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음악을 듣는 이유

PART 4. (p.148) 음악도 일상의 여행을 제공한다

by 마고캐런

빠르기도 하고 느리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신나기도 하고


나는 음악을 전곡으로 듣지 않는다. 로그인을 하지 않으면 1분 듣기만 가능한 음악 채널들이 있다. 아침에 샤워

를 하면서 물소리보다 크게 틀어놓는 것이 그런 음악들이다. 나는 가수의 목소리에 집중해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짧게 흐르다 끊기는 시간의 흐름을 탄다.


샤워를 할 때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올라온다. 비누거품과 함께 이런저런 생각들이 씻겨 나가면 하루의 시작이

좀 더 상쾌해진다. 지나간 나의 실망스런 행동이 보일 때도있고, 끌어안고 있는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명확해지는 순간도 있다. 짧게 끊어지는 리듬만큼 빠르게 샤워를 한다. 음악의 흐름에 맞춰 흥얼흥얼 즐겁게 샤워하면서 마음 속 과제들도 악보처럼 착착 정리를 한다. 그렇게 씻긴 자리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들어오기도 한다.


“음악이 너무 정신없어. 왜 음악을 끊어서 들어? 내가 로그인해서 다시 틀까?”


눈사태가 날 정도로 눈이 많이 내리는 바람에 우리의 아이슬란드 여행은 도착하자마자 집콕 신세였다. 멀리 나

가서 밤하늘의 오로라도 봐야 하고 시내에 나가서 예쁜 골목 사진도 찍어야 하는데 계속 눈이 온다. 도착한 날에 만 난 하얀 도시 레이캬비크는 영화 속 겨울동화처럼 예뻤다.


그러나 여행을 하러 온 우리는 버스터미널에서 버스가 정상적으로 운행되기를 바라며 세 시간 이상 기다려야 했다. 그러고도 결국 날씨 때문에 오늘은 버스가 운행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하루 8시간 버스를 타고 하얀 지평선에 구불구불 선을 그리면서 아이슬란드 횡단여행의 묘미를 만끽하려고 계획했었다. 그러나 눈 때문에 한순간에 일정이 바뀐다. 방금 수십만 원의 왕복교통비를 환불받았지만 기분이 별로다. 하얀 지평선에 외줄을 그으며 신나게 달리고 싶었던 꿈이 수포로 돌아갔다. 아쉬움이 크다.


어렵게 아이슬란드까지 와서 예약된 어떤 일정도 진행 할 수 없게 된 상황. 날씨 때문에 가지 못해도 제 날짜에 도착하지 않으면 지불해둔 숙박비는 모두 날아간다. 그 도시에서는 멀리 나갈 필요도 없이 숙소 발코니에서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오로라를 볼 수 있다고 해서 큰 맘 먹고 동쪽 끝자락의 항구마을에 숙소를 예약했었다. 환상의 오로라 감상은 접어두고, 우리는 당장 떠나지도 못하게 된 이 도시에서 다시 머물 곳을 찾아야 한다. 와이파이가 잘 터지는 카페를 찾아 앉는다. 커피 한잔으로 위로가 될 일이 아니다. 터미널 옆에 있는 대형 슈퍼마켓으로 가서 육해공군 안주를 잔뜩 사서 술이라도 실컷 먹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나 먹음직해 보이는 양, 돼지, 닭고기를 골고루 주문한 뒤 맥주 한잔으로 속을 달래며 애써 정신을 차린다.

도대체 이동 자체를 할 수 없다면 집에서라도 휴식다운 휴식을 해보자는 생각에 인원보다 두 배는 넓은 아파트를 찾아서 예약했다. 임시방편으로 머물 2박이지만 도심의 리조트라 생각하고 ‘리틀 포레스트 시티타임’을 갖기로 했다.


세 종류의 고기를 맛있게 먹고 오후가 되자 우리는 체크인을 하러 새 숙소로 이동했다. 레지던스형 아파트 숙소는 침대가 네 개라서 1인이 두 개씩 차지하고 놀기 좋았다. 게다가 누워도 좋을 큰 소파와 매우 넓은 부엌에 스튜디오처럼 큰 욕실까지, 숙소가 운동장 같아서 굳이 밖에 나가지 않아도 즐길 공간이 충분했다. 막막하던 여행자의 앞길에 큰 빛줄기가 들어온 듯 기분이 업 됐다.


오전 10시가 돼도 밖이 어두운 아이슬란드는 날씨에 따라 여행자의 기분도 달라진다. 심심한 방에서 나는 눈만

뜨면 반사적으로 음악채널을 클릭했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한국에서도 듣던 음악이라 내 집처럼 느껴지지만 창밖 풍경은 이국적인 하얀 겨울. 지금 나는 제주도도 아니고 아이슬란드에 오로라를 보러 온 것이다. 커튼을 치고 다시 누워보지만 특별히 할일은 없다. 여기 침대가 편안해서인지 잠을 푹 자서 피곤함도 없다.


개운한 몸에 절로 떠진 눈으로 볼 수 있는 건 스마트폰 뿐. 오전 10시까지 아침도 안 먹고 가만히 누워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들–음악감상 아니면 명상을 한다. 아침에 습관대로 음악을 틀었다가 친구한테 한 소리를 들은 것이다. 평소처럼 나는 1분 듣기로 짧은 음악을 다양하게 듣고 싶었는데 친구는 음악이 자꾸 끊기는 게 불편하다며 꺼달라고 한다.


달콤함. 유쾌함. 외로움. 우울함.

사색. 사유. 망각. 자유. 여유.


다시 돌아온 서울. 오늘도 나는 원룸 복층 계단에 앉아 음악을 듣는다. 계단은 나에게 차를 마시는 공간이기도 하다. 오늘도 편안하게 끊어진 음악들을 계단에 앉아서 듣고 있다. 왜 나는 짧은 음악에 더 마음이 끌릴까. 모든 음악은 치유다. 음악의 길이나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음악이 흐르는 그 순간 내가 느끼는 감정이 중요하다. 음악을 통해 과거로부터의 감성이 스르르 깨어나는 건 낮잠 같은 선물이다.


전곡을 다 들어도 좋겠지만 욕심 많은 낭만여행자는 1분이면 족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감성은 길이의 문제가

아니다. 그 노래가 지나면 기억도 잊힌다. 게으른 여행자의 음악목록에는 지정된 가수가 몇 명 안 되지만 그 정도로도 기분전환을 하기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선희의 노래를 들으면 20대가 떠오르고, 신승훈의 노래를 들으면 옛사랑이 생각난다. 매일 여러 가수의 목소리를 통해 10대부터 40대까지 지나간 세월을 왕복한다.


음악도 일상의 여행을 제공한다.


음악이 불러일으키는 기억에 따라 가슴이 미어질 때도 있고 얼굴에 미소가 지어질 때도 있다. 좋은 기억이 살아날 때는 오래 듣거나 무한 반복해서 듣고 싶고, 나쁜 기억일 때는 빨리 끄고 싶지만 언제나 공평하게 1분이다. 그냥 딱 1분만 그 시간으로 간다. 그리움도 1분, 외로움도 1분. 아픔도 1분이고 슬픔도 1분이다. 10대부터 지금까지 내 삶은 변화무쌍했지만 음악은 공평하고 고통도 공평하다.


나의 음악은 오늘도 끊어지며 흐른다.

추억은 길지만 소리는 짧다.


그렇게 끊어진 음악으로 과거를 살고 현재도 산다. 음악을 들으며 지나간 시절의 추억을 소환하는 30분

동안 나의 외출 준비는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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