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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테스 강사 안해볼래요?

8화.

by 민듕쌤

"대금 지급이 잘못된 것 같은데요?"


그날부터 내 회사 생활은 더 이상 천국이 아니었다.


룰루랄라 적당히 주어진 일을 수행하며 동료들과 맛있는 식사도 하러 다니고 퇴근 후엔 즐겁게 취미생활을 하는 삶이 와장창 깨어졌다.


대금지급이 왜 잘못된 건지 원인부터 찾아야 했다.


우리는 자동화 시스템이 되어있어 시스템이 알아서 어음 일자를 확인하고 분할해 주는데 그 '시스템'에서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지난달에 시스템을 수정한 게 하나 있는데 거기에서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전임자는 짚이는 곳이 있어 보였지만 당시 난 시스템을 건드렸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모르는 상태였다.


그날부터 약 한 달간, 우리 파트와 관계없는 팀원들까지 도움을 받아 사고를 수습하기 시작했다.


'어음 취소 신청서'를 받을 수 있는 상대에겐 신청서를 받아 제대로 된 날짜로 다시 발행을 해주고 나머지는 이자를 지급하는 과정.


1000개에 가까운 업체에 전화를 돌리고 수백 개의 신청서를 받아 은행에 제출하고, 다시 한번 금액을 원래 어음날짜대로 분할해 발행하는... 일련의 과정은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하도급법상 대기업은 '하도급'에 해당되는 거래에 대해 중소기업에게 60일 이상의 어음을 지급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그들에게 60일보다 긴 어음을 지급하는 것은 '불법'이 되기 때문에 반드시 해결해야만 했다.


때마침 유럽여행 중이던 담당자도 여행은커녕 한국 근무시간에 맞추어 계속해서 시스템 수정 등의 서포트를 하기를 일주일.


"오늘의 대금지급 대상입니다. 승인 부탁드립니다."


경리담당자 승인요청- 파트장 승인- 팀장 승인- 자금 담당자 자금조달 - 자금 파트장 승인


하루종일 대금지급을 위한 작업을 한 뒤에 이렇게 5명을 거쳐야만 돈이 다시 나갈 수 있는 구조였다. 그렇게 자금 파트장에게 지불을 요청하러 간 어느 날이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더니.."


혼잣말을 내게 다 들리게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다. 마치 내가 일을 담당하게 되니까 문제가 생겼다는 듯한 말이었다.


"뭐라고요?!!"


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결국 하지 못했다. 마음 같아선

"어디서 알지도 못하는 대머리가 멋대로 짓거리는 건데?!!"


라고 소리지르고 행패를 부리고 싶었지만 그럴 깡다구도 없었고^^;;


이유야 어찌 됐건 최종적으로 보고서를 만든 내게도 잘못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시스템 수정여부도 모르던 1년차에게 이런 사고가 생긴 건 내 탓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싶었다.


가뜩이나 매일같이 이어지는 야근으로 몸이 지쳐 나가떨어지던 때에, 마음까지 와장창 무너져버렸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화장실에 가서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건데...'


한 달 뒤, 대부분의 문제는 일단락되고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내 마음에 난 상처는 누구도 깨끗이 해결해 줄 수 없었다.




그 뒤로도 업무는 순탄하지 않았고 몇 번의 크고 작은 사고들이 있었다. 업무적인 사고가 아니라 식당 직원이 떨어트린 음식물을 온몸에 뒤집어써서 집에 가야 했던 적도 있고, 그때 내가 직원을 안심시키려 했던 말이 오해가 되어 내가 마치 그녀에게 윽박지른 것처럼 와전이 되어 소문이 돌기도 하는 등.. 회사 생활을 하는 동안 끔찍한 기억들이 하나씩 쌓여만 갔다.


'사람들 틈에서 사는 게 너무 힘들어.'


난 항상 많은 사람들 틈에서 지내는 걸 좋아했었다. 하지만 소문 좋아하고 물어뜯기 좋아하는 타인과도 같은 직원들 틈에서 지내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한시라도 빨리 이런 공간에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나가서 뭘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순진했던 나는 직장 동료를 친구라고 믿었고 그 중 '친구인 척'하던 누군가가 악의적인 소문을 퍼트렸다. 그 얘기를 딱 그 친구에게밖에 하지 않았기때문에 누가 퍼트렸는지 알고있었지만, 원활한 회사생활을 위해 모르는 척 지내야했다. 사람을 믿을 수 없어진 회사란 공간은 끔찍히도 외로웠다.


마음이 힘들 때 스스로를 더 채찍질했다.


처음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자전거를 탔다.


당시 150만 원짜리 로드자전거를 샀는데 그 이후로 마치 유행처럼 층 전체에 번져 몇 명이 비슷한 자전거를 구입해 함께 타러 다니기도 했었다.


