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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y Jun 10. 2022

드디어 은퇴의 터전을 마련하다

모기지 얻기의 어려움을 겪으며

앞에서도 몇번 밝혔지만 세미 은퇴의 길이 쉽지 않았다. 이렇게 회상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소름 돋도록 기쁜 일이다. 이미 지난 일이지만, 은퇴를 앞둔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 그리고 나의 기록을 위해서도 조금 정리해보자, 하는 생각에 글을 시작한다.


일이 힘들어지면 "이깟껏 팔아버리지?"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고,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팔아치운다는 것"이 주는 씁쓸함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 파는데 찬성하다가도 그런식으로 말이 나오면, 동의할 수 없었다. 서로간 막연히 어느 곳으로, 언제 움직여야 하나 그런 생각만 했겠다.


그럴 즈음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하며 내 의견을 이야기했다. 이 가게와 건물을 팔고 떠돌아다니는 것(좋은 말로 하면 여행)이 어떤가, 그렇다면 다른 곳을 구하는 노력을 안 해도 되고, 팔기만 하면 되니 조금 쉬울 것 같았다. 허황된 이 생각에 남편도 동의했다. 이 생각이 나쁘지 않았던 것이, 은퇴 후 자유로움에 대한 꿈을 꾸게 해 주었고, 은퇴에 대한 부담감을 조금 희석시켜 주었다는 점이였다. 그랬는데 과연 모든 것을 다 정리하고 떠돌아다니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그런 의문이 또 바닥에서 슬며시 올라오기 시작했다.


어느 날 집을 검색했는데, 아주 작은 집이었고,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커머셜 지역이었다. 이런 집 어때 하면서 식탁 의자를 끌어당기며 남편 옆에 앉아서 사진을 보여주기 시작했을 때, 우리 사이에 새로운 삶에 대한 공동의 꿈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고 보고 있다. 그때쯤 해서 가게를 내놓기로 마음을 맞췄다. 대단히 큰 발걸음이었다. 한 사람의 마음 정하기가 힘든데, 우리 둘이 같은 시간에 가게를 팔 생각이 들었다는 그 사건은 주님이 하신 일이라고 믿는다.  식탁에 바짝 붙어 앉은 우리 어깨를 안온하게 감싼 그 따뜻한 손길, 그걸 잊을 길이 없다.


사진으로 봤던 그 집을 시간차로 둘 다 방문해보고 나서 첫 번째 오퍼까지 쓰게 됐다. 부동산업자는 우리가 아직 은행과 이야기해보지도 않았다는 데도, 막 밀어붙였다. 그래서 아주 저렴하게 오퍼를 넣었더니 주인에게서 카운터 오퍼로 가격이 올라서 우리에게 왔다. 우리가 망설이자 "은행돈이 나오면 산다"는 조건부 오퍼를 다시 넣으라고 재촉해서 그때부터 은행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모게지를 신청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은행도 서열이 있었다. A급, B급이 있었고 프라이빗 모기지를 주는 제3의 금융권이 있었다. 우리는 A급 은행에서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얼마 안 가 알게 됐다. 처음에는 거래하던 은행에서 시작했는데, 얻는 집이 상가건물이라면서 상업 담당자에게 파일을 넘겨준다고 했다. 상업지구는 거주 지역과 완전히 달라서, 모게지 허용한도도 낮아지고, 여러 제약조건이 많았다. 처음에 봤던 집은 이래저래 마땅하지가 않아서 오퍼를 진행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우리 가게 손님이었던 로버트(우리는 뢉이라고 부른다)에게 가게를 내놓았다. 뢉은 우리집에서 일하던 돌아가신 메리 할머니의 아들인데, 부동산일을 하는 것은 알겠는데, 그다지 능력있어 보이지는 않는편이다. 민첩과는 거리가 멀게 몸이 비대하여, 신뢰를 주기에 미흡하지만, 오랫동안 얼굴을 봐왔기에 남편은 그에게 일을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의 작은 행동 하나가 마음에 들었었다. 그가 매주 소방대원(그도 소방대원이다)들의 그룹티켓을 우리집에서 사는데, 데빗으로 결제하고 난후 영수증이 나오면 끊어서 내게 준다, 그리고 본인의 것은 인쇄하지 않는다고 꼭 no를 눌러준다. 데빗머신마다 다르지만, 일을 하다보면, 영수증 끊어주는 것, 종이 낭비하지 않게 고객이 원하지 않으면 영수증이 나오지 않게 하는 것 등을 캐쉬어가 하게 되는데, 그 일을 줄여주는 셈이다.  종이 한 장 떼어주고 데빗 머신 단추 하나 눌러주는 친절이지만, 나는 그때마다 속으로 그에게 고마워했다. 그 친절 때문에 우리 일을 맡게 되었다고 나는 나름 해석한다.


