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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 Mirror Oct 14. 2021

구멍 뚫린 주머니

누굴 닮았는지 어린 시절 겉으로는 꽤 순해 보였고 주변에서 늘 '착하다'는 말을 듣던 나였지만 사실 알고 보면 무척 고집이 센 아이였다. 하기 싫은 걸 억지로 시키는 걸 무척 싫어했다. 



어린 시절의 어느 명절이었던 것 같다. 추웠던 걸 보면 설날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시는 큰집이 집에서 그리 멀지도 않았는데 아버지는 새벽부터 자고 있는 나를 깨웠다. 가기 싫다고 계속 눈을 감았지만, 결국 외출복은 입혀졌고, 어느새 우리 가족은 칼바람을 맞으며 택시가 다니는 큰 길가로 걸어가고 있었다. 막내와 둘째는 엄마와 아빠 손에 한 명씩 붙들려 있었고, 첫째였던 나는 가기 싫은 걸음을 질질 끌며 마지못해 뒤따르고 있었다. 



그날따라 주머니에 동전이 무척이나 많았다. 나는 화가 나서 주머니 속의 동전을 가는 길에 하나씩 하나씩 떨구었다. 마치 헨젤과 그레텔에서 헨젤이 빵을 뜯어 길에 던지면서 집으로 가는 길을 표시해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주머니 속에 묵직하게 들어 있던 동전을 바닥에 다 버리고 나니 심통 났던 마음이 좀 가라앉았다. 한참이 지나 어른이 되어서 그때 그 돈을 주운 아이들은 정말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하기 싫은 걸 시키면 혼자 마음이 엄청 토라져서 결국엔 억지로 시킨 것에 대한 반대급부로 무엇이든 몰래 일을 저지르고 마는 그런 아이였다. 


중학교 3학년 졸업식을 앞두고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시점에 우연히 도서관에 소속되어 있는 중고등학교 연합동아리 중 독서토론 동아리에 가게 되었다. 또래 친구들과 선배들, 그리고 평소에 책에 관심은 없었지만, 안 읽어보던 책을 읽고 그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발표할 수 있는 그 시간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이 역시 고등학생이 무슨 동아리냐'며 엄마의 반대에 부딪치고 말았다. 왜 그렇게 엄마 앞에선 하고 싶다 말도 못 하고 한없이 작아지기만 했을까. 엄마의 한 마디에는 마치 고양이 앞 생쥐처럼 한 마디도 못 해 보고 그저 '알았다'라고 얘기할 뿐이었다. 그리고 돌아서서는 이불속에 얼굴을 파묻고 너무나도 하고 싶은 마음에 펑펑 울었다. 공부에 방해된다고 했던 엄마의 반대로 독서토론회는 못 갔지만, 고등학교 1학년 친구와의 주선으로 반팅을 했고, 그곳에서 애인을 만들었다. 고등학교 1학년 겨울부터 2학년 겨울 고3 수험생활을 앞두고 연애를 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2년은 1년의 썸과 1년의 연애로 공부는 대체로 뒷전이었다. 



무엇이 되었든 '하겠다' 혹은 '하고 싶다'라고 마음을 먹으면 무조건 해야 하는 편이었다. 완벽하게 하기보다는 우선 빨리 실행해 보고 좋은 지 말지 결정한다. 어떤 일이든 굉장히 빠르게 실행하는 대신 꾸준히 해 나가는 끈기는 조금 아니 많이 부족했다. 어쩌면 어릴 때부터 엄마를 무서워했고, 엄마가 시키는 건 뭐든지 했으며, 엄마의 반대 앞에서는 아무리 하고 싶어도 '내가 왜 이걸 해 보고 싶은지' 얘기하고 설득해 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엄마라는 틀 안에 갇혀 살면서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내 멋대로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열망이 더욱더 강해졌는지 모르겠다. 


어릴 때는 그렇게 시키는 대로 뭐든 잘하던 딸이 나이 들어서는 뭐라고 하던지 반대로만 하는 나를 엄마는 이렇게 불렀다. '조선에서 제일 제멋대로 사는 놈'


하기 싫은 운동, 하기 싫은 학습지, 입기 싫은 옷, 신기 싫은 신발. '나'라는 자아가 커질수록 점점 더 내게 무조건 하기를 바라는 엄마의 요구에 '반대하는 마음'은 커져만 갔다. 엄마의 요구를 억지로 꾹꾹 눌러 담으며 살아온 덕에 그만큼 자유를 향한 마음도 커지고 폭발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엄마의 '조선에서 제일 제멋대로 사는 놈'이란 말이 싫지는 않다. 오히려 더 좋다고 해야 하나. 아주 마음에 드는 별명이다. 물론 그런 나를 보며 엄마는 가슴이 꽤 답답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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