친한 동료들이 있었고, 그들 덕분에 회사 생활이 즐겁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또 한 번 내 마음을 갉아먹는 일이 생기고 나면 이 바닥을 빨리 벗어나야겠다는 마음만 들었다.


당시 우리 집은 한강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었는데 자전거를 타면 3분이면 한강에 갈 수 있었다.


영동대교 부근에서 천호대교를 지나 일명 '아이유 언덕'이라고 불리는 3단 언덕을 지난다. 그곳을 지나 어딘가를 가야 하는 건 아니었지만 심장이 터져서 멈춰버릴 것 같을 때까지 페달을 밟고, 또 밟았다. 그렇게 언덕을 지나 평지를 조금 달리고 나면 나오는 벤치에서 30분이고, 1시간이고 하염없이 한강만 바라봤다.


특별히 생각을 하거나 뭘 했던 건 아니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답답한 마음이 폭발해 버릴 것만 같았다. 잡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내 몸을 채찍질하듯 움직였다. 평일엔 하루 30킬로씩, 그리고 주말이면 지방으로 자전거를 갖고 나가 120킬로씩 자전거를 타는 생활을 하기도 했다. 당시 계산으로 한 달에 최소 1000km를 탔던 것 같다.


직장생활도 힘들었지만 연애도 수월하지 않았다. 대체 뭘 위해 삶을 이어가는지 이유조차 알지 못한 채, 그냥 그렇게 살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었다.



필라테스 강사 해볼래요?


이때부터 내 인생의 전환점은 이미 시작된 것이 아니었을까?


업무가 막 바빠지기 시작했을 즈음 워낙 하루종일 앉아있다 보니 허리가 너무 아파 견딜 수가 없어서 시작한 운동이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면서 통증관리 효과보다 몸매가 변하는 효과가 더 눈에 띄게 나타났고 재미가 붙었다.


"민정 씨, 필라테스 강사 안 해볼래요?"


당시 내 선생님은 나한테 슬쩍 지나가는 말로 해보지 않겠느냐고 말했고 나는 "직장 다녀야죠.ㅎㅎ"라며 어물쩍 넘겼었다.


그때 왜 이런 말이 나왔는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기업 연봉은 얼마정도 되느냐, 필라테스 강사도 나쁘지 않게 번다. 뭐 그런 말들 끝에 나왔던 얘기 같다.


당시엔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이런 걸 해'라는 생각에 흘려들었다. 워낙 오랜 시간 앉아서 생활하던 습관 때문에 골반은 푹 퍼져있고 목은 앞으로 잔뜩 빠져나가 아래턱이 돌출된 하나도 예쁘지 않은 몸매였기 때문이었다.


필라테스 강사는 못될 것 같으니 회사를 그만둘 방법을 끊임없이 찾아 헤맸다. 가죽공방에 다니며 공방을 차려볼까도 생각했었고 클라이밍을 꾸준히 하며 클라이밍 강사를 해볼까도 싶었으며 친구를 따라 작은 가게나 차려볼까도 싶었지만 무엇하나 쉬워 보이지 않았다.


"하... 직장 나가서 할만한 게 없네.."


이직을 위해 외국계 기업의 인사 담당자 자리에 이력서도 한두 군데 써봤지만 너무 생뚱맞은 커리어 변경 이어서인지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직장생활 4년 차즈음, 그 일이 있고 나는 즉시 회사를 그만둬야겠다고 결심했다.



다음 편에 계속...




입사 4년 차의 '그 일'은 내 첫 브런치북 [가난한 자유를 얻어보기로 했습니다.]에도 적은 일화이다. (URL 클릭)


스물아홉 살, 12월의 내 생일날.


나는 당시 약 두 달 정도 만났던 남자에게, 새벽에, 무려 카톡으로, 일방적인 헤어짐 통보를 받았다. 그전에도 뭔가 삐걱거리고 안 맞는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이렇게 일방적으로 통보당하는 건 정신적으로 너무 충격이 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상대가 성숙하지 못해서, 혹은 이기적이어서 그렇다고 욕하며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자존감이 바닥을 치던 당시의 나는 '내게 문제가 있어서'라고만 생각했다.


'나는 왜 남자에게 집착을 하는 걸까?'

'왜 멋진 연애를 하지 못하는 거지?'


자신을 갉아먹고 또 갉아먹던 중 며칠 뒤, 나보다 2살 어린 여자 동기의 죽음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 일이 있기 딱 하루 전, 그녀는 내게 "언니 저 머리 하는데 70만 원 썼어요~"라며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웃어 보였다.


"히익! 70만 원? 뭘 해야 그 정도가 나오는 거야?"

내가 놀라며 그때를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기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아마도 그녀는 마지막 순간에 가장 예쁜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 길로 그녀의 남자친구가 회사를 그만뒀고, 다음 달에 그녀의 절친 하나가 회사를 그만뒀고, 몇 달 뒤 내가 회사를 그만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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