가게가 안 팔릴 때는 능력 없는 이에게 맡겨서 그런가 하기도 했다. 그러나 뢉과 같이 일하는 웬디는 그야말로 천직인 듯, 바이어와 셀러 사이에서 다리를 잘 놔주고, 바이어가 동네에 정착하는 일까지도 세심하게 살피는 동네의 거간꾼 아줌마이다. 우리집도 뢉이 리스팅을 했으나, 바이어는 웬디를 통해서 계약을 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뢉에게도 웬디에게도 커미션이 돌아갔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가게 파는 이야기로 돌아갔지만, 은행과 집구하던 이야기 조금 더 하자. 첫번째 집이 상업지구라, 내쫓기듯 담당자가 바뀌고 나서 새 담당자와 전화와 메시지, 이메일로만 주고받으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그때서 상가건물이 힘들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한의원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으니, R5로 지정된 곳은 가능하다는 것을 시청사 검색을 통해 알게 되어서 R5 지역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몇 군데 더 본 다음에, 어느 날 아침 마땅한 곳이 눈에 들어와 남편에게 카톡으로 매물 정보를 전송했다. 바로 그 순간 남편에게서 내게 카톡이 왔는데, 같은 집이었다. 처음부터 예사롭지 않은 시작이었다. 이 집에 대한 설명은 그 이전 글에서 소개한 적이 있다.


https://brunch.co.kr/@mindyleesong/177


이렇게 마음에 드는 집을 만났지만, 아직 은행일은 진행 중이었다. 상업 담당자에게서 또 다른 스페셜 모기지 담당자에게 파일이 가더니, 진행이 지지부진이다. 그래도 될듯될듯해서 일단 그 집에 오퍼를 넣었고, 마지막 사인까지 마친 상태이다. 그때가 12월 말, 클로징이 3월 말이니, 우리집이 팔리던 은행에서 얻든 어떻게 되겠지 했던 것이다. 이것에 대한 글도 썼다.


https://brunch.co.kr/@mindyleesong/180


프라이빗 모기지는 B급 은행에서도 안될 때, 고이자를 안고 얻는 빚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에게나 주는 것도 아니다. 이것도 집 감정도 해야 하고, 서류도 내야 한다.


우리는 그야말로 프라이빗 모기지 목전까지 갔다. 프라이빗 모기지로 돌아서기 전에 우리 형편을 잘 설명하고 우리 편이 되어줄 사람을 찾자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우리를 전연 모르는 이와 딜을 하려니, 너무 존중받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다. 돈을 빌려주는 이들 입장만 대변하는 사람이 어떻게 모게지 전문가라고 할 수 있겠나.


예전에 남편이 알던 회사 후배와 연락해서 사정을 설명했더니, 낙관적으로 이야기해서 그와 일을 하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그 담당자를 통해  B급 은행에서 모기지를 얻기로 했다. 크로징이 가까워올 때 한국 신문에 기사가 떴다. 요즘은 모게지를 준다고 했다가, 당일 주지 않는 일도 일어나서 소송으로도 가고, 크로징 며칠 전에 은행이 다른 이유를 들어 거절하여, 프라이빗으로 옮기라고 해서 곤란을 받고 있다는 기사였다. 모게지 담당자와 고객이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하여 다투는 문제까지 보도가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마음이 조마조마한데, 그런 기사를 읽으니 더욱 걱정이 되었다.


3월 31일이면 우리가 사인한 집에 돈을 주어야 하는데, 31일 아침에 모게지 담당자에게서(후배) 연락이 왔다. 은행에서 내 통장에 갑자기 입금된 큰돈이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어왔다는 것이다. 정말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땐, 이게 뭔 말인가 싶었다. 체킹에 있던 돈을 세이빙으로 옮겼는데, 그런 질문을 하니 황당할 수밖에. 나는 집을 떠나 사촌 오빠네에 있을 때였다. 마침 노트북을 갖고 왔기에 은행 기록을 다시 보내줄 수 있었다.


이번에 모기지를 얻다 보니, 집을 사려면 2년 정도 통장 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다운페이 할 돈이 어떻게 모여졌는지, 그걸 자세히 들여다보고, 모든 통장을 샅샅이 조사한다. 다운페이할 돈은 출처가 분명해야 하며, 한꺼번에 많은 돈이 입금되어도 그것의 정당함을 증명해야 한다. 수속을 처음 시작할때에서 두어달이 지났다고, 새로운 은행정보를 요구했다. 돈이 제대로 있나 다시한번 확인하는 절차이다. 요즘은 인터넷 뱅킹에서 정보를 불러내, PDF 파일로 만들어서 보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이 일을 하면서 은행 스테이트먼트 찾아내는 것, PDF 파일 만드는 것등, 테크놀로지에 적용하는데 한참 걸렸다. 우리는 그동안 모기지를 얻을 때 담당자가 우리 사인만 받아가는 정도로만 수고했기 때문에 이 모든 일들이 버거웠다.


