즘 자꾸 이런 생각들만 들어.”


그 말 끝에는 자책과 혼란이 묻어 있었다.


나는 천천히 말을 꺼냈다.

“사실…그 고민 많이 하더라.. 의무적인 관계도 늘어나고, 그 사이 오해와 다툼도 생기고, 필요 이상의 감정소모도 발생하는 것 같고..

많은 내향적인 부모들이 같은 고민을 해. 아이의 사회성과 내 성향 사이에서 늘 저울질하거든.”


그러다 얼마 전 내가 읽었던 책 한 구절이 떠올랐다.


“부모가 자신의 특성을 먼저 이해하고 수용해야 합니다.” (싸우지 말라고 하지 마세요.- 이다랑 지음 p.198)


나는 그 문장을 친구에게도 전해주었다.


“너처럼 내향적인 부모라면,

억지로 모임에 자주 나가면서 감정이 소모되는 것보다, 스스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게 훨씬 더 건강한 방식일 수도 있어.

아이도 그런 부모의 모습을 보면서, ‘자기를 존중하는 법’을 배워가거든.”


친구는 조금 놀란 듯했다.

“진짜…?

나는 자꾸만,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생각만 드는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마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는 이미 좋은 부모야.

그리고, 꼭 기억했으면 해.


‘부모 모임에 안 나가도 괜찮습니다.’ (싸우지 말라고 하지 마세요.- 이다랑 지음 p.205)


아이의 사회성은 부모가 얼마나 얼굴을 자주 비추느냐보다, 가정에서 아이가 얼마나 존중받고 안정감을 느끼는가에 더 많이 달려 있어.

게다가, 너희 아이도 너를 닮아 내향적이잖아.

그 아이에게는 오히려 집에서 조용히 회복할 시간이 더 필요할 수도 있어.”


친구는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근데… 그렇다고 아이 친구를 하나도 안 사귀게 두는 건 아닌 거잖아?”


맞다. 그건 중요한 포인트였다.


“아이에게 또래 관계는 부모 생각보다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싸우지 말라고 하지 마세요.- 이다랑 지음 p.206)


나는 말을 이었다.

“맞아.

아이에게는 또래 관계가 중요한 시기니까, 전면적으로 회피하는 건 좋지 않아.

다만, 네가 감당할 수 있는 방식으로 아이에게 기회를 열어주는 게 핵심이야.


예를 들어, 학부모 모임은 최소한으로 가되, 아이 친구 한 명을 주말에 초대해 함께 놀게 한다든지,

학교 끝나고 친구와 짧은 산책을 시켜준다든지. 작고 안전한 연결부터 시작하면 돼.”


친구의 얼굴이 조금씩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아, 그리고 이런 말도 있었어.”

나는 책 속에서 본 또 다른 문장을 전했다.


“공식 모임에는 가끔 참석하세요.” (싸우지 말라고 하지 마세요.- 이다랑 지음 p.205)


“전면적인 회피보다는,

가끔씩이라도 얼굴을 비춰주는 게 아이에게는 ‘우리 엄마도 연결돼 있어’라는 안도감을 줄 수 있대.”


“음… 그건 할 수 있을 것 같아. 나도 아이를 위해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마지막으로 이런 이야기를 덧붙였다.


“부모도 쉬어야 회복합니다.” (싸우지 말라고 하지 마세요.- 이다랑 지음 p.206)


“무엇보다 중요한 건,

너 스스로가 자꾸 지쳐 있지 않아야 한다는 거야.

너 자신을 돌보는 시간이 있어야 아이에게도 좋은 에너지를 나눠줄 수 있어.”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했다.

라떼 잔은 어느새 텅 비었고, 창밖엔 부드러운 햇살이 깔려 있었다.


친구는 자리에서 일어서기 전

조용히 말했다.


“고마워.

‘해답’이란 게 꼭 정답처럼 하나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아.

오늘 언니랑 이야기하면서 나랑 내 아이에게 맞는 방향을 조금은 찾은 것 같아.”


부모의 사회성이 곧 아이의 사회성이 되지 않는다.

억지로 끼어들 필요도, 무리하게 잘할 필요도 없다.


중요한 건,

부모가 자신을 이해하고

아이의 관점에서 연결의 기회를 열어주려는 ‘마음’이다.


그 마음만 있다면,

우리는 이미 ‘충분히 좋은 부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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