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초고는 쓰레기다"
헤밍웨이가 한 말이라고 한다. 그전에는 이 말의 의미를 몰랐다. 그런데 막상 책을 내기 위해서 내 초고를 보는 순간 알았다. 내 초고는 쓰레기였다는 것을.
블로그에 하루하루 쓴 글이 당시에는 나름 '잘 쓴' 글이라고 생각해서 발행버튼을 누르고, 이웃들과 소통을 하면서 나름의 자신감을 얻었었지만 이 글들을 뭉쳐놓고 다시 본 순간 이 말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아주 냄새가 고약한 쓰레기 같았다.
맞춤법이야 차치하고, 앞 뒤 논리도 맞지 않고, 근거도 없고, 그냥 생각을 뱉어두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글을 보고 책을 쓰자고 손을 내밀어준 출판사의 인자함에 감탄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페이지수도 글자수도 너무나도 미약했고, 이 글들이 종이책이 되어 박제가 되기에는 너무나도 창피할 것 같았다.
퇴고를 시작했다.
아니 '재고'라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과감하게 백스페이스를 눌렀다. 그리고 다시 쓰기 시작했다. 기존에 썼던 글들의 몇몇 단어와 느낌만 살린 채, 다시 새로 썼다. 그래야만 책이 될 것 같았다. 글의 일부분만 고치는 건 생각보다 꽤나 힘들다. 특히, 글을 쓴 시점의 차이가 꽤 날 때는 더더욱. 그때의 생각의 흐름과 지금의 생각의 흐름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때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에. 그리고 그때는 지금보다 덜 성숙했기에, 조금, 아주 조금 성숙한 지금에서야 그 글을 보면 참 이상하기에.
출판사에서는 한 달 안에 원고를 보내달라고 했다. 하지만, 이렇게 다시 쓰고 있는데, 기한을 맞출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냥 아침이고 밤이고, 퇴근하자마자 바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쓰다 보니 또 써지긴 했다. 왜냐하면, 쓰레기 같은 '초고'가 있었기에.
우리의 생활에서 쓰레기를 재활용하는 것은 꽤나 어렵다. 더러워지고, 구겨지고 만지고 싶지 않으니까. 하지만 초고라는 쓰레기는 재활용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조금만 손보면 생각보다 더럽지 않으니까. 그리고 글은 페트병처럼 구겨지지 않으니까. 그리고 조금의 생각만 보태면 만지면 재미있기도 하니까.
이 이후로, 모든 글의 초고를 쓰는 것이 마음은 조금은 편해졌다. 어차피 나중에 보면 쓰레기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렇기에, 너무 부담 갖지 않으려고 한다. 지금의 생각과 느낌을 '기록'하는 느낌으로 쓴다.
모든 글을 쓰는 사람들이 이렇게 쉽게 썼으면 좋겠다. 지금 당장 쓰는 이 글이 그냥 나중에 재활용을 위한 '기록'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그러면 더 쉽게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너무 형식과 양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냥 순순한 내 생각을 기록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