남편과 나는 팬데믹 타임에 은행에 자주 가지 않고, 돈을 집에 모아놓았다가, 한꺼번에 저금한 적이 있었다. 그런 것도 지적 사항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발목을 잡았던 것은 그전에 얻었던 모게지를 준 은행 어카운트가 아직도 열려있어서 은행에서 그것이 정리됐다는 서류(discharge)를 제출하라고 했다. 이건 또 뭔 소리인고, 싶었는데 10여년도 전에 다 갚은 가게 모게지와 그전에 샀던 플라자 모게지가 아직도 어카운트가 열려있다는 것이다. 그걸 위해 처음엔 은행과 연락을 시도했지만,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나중에서야 변호사 사무실에서 해주는 일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변호사에게 말했다. 마침 우리집의 모든 거래는 우리 동네 변호사 사무실에서 모두 맡아해 줘서 손쉽게 될 것이라고 봤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자신들이 알아보고 있다고 했고, 은행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모게지 회사에서는 회신을 기다리고.


나는 남편에게 변호사 사무실에 가서 다시 한번 재촉하라고 며칠 간격으로 말하곤 했다. 무슨 빚쟁이도 아니고, 변호사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일이 되고 있냐고 물어보는 것이 쉬운 일이었을까? 어느 날 이제는 은퇴할 나이가 훨씬 넘은 변호사가 걸어가기에 오늘은 내가 가봐야겠다고 생각하고 가게문을 나섰다. 그리고는 잠시 가게 앞에 서있었다. 약속 없이, 변호사 뒤를 따라가서 문을 열기가 쉽지 않았다. 심호흡을 하다 보니, 변호사가 다시 보인다. 그가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가기 전 그 옆에 있는 약국에 들렀다가 나오는 길이었다. 내가 앞서갔으면, 변호사를 만나지 못할 뻔했다. 그렇게 하루 변호사 사무실에 가봤다. 그리고 그 서류를 물었더니, 자신들도 매일 은행에 재촉 메시지를 남겨놓는 중이라고 했다. 두 은행의 종료 서류를 받는데 한 달 이상은 족히 걸린 것 같다. 그동안 할 수 있는 건 기도하며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서류 한 장 한 장을 모아 보내서 마지막에 B급 은행에서 모기지를 받게 된 것이다. 맺음이 중요하다, 는 걸 그 서류를 통해서 배웠다. 모기지를 다 갚아도 그 모게지 어카운트를 종료(discharge)시켜야 다음에 다른 모게지를 신청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은행에서 자동적으로 해주지 않고, 모게지를 다 갚았을 때 요구해야 만들어준다 한다. 우리가 요구하지 않았어도, 그 일을 맡아해 주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해줬어야 했다는 것이 우리들의 생각이지만, 앞으로는 맺음을 잘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31일 날 나는 언니 동생과 나이아가라로 가는 날이었다. 집사는 돈이 들어오는 날, 남편 혼자서 얼마나 애를 태웠을까?  그날 빌려줄 은행에서 마지막 질문을 내게 했었고, 그렇게 승인이 난 후 변호사 사무실로 돈이 들어와야 했는데, 마침 동네에 불이 나가서 은행업무가 몇 시간 마비됐고,  그 돈이 상대 변호사에게 들어가야 했고, 또 변호사 사무실에서 집주인 계좌로 돈이 들어가야 하는 등, 발 없는 돈이 전산을 타고 흐르는 동안 은행 문 닫을 시간까지 그걸 맞추느라고, 우리 변호사가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다"라고 말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 후에 부동산업자가 집에 가서 열쇠를 받아다 주었는지, 그건 기억에 없다. 어쨌든 은행업무가 끝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이아가라팀들이 환호를 한 기억은 난다.


이렇게 어렵게 집을 샀고, 지금은 기쁘게 집을 가꾸고 있다. 아직은 은퇴라고 말하면 안 되지만, 그래도 은퇴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배운다. 두 사람의 마음을 맞추는 것, 집을 바꾸는 것. 삶의 환경이 바뀌면, 마음가짐도 달라지는 것 같다. 환경에 적응하면서 새 삶을 도모하는 것이 조금 더 나은 은퇴의 출발이 아닌가 해본다. 새 환경을 같이 만드는 것, 이것 상상외로 어렵고도 흥미로운 일이다.


노파심으로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집 사기 전에 다운페이 할 돈 관리를 잘할 것, 예전에 모기지 얻었던 적이 있다면 discharge가 잘 되었는지 알아보고 은행에서 서류를 받아놓을 것, 은행에서 모게지를 얻을 수 있는지 미리미리 알아볼 것. 모게지 시장이 예전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집을 사는 사람들은 잘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 물론 모두 잘 알아서 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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