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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에서 7시 사이에 해서는 안 되는

by 마음돌봄

아이들에겐 지랄 총량의 법칙이 있고, 어른들에겐 에너지 총량의 법칙이 있다.

무작정 다 해낼 것 같은 마음이 벅차올라도 워워 잠시 숨을 고르시라.

나에게 월, 수, 금요일은 주 수업이 있는 날이다.

특히 월요일과 수요일은 저녁 시간 한 시간을 빼놓고 10시에 수업이 끝난다.

금요일은 저녁까지 하고 싶지 않아 7시 안에는 일과를 마친다.

토요일, 일요일보다 설레는 밤.

Friday Bookclub을 위해서도 절대 바쁘고 싶지 않은 밤이다.

화, 목요일도 일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날들은 유동성 있게 조율한다.

작년에 주 5일 수업을 한 결과 너무나 많은 에너지가 소모됨을 느꼈기 때문이다.

더 이상 하루 12시간씩 수업하던 20대가 아니었다.


오전 시간, 아이들과 남편을 각자의 일터(?)로 보내고 회화 선생님과 이야기 나누는 요일도 월, 수, 금 3일이다. 굳어가는 입을 풀어주기 위해 이 시간 확보는 필수다.

가끔 일주일에 세 번, 같은 시간에 선생님을 만나는 일이 힘들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노출'양'을 늘려야 하는 이 시점에서 이 스케줄은 뺄 수 없다.

이후엔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오늘 수업할 플로어를 짜야한다.

어떤 걸 해야 아이들에게 더 전달이 잘 될지 고민해야 하고, 자칫 지루하면 안 되니 재미있는 재료 준비도 필수다. 갑자기 워크시트를 막 찾기도 하며, 구부러진 플래시 카드를 굽기도 해야 한다.

각자에게 숙제로 줄 원서책과 퀴즈도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다.

그 사이사이 글도 쓰고 싶고, 내 공부도 하고 싶고, 책도 읽고 싶고,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할 것이 많다.


이럴 때 갑자기 전화가 와서 만나자고 하거나 잠깐 밥만 먹고 가라고 연락이 오면 불편함을 이제 감출 수 없다. 나는 분명히 변했다. 이 정도쯤은 뭐 해야지 하고 맞춰주는 게 더 이상 쉽지 않다.

예정된 약속이나 스케줄이 아닌 이상, 특히나 월, 수, 금요일은 타인에 의해 침범되는 시간은 불편리하다.

다 준비되어 있으니 와서 밥 먹고 가라고 하지만 왔다 갔다 이동하는 시간이 있다.

그리고 거기에 잠깐이라도 소모되는 감정은 나의 계획된 하루로 돌아가기에 또 시간이 필요하다.


이쯤 되면 마치 나란 사람이 칸트의 시계처럼 정확하고, 굉장히 합리적으로 하루를 보내는 사람 같겠지만 그건 전혀 아니올시다이다.

식구들을 보내고 혼자 지내는 시간이 나에겐 금과옥조 같은 시간이다.

특히 월, 수, 금요일은 꼭 청소를 하는데 정리나 청소를 힘들어하는 나에겐 시작하는 것부터가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하다. 그리고 날마다 쓰레기는 어찌나 많이 나오는지 가끔은 청소하다 인생이 끝날 것 같은 기분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무거운 덤프트럭을 운전하는 기분이 들 때면 빨리 청소에서 해방되고 싶은 생각이 엄습한다.


놓쳐버린 나만의 아침공부 스케줄을 뒤로하고, 아침 식사 준비와 식구들 챙기기, 영어회화 수업, 청소, 쓰레기 버리기, 공부방 친구들 간식 준비와 수업 준비, 저녁 식사 메뉴 미리 준비하기, 온라인 과제 점검 등등 분명한 스케줄이 있다.

지난 월요일은 이런 스케줄이 있음에도 일 약속을 했다가 헉헉대며 돌아왔는데, 들어오면서 계속 드는 생각은 다시는 절대로 무조건 월, 수, 금은 약속 금지라는 것이다.


가장 신경이 곤두서는 순간은 2시에서 7시 사이에 걸려오는 전화이다.

한참 수업을 하는 시간, 도대체 나의 가족들은 왜 전화하는 것일까.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은 내가 일하는 시간을 카톡 프로필에 올려놓을까 하는 것이다.


Black and Orange Collage Notice Quote Instagram Post.png



이렇게 해놓으면 괜찮을까?

쌀쌀해 보일까도 걱정했지만 예기치 않은 전화나 스케줄에 당황하는 것보다 나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맴돈다. 학생들을 만나는 수업이란 건 교사가 혹은 강사가 예전에 배웠던 기술을 반복하는 게 아니다. 그렇게 해버린다면 수업의 질은 현저히 낮아질 것이고 자꾸 몸이 편한 것만 찾게 될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수업은 대면수업이든 비대면 수업이든 완전히 그들에게 집중해줘야 한다. 온라인에서도 선생님이 학생에게 얼마나 집중하고 있느냐는 분명히 느껴진다.


이틀 전 글쓰기 모임에서 호흡법에 대해 배웠다. 단 3분의 올바른 호흡이 두 시간의 생명을 연장한다고 한다.

천천히 5초 동안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5초 동안 내뱉기.

처음엔 한 번으로 시작해도 되고, 이후 3분 정도까지 진행하면 좋다.

이 호흡을 혼자 하지 않고 손을 잡을 수 있는 거리 안에 있는 사람들과 해도 서로의 마음 안정과 스트레스 완화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하물며 30분에서 한 시간을 함께 하는 수업은 오죽할까.

수업이 만족스럽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준비가 필요한 것이고, 나는 그 준비 시간이 분명 필요한 사람이다.

그동안 배웠던걸 욹어먹기엔 기억력도 쇠퇴했고, 알량한 양심에도 맞지 않는다.


더 이상 내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다.

쫓기듯 시간을 쓰고 싶지도 않다.

나의 에너지의 양이 현재 그러하다.

많은 것을 다 해내려고 하는 습성을 자꾸 조절해도 다시 차오르는 여러 계획들이 있기에 더욱 그렇다.

헉헉대며 살지 않기 위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내 에너지는 얼마나 되는 것일까.

충천하고 쓰고, 재충전하고 쓰고.

이 박자를 균형 있게 맞추기 위해서 배려받고 싶다.

Monday, Wednesday, Friday.

잠시만 이해해 주세요.

나도 당신을 이해할게요.



lesly-juarez-DFtjXYd5Pto-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Lesly Juare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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