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단순한 축복이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가장 교묘한 속박일지도 모른다. 희망은 내일을 믿게 하고, 오늘의 고통을 버티게 만든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현실을 살아가기보다, 어디에 있을지 모를 더 나은 미래만 기다리게 된다. 희망은 삶을 버틸 힘이 되지만, 동시에 현재의 고통을 견디게 하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위버멘쉬, 프리드리히 니체>
희망찬 내일,
희망찬 미래.
오늘보다 더 좋은,
내가 꿈꾸는 미래가 현실이 될 것이라는
'희망'
보통 희망은 참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비관보다는 좋긴 하지만
100% 좋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희망이라는 것은
우리의 욕망이 상상력과 결합해서 만들어낸
하나의 그림입니다.
그 그림처럼 살고 싶어서
희생과 노력을 통해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가야 하죠.
우리의 욕망과 상상력은
꽤나 멋있는 그림을 그렸으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도 똑똑하고
상상력이 풍부합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희망을 그리곤 합니다.
여기서 희망의 단점이 생겨납니다.
부자도 되고 싶고,
명예도 갖고 싶고,
건강도 하고 싶다는 여러 가지 희망을
가지다 보면,
정작 내가 진정 즐거움을 느끼는 무언가를
하지 못하고, 희망에 끌려다니기 시작하죠.
니체가 이야기하는 '족쇄'처럼요.
이렇게 끌려다니다 보면, 어느 순간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그 희망이 과연 진정 나의 희망이었을까?'
'이 희망이 필요한 것일까?'
'그냥 현실에서의 즐거움이
희망보다 더 좋은 것 아닐까?'
분명, 열심히 살면 내일은 평균적으로
오늘보다 좋아질 것입니다.
하지만, 과도한 희망에 내 현실을
갈아 넣는 것이 답은 아닙니다.
족쇄는 너무 무거우니까요.
그 족쇄를 찬 상태에서
오늘 하루를 자유롭게 살아가긴 힘드니까요.
고통에 익숙하게 만들고,
고통을 디폴트 값이라고 생각하게 하니까요.
인생 자체가 무거워지니까요.
그렇다면 희망을 버리고 살아야 할까요?
아니요.
족쇄를 찼으면,
얼른 족쇄를 풀어내야 합니다.
즉, 해소 가능한 희망을 품고 살다가,
단기간의 노력을 통해서
그 족쇄를 풀어내면서 사는 것이죠.
너무 먼 미래의 희망만 보고
사는 사람은 평생 족쇄를 차게 됩니다.
하지만, 당장 오늘 달성 가능한
족쇄를 차고 있는 사람이
오늘의 노력을 통해 그 족쇄를 풀면
내일은 너무나도 가벼운
인생을 살 수 있게 됩니다.
가벼운 희망을 품으라는 것이 아니라,
큰 희망은 생각만 하되,
오늘 하루는 그 큰 희망의 일부분,
작은 족쇄만 차고 살다가,
나의 힘을 키워서 이를 던져버리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죠.
인생을 바쳐서 얻을 수 있는
희망은 무엇인가요?
혹시 그 희망이 족쇄처럼
나를 괴롭히고 있지는 않나요?
그렇다면 그 족쇄를 잘게 나누어서
오늘 하루는 어떤 성장을 이뤄야 하는지만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그 성장에 집중하세요.
그러면 희망은 족쇄가 되지 않을 겁니다.
루틴이 될 것이고,
나의 내일에 후련함을 주는 미션이 될 것이고,
살아있다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인생이 고통스럽지 않을 것입니다.
과도한 희망에 매몰되지 않는,
오늘을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여러분의 빛나는 인생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