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어느 밤이었다. 뒤통수만 베개에 닿아도 금세 잠들어 버리는 내가 깊이 잠들어 있던 새벽에 웬 소리에 잠을 깨 버렸다. 처음에는 밖에서 나는 소리인가 했는데, 자세히 듣고 있다 보니 부모님이 싸우는 소리였다.
그때 세상에 난 지 몇 년 안 된 내가 난생처음 온갖 비속어들을 듣게 되었다. 아빠는 입을 벌리고 나오는 대로 엄마를 향해 온갖 욕설을 쏟아붓고 있었다. 욕만 하면 다행이겠지만, 엄마를 때리면서 말이다. 깨어 있는 것을 들킬까 싶어서 이불속에서 숨죽여 눈물을 쏟아내며 애꿎은 이불만 적시고 있었다. 아빠의 욕설과 폭력은 엄마를 향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나를 향하고 있었다. 이불속에서 나는 온몸으로 너무나 무서웠던 그 폭력적인 상황을 견뎌내고 있었다.
아버지의 가정폭력이 처음에는 주로 새벽에 이루어졌으나, 아이들에게 한번 들킨 이후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화가 날 때마다 참지 않고 폭력적인 상황이 펼쳐졌다. 다시 말하자면 아빠는 자신의 화를 어느 순간부터 절제하지 않았고 화가 나는 즉시 폭언과 폭력을 과감 없이 펼쳐냈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이런 상황이 생길 때마다 나와 동생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하지 마, 엄마 때리지 마, 엄마한테 욕하지 마'라고 울면서 아버지에게 애원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다 중학생이 된 어느 여름날, 시험 기간이라 일찍 집으로 돌아온 날이었다. 그날도 엄마와 아빠는 다시 싸움을 시작했다. 십여 년간 참고 또 참으며 내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았던 분노가 화산이 폭발하듯 터져 나오고 말았다. 나는 울었고, 울음을 삼키며 주방으로 가서 커다란 식칼을 들고 부모님이 싸우고 있는 거실로 나왔다. 그리고 가지고 나온 식칼을 들이대며 아버지란 사람에게 가져가며 '죽여 버리겠다'라고 소리를 질렀다. 다행히 내 손에 들려 있던 칼은 엄마의 손으로 옮겨갔고, 그날 두 사람의 싸움은 거기에서 일단락되었다.
부모님의 싸움을 처음 목격한 그날 밤부터 고등학교 3학년이 되기까지 내게는 너무나 간절한 꿈이 생겼다. '독립'의 꿈이었다.
지긋지긋한 이 집구석 내가 나가 버려야지.
공부를 썩 잘한 편은 아니었지만, 무조건 대학은 서울로 가겠다고 생각했다. 아빠를 보지 않는 것만으로, 엄마와 아빠의 싸우는 꼴을 보지 않는 것만으로도 내게 이보다 더 큰 자유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대학 수학능력시험을 친 후 점수와 상관없이 내게 주어진 3번의 기회를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모두 지원했다. 3군데 중 두 군데는 애초에 탈락했고, 마지막 학교에서는 대기 번호가 주어졌다. 64번이었던가. 꽤나 큰 숫자였고, 3월 입학식 날짜가 다가오고 있음에도 예비합격 소식이 들려오지 않아 초조했다. 2월 말,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예비합격 통지. 그리고 그토록 꿈꾸던 나의 자유가 비로소 찾아왔다. 오랜 시간 갈망하던 독립의 꿈이 이루어짐과 동시에 새로운 자유를 찾는 여정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