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은 마치 자동차 여행과도 같습니다. 가다 보면 풍광이 좋은 가로수 길을 만날 때도 있고, 전혀 예기치 못한 사고를 당할 때도 있으며, 멋진 해변도로를 상쾌한 기분으로 달려갈 때도 있고, 긴 터널을 갑갑한 마음으로 지나가야 하는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멋지고 신나는 길만 만나기를 기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제 우리의 삶은 자동차 여행보다 훨씬 다양하고 드라마틱한 경험을 안겨 줍니다. 살다 보면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도 만나게 됩니다. 즐겁고 기쁜 순간도 만나게 됩니다. 인생의 큰 터닝 포인트와 같은 사건도 만나게 됩니다.
본시 인생은 내가 경험하고 싶은 것보다 항상 더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합니다. 그중의 많은 부분을 내가 거부하고 싫어하지만, 그러한 부분들로 인해 다른 삶의 경험들이 더욱 빛나고 가치 있을 수 있습니다. 장자는 “당신이 길을 걸어가는데 땅을 딛는 부분 이외에는 모두 필요 없는 부분이라고 잘라내 버리면 걸어갈 수 있는가?”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종종 우리는 인생의 경험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만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싫다고 힘들다고 판단하고 거부하려 합니다. 과연 우리가 이와 같은 우를 범하지는 않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코칭을 하다 보면 지금 힘든 시기에 놓여있는 분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그분들은 한결같이 지금의 이 고통이 너무 힘들다고,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토로합니다. 그래서 그 힘든 상황을 음식이나 술로 달래기도 하고, 충동적 쇼핑으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합니다. 필자가 만약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삶의 고난을 그 당시 겪지 않았더라면 지금 이 분들의 심정에 아마도 충분히 공감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했을 거라 생각하면 그때 내게 닥친 역경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새삼 더 느껴지곤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합니다.
Q1: 당신은 어떤 존재이길래 지금 이런 고통의 상황 속에 놓여 있나요?
Q2: 지금의 이 상황이 당신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즉 지금 이 고통 속에 혹은 숨겨진 이면에 어떤 메시지가 있는지,
이 고통을 통해 삶은 당신이 무엇을 알아차리기를 소망하고 있으며,
어떤 의미를 발견하기를 기대하고 있는지.
Q3: 지금 이 고난을 통해 당신은 당신의 어떤 잠재력과 탁월함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Q4: 그렇다면 지금 실행할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Q5: 이제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한다면,
통제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이고,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고객이 이 질문들에 답을 다 하고 나면,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은 온전히 수용하고,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온 힘을 다해 매진하도록 지지합니다. 혹 지금 이 순간 고통 속에 놓인 분이 있으시다면, 위의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시고 그에 대한 답을 곰곰이 생각해 보셔도 좋겠습니다. 위의 질문들에 답하다 보면, 자신이 어떤 존재이길래 지금 이런 고통의 상황 속에 놓여 있으며, 지금의 이 상황이 내게 주는 메시지와 고통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 겁니다. 만약 이를 깨달을 수만 있다면, 그 순간 고통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며, 오히려 축복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임상심리학자 대니얼 고틀립(Daniel Gottlieb)은 그의 저서 《샘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잃어버린 것을 놓고 마음이 슬퍼할 때, 영혼은 새로 얻을 것을 놓고 기뻐한다.”라고 역설한 바 있습니다. 이 말은 고통 속에 있는 지금 이 순간 비록 어떤 상실로 인해 마음은 고통스럽더라도, 나중에 언젠가는 그 고통의 의미를 깨달을 시점이 오며, 그때 영혼의 영적 성장 즉 나라는 존재의 성장이 있을 것임을 암시합니다.
