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듕쌤 Oct 19. 2023

<2화>자살을 하고 싶다는 나의 학생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것 같다면,

나는 우리나라에서도 최고 부자동네 중 한곳으로 뽑히는 반포동에서 필라테스를 가르치고 있다.


우리 센터는 어른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많이 오는데 최근 남다른 학생이 하나 들어왔다.


"제가 너무 소심해서 병원에서 운동을 하라고 했어요."


소심한데 병원에 왜 가고 운동을 왜 시키는건지. 처음엔 그냥 흘려들었지만 갈수록 의구심은 커져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학생은 작은 목소리로, 그러나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선생님. 아파트 9층에서 떨어지면 한번에 죽어요? 아니면 힘들게 고통스러워 하다가 죽어요?"


나는 쪼그라든 심장을 들키지 않으려 침을 한번 꼭 삼키며 무심하게 대답했다.


"그건 왜 물어? 어디 유튜브라도 봤어?"


처음엔 그냥 묻는거라던 학생은 횡설수설 하다가 집요한 내 질문에 어느순간 솔직한 마음이 툭 하고 튀어나와버렸다.


"자살할라구요."


나는 그녀의 다리를 잡고있던 두 손을 툭 하고 떨어트렸다.


"대체 그게 무슨소리야? 너 엄마도 너가 자살하고 싶다는 거 알아?"


사실 9층에서 떨어지면.. 이라는 순간부터 내 마음속에는 커다란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다.


9층은 나의 할머니가 삶의 마지막 순간으로 선택했던 장소였다.


학생은 평소와 다름없는 어디를 바라보는지 모를 공허하면서도 사람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묘한 시선으로 답했다.


"네. 엄마한테 말했더니 막 우셔서 그다음부터는 말을 못하겠더라구요."


"야~ 당연하지! 나도 이렇게 눈물이 날 것 같은데 너네 엄마는 오죽하겠어??"


그렇게 자살에 대한 대화는 마무리 하고 싶었다. 그 단어를 마주하는 순간들이 내게는 쉬운 일만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아주 집요하게도 자살에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몇층에서 떨어져야 고통없이 한방에 죽을 수 있을까요?"


너무 화가 났지만 최대한 차분하게 학생의 두 손을 잡으며 물었다.


"왜 자살이 하고 싶은데?"


그녀의 이유는 이러했다. 이번 생은 망했다고. 예쁘지도 않고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병신이라고.


나는 학생의 어깨를 툭 치면서 놀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머! 너 스스로를 병신이라고 생각하면 어떡해?? 그럼 내가 너 병신이라고, 못난이 취급하면 좋아? 너가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면 타인도 너를 그렇게 볼 수밖에 없어~ 너가 너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당당해져야지! 어머 어머. 병신이란말 하지마 앞으로!"


그날은 그렇게 끝이났다. 운동 반 대화 반인 수업이 끝나고 나는 퇴근할 때가 되어 짐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학생은 집에도 가지 않고 그곳을 무한정 서성이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집에 왜 안가??"

"집에 안가고 얘기 더 하면 안돼요?"

"나는 집에 갈건데~~ㅎㅎ"

"그럼 같이가요."

"왜?? 집에 안가고?"

"집에 가기 싫어요."




학생은 외동딸이었다.


잘나가는 엄마아빠를 두고 부족할 것 없는 지원을 받으며 자란 그녀.


하지만 그녀를 보면 무언가가 빠져있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뭐지? 이 느낌은? 예의가 없지도 않고 사회성이 없는 것 같지도 않고 아이컨텍도 잘 되는데 왜지?


학생은 우리 센터에 들어오면 다른 회원이 운동을 하고있는 도중에 그 옆으로 거침없이 걸어가 그들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들어가면 안된다, 쳐다보면 사람들이 싫어한다, 말을 해주면 그래요? 하다가도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같은 행동을 했다.


반적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알게된 건, 바로 '교감의 부재'였다.


그녀의 삶은 늘 평온했다.

모든것을 다 해주는 부모, 아이처럼 챙기는 부모. 부족한 것도 없고 타인을 이해할 필요도 없던 삶.


