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하지만 자극은 필요하니까, 책 보기

표지와 띠지 그리고 뒷면의 책 소개를 보는 재미란

by 김바리
“낡은 레코드 수집은 어디까지나 내 취미고,
취미라는 건 스스로 규칙을 만들어하는 게임과 비슷하다.”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 134p



나의 취미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책 보기’이다. ‘책 읽기’가 아니고 ‘책 보기’인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데, 새로운 책을 읽기 시작해 완독 한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때때로 나는 책의 내용에 이끌려 독서를 시작한다기보다 책의 표지와 제목, 뒷면의 소개에 이끌려 ‘책을 보는 경험’ 자체를 즐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이 ‘책 보기’의 역사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추측 건데 크게 두 가지 이유로 읽기보다 보기에 좀 더 몰두하게 되지 않았을까 한다.


첫째로, 해외 생활 중 자주 드나들었던 서점의 경험.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나는 독서량이 다른 사람에 비해 많은 편에 속하지 않았다. 특기할 만한 여가 생활이 없었던 터라 주로 서점에 가거나 음반 판매점 등에 들러 음악을 듣고 책을 훑어보는 식으로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그중 아주 좋은 기억으로 남은 공간은 일본의 츠타야인데, 어쩌면 지금 나의 취향의 상당 부분을 만든, 나에겐 꽤나 의미 있는 공간이다.


서점에서 서재에 꽂힌 책이나 평대에 늘어져있는 잡지 등을 보면 외국어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했기에 책의 내용을 추측하는 데는 표지 그림이나 띠지, 표지 뒷면의 주요 대사 등을 유심히 살펴보는 것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런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니 책을 읽는다기 보다 책의 표지를 구경하는 일에 조금씩 재미를 느꼈던 게 아닌가 싶다.


두 번째로는 도서관 사서 경험이다. 학부 시절에 1학년 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교환학생을 다녀왔던 6개월을 제외하고는 학부 생활 내내 학교 도서관에서 대출/반납 아르바이트를 했었다(이때 경험이 얼마나 강한지 가끔 꿈에서 아르바이트 시간에 늦어서 곤란해하는 꿈을 꾸기도 한다). 프런트에 앉아 가방을 메고 오가는 다양한 학생들을 관찰하는 재미도 있었지만, 책을 대출해주고 반납을 받는 순간에 대출 반납을 하는 학생의 분위기와 책 표지를 대조하며 책의 내용이나 작가의 스타일을 나름대로 추측해보는 재미도 있었다.


지금도 종종 광화문 교보문고를 가면 각각 다른 섹션 평대에 놓인 신간 책, 베스트셀러를 훑느라고도 정신이 없지만, 각 섹션에 발걸음을 멈추고 골똘히 책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행위는 나에게 꽤나 큰 재미를 선사해준다.


이러한 이유로 ‘책 보기’는 내 일상에서 빠뜨릴 수 없는 취미이자 하루키의 말대로 일종의 내가 만든 규칙이 있는 게임이 되었다. 문제는 이 게임을 즐기면 즐길수록 곤란한 상황이 생긴다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그리 넓지 않은 안방이 점점 더 읽지 않은 책으로 채워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지금까지는 가족 복지의 힘을 빌려 거의 무상으로 책을 제공받았었지만 이제 책 구매 비용에 관해서 내가 온전히 부담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보니 매월 소비하는 책 구매비용이 조금씩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는 것도 문제다.


이런 곤란한 상황을 고려해 올해는 ‘책을 사서 읽지 않을 것이다!’라고 당당하게 선언을 한 지 불과 이 주 째. 나는 9권의 책을 샀고, 이 중 완독 한 책은 1권에 불과하다. 하하.


KakaoTalk_20220206_225104911_01 (1).jpg 2주 사이 구매한 책의 일부


며칠 전 주말, 느긋하게 독서를 즐기다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 후 테이블 위에 잔뜩 쌓인 책들을 확인한 나는 갑자기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여행을 간 지 오래되었다는 것과, 영화관에 가는 빈도가 부쩍 줄어들었다는 사실이었다.


무언가 새로운 자극을 원하는데, 물리적으로 이동하는 것이나 두세 시간 동안 오래 앉아 하나의 이야기를 보는 것보다 빠르고 편하게 이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으로 나는 책을 택한 걸까? 그렇다면 만일 내가 여행을 하고 영화를 보면 책을 덜 사게 될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떤 게 나에게 더 도움이 되는 선택일까? 가성비로 따지자면 누군가가 직접 경험한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두세 시간 안에 흡수할 수 있다는 사실에 있어서 책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 하지만 이 경험은 온전히 내 것은 아니라는 한계가 있다. 고로 여행은 여행 나름대로 의미가 있겠지.


영화는 어떤가? 사실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도 있는 것이 나는 지금 구독하고 있는 OTT가 총 네 개다. 그런데 그 어느 것도 진득하게 어떤 시리즈를 정주행 했다거나 또 영화 하나를 시작부터 끝까지 감상한 작품이 최근에 들어서는 거의 손에 꼽을 정도이다 (최근 2~3개월 내에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시네큐브에 가서 본 <어나더 라운드>는 단순히 영화의 내용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영화관 경험에 있어서도 일상의 환기를 가져다준, 꽤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혼영 만세).


KakaoTalk_20220206_225934729.jpg 시네큐브가 사라진다면 마음 한 곳에 큰 구멍이 날지도 몰라


영화관을 자주 가면 책을 덜 살까? 여행을 가면 책을 덜 살까?
그런데 이 질문이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답이 있을까?


지금은 책을 보는 이 게임이 재미있다. 올해 책을 사서 읽지 않고 빌려 읽겠다는, 나만의 규칙을 세웠지만 이미 이걸 지키기는 그른 거 같다. 어쩌면 나는 이 규칙을 어기는 것을 게임의 일부분으로 즐기고 있는 건지도.


최근에 뉴스레터에서 읽었던 내용이 떠오른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심리가 있기 때문에 원하는 방향이 있으면 긍정적인 언어로 바꾸어 ‘~하라’고 말하라고.


그럼 나 김바리가 김바리에게 재정적 여유와 공간의 여유를 위해 책을 안 사게 하려면, 이렇게 말해주어야 할까?


“바리 너, 매주 도서관 가라!”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새로 나온 책이나, 인기가 있어 예약이 4,5명 걸려있는 책에 대한 욕구는 어떻게 누그러뜨리면 좋을까요. ‘기다림’ 이 어려운 나란 인간의 인내력을 여기서 테스트해야 하는 걸까요?


어쩌면 도서관에서 책 빌려 읽기 는, 올해 내 인내심 기르기 프로젝트의 일환이 되어줄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찬 사고의 전환을 하며.


혹시 이런 책들에 대해 인내력 있게 기다리는 방법을 알고 계신다면 조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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