또한 아인슈타인은 ‘어떠한 문제도 그 문제를 만들어낸 것과 같은 수준의 의식 수준에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대니얼과 아인슈타인의 말을 연결 지어 보면, 지금 고통에 놓여 있는 사람이 현재의 고통 속에 매몰되어 단지 마음 차원만으로 고통을 바라볼 때, 고통은 치유되지 않으며, 마음을 넘어 영혼 수준이 되어야 비로소 고통이 치유가 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삶에서 마주하는 모든 고통을 나의 영혼의 영적 성장의 기회로 받아들인다면 그 순간 우리가 맞닥뜨리는 고난과 역경은 축복이 되지 않을까요.
행복한 경영이야기 제650호 ‘고난과 역경을 축복의 통로로 삼아라’ 글귀에서도 이와 같은 맥락을 이야기합니다.
영어로 ‘기회는 지금 여기에 있다(Opportunity is now here)’와
‘기회는 ‘아무 곳에도 없다(Opportunity is nowhere)’는 문장은
한 단어를 띄어 쓰느냐 붙여 쓰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니 현재의 시련을 기회로 보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를 가지라.
- 강영우 박사, ‘꿈이 있으면 미래가 있다’에서
14세에 실명이라는 고난을 딛고 일어서,
미국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위원이 된 강영우 박사는
당시 하느님이 눈을 고쳐 달라는 기도에 ‘예스’로 응답하지 않고
‘노’로 응답했기에 오늘의 자신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역경은 고난의 능력(Negative Capacity)을 키워주는데,
이는 그런 고통을 경험한 사람만이 갖게 되는 능력이고,
결국은 인생 승리의 자산이 된다고 설명합니다.
앞서 언급한 대니얼 고틀립(Daniel Gottlieb)은 그 자신이 온몸으로 전 생애를 통해 인생 승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고교시절부터 겪은 학습장애로 낙제를 거듭하여 대학을 두 번 옮긴 끝에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정신과 전문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33세에 교통사고로 척추에 손상을 입어 사지가 마비되고 맙니다. 그는 전신마비로 인한 우울증을 기적처럼 극복하고 다시 시작하게 되었지만, 사랑하는 아내는 그에게 이혼을 요구합니다. 그 후 극심한 우울증, 자녀들의 방황, 아내와 누나, 부모님의 죽음을 차례로 경험하였지만 삶의 지혜와 통찰력, 연민의 마음으로 30여 년간 심리 치료 상담을 통해 세상으로부터 아픔을 겪는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결국 사람은 자신이 감당한 고통의 총량만큼 성장합니다. 따라서 한 사람의 위대성의 척도는 고통을 감수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움받을 용기》로 국내에 알려진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도 그의 저서 《인간 이해》에서, ‘삶의 역경을 극복하고 삶의 늪에서 벗어난 사람은 모든 것을 버리고 재기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며, 삶의 명암을 모두 경험해 본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 한해서는 어떤 사람도, 심지어 의인조차 그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역설한 바 있습니다. 실존주의 철학자 니체(F. W. Nietzsche)도 안락하고 고통 혹은 고난이 없는 삶을 넘어, 설사 역경에 처하더라도 온전한 자기 존재감으로 자기를 극복하여 자신의 가치와 신념에 따라 자기를 창조하는 초인(Ubermensch: 위버멘쉬)적 삶을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의 시점에서는 실패로 보일 수 있겠지만, 인생 전체를 두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지금의 실패는 진짜 실패가 아니라 더 큰 성장을 위한 소중한 경험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뭔가를 시도하여 실패한 것은 그래서 그로 인해 겪은 고난은 사실 그냥 안전하게만 지냈다면 결코 경험할 수 없었던 새로운 세계로 나갈 수 있는 문(기회) 일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앞서 ‘과거의 나와 헤어질 결심’ 편에서 언급한 박찬욱 감독이 제13회 청룡영화제에서 한 수상 소감을 잠시 전합니다.
“제가 설국열차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송강호 씨가 아주 오래돼서 아무도 모르지만 이 ‘벽’은 사실 ‘문’이라고 말하는 장면입니다. 여러분도 내 안에 사실은 벽이 아닌 문이었던 부분을 찾을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