그렇게 아이로 남아있는 마음과 달리 몸은 점점 커 청소년이 되었고 성숙해져가는 또래들 사이에서 그녀는 외톨이가 되며 자존감또한 바닥을 치게 된 게 아닐까.


그리고 그 다음 수업날, 그녀는 어김없이 또 자살 이야기를 꺼냈다.


"봐, 앉아봐. 누가 더 불행한지 내기할래?"

"네. 제가 무조건 이길걸요?"

"하이고? 배부른 말씀~? 내가 이기면 앞으로 너 자살한단 말은 안하는거다?"

"네."


아이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다고 확신했다.


"세상에 저처럼 못생기고 할줄 아는것도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저는 진짜 최악이에요."


그녀의 모든 근거는 오로지 자신의 '생각'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그녀에게 진짜 불행이 뭔지 알려주고 싶었다.


"나는 가족이 자살했어."

"푸하하하하."

아이는 깔깔대고 웃었다. 그러다 진지한 내 눈빛을 라보고는 웃음을 싹 거둬들였다.

"진짜요?"

"어."

"와 부럽다."

나는 악에받쳐 그 학생보다 내가 더 불행한 삶을 살았다는걸 보여주고 싶었다.


"부럽다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할수가 있어? 그때 우리엄마는 우울증에 걸려서 8년을 약을 드셨어. 안그러면 엄마도 죽을 것 같아서."


"저도 약 먹어요."


이래도 자신이 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너는 방금 너가 10억이 있댔지? 나는 학생때 돈이 하나도 없어서 학교를 내가 돈벌어서 다녔어. 이거의(우리 센터 한 칸 공간을 가리키며) 두배안되는 집에 세네명이 살았어."


"헐. 진짜요?"


"어~ 그리고 나는 가진것도 없고 너무 가난하고 못생겨서 나같은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평생 결혼도 못할줄 알았는데 이렇게 극복해서 잘 살고 있는거야."


학생은 자신의 못생긴 코를 가리기 위해 늘 쓰고있는 마스크 뒤로 놀라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자. 이제 너 차례야. 니가 나보다 불행한거 말해봐."


학생은 그제야 손사레를 쳤다.


나의 불행을 들은 그 아이의 표정에는 슬픔이 아닌 즐거움이 묻어있었다.


아마도 부잣집에 대단한 아이들이 모여있는 동네에서 자신보다 불행한 사람의 이야기는 들어보지도 못했으리라. 혹여 어디서 그런 말이 들려도 "에이~ 세상에 진짜 그런 사람이 어딨어요~"하며 흘려넘겼을테지.


눈앞에 놓인, 직업도 있고 얼굴도 자신보다 예쁘고 공부도 잘했고 친구도 있는 선생이 자기보다 불행한 삶을 살았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거다.


"나는 힘든 순간이 오면 가만히 생각을 해. 내가 왜 그런 마음이 되었는지, 그런 마음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너는 그런 생각 해본적 있어?"


"아니요. 한번도 없어요."


"거봐. 아무런 노력도 안해봤잖아. 너는 불행한 축에도 못껴~ 앞으로 내가 죽을 때까지 너는 절대 자살 못하니까 그렇게 알고 생각을 많이해. 알았어?"


(끄덕끄덕) "네"


아마 다음 수업에 와서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고, 그냥 자살하면 안되냐고 또 같은 과정을 반복할거다.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얘기들을 내게 뱉어내며 조금씩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은 그녀의 모습을 보게 되겠지.


세상에 나만큼 불행한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생각이 들면 죽는 대신 차라리 모든걸 버리고 도망쳐보거나, 불행한 것 같은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래도 내 삶은 조금 살만하다는 생각을 하면 어떨까.


위선적이어도 괜찮다.


불쌍한 삶을 바라보며 내 삶이 조금은 더 낫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다보면 나도 어딘가엔 쓸만한 존재가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완전한 행복만 있는 삶도 존재하지 않듯

완전한 불행만 있는 삶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지금 이 순간, 살아있음이 축복이고 행복이다.


이전 01화 <1화>안락한 삶은 지옥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