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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휴 Dec 15. 2023

김장을 직접 해 봐?

지구에서 한민족이 가장 많은 식물을 먹는다고 한다. 외세의 침입이 잦았던 탓에 먹거리가 부족해서 찾아 먹게 된 것이 그 계기다.



비닐하우스 안에서는 12월인 아직도 싱싱한 채소들이 자라고 있다. 노지였다면 벌써 서리를 맞고 죽었을 채소들이다. 여름에 채소를 키울 때 생긴 진딧물은 소주와 물을 1:1로 섞어 뿌려 진딧물을 없앴다. 초가을에 심은 채소는 잎이 자라면서 벌레가 심하게 번졌다. 손으로 잡아내다 한계가 왔다.



그 무렵, 농장 옆에서 자라던 은행들이 누렇게 길가에 떨어졌다. 은행알을 주워서 껍질을 벗기려고 물에 담가두었다. 해충에 특효라는 말이 생각났다.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은행 담근 물을 채소밭에 뿌려 주었다.



기적이 일어났다. 벌레들이 사라졌다. 열흘쯤 후에 한번 더 뿌려 주었다. 벌레 먹은 흔적들을 메꾸며 배추 포기의 속이 차고 있다. 청운무는 하얀 뿌리를 키우며 자란다.  상추도 파릇파릇 힘이 생겼다. 다 죽어가던 비트도 새잎이 나며 뿌리를 키웠다. 며칠 만에 쑥쑥 자라고 있는 채소들이 기특하다.



상추랑 비트잎을 뜯고, 양파를 저며 물에 담갔다가 샐러드를 만들었다. 냉장고에서 이리저리 치이고 있던 유자차를 살짝 뿌렸더니 새콤달콤 쌉싸름 건강한 맛이다. 아침식사는 탄수화물을 줄이는 간편식이라 싱싱한 야채는 필수다. 평소에 기관지가 약해서 잔기침을 가끔 하는 식구들에게 유자차는 효용이 크다.  



그나저나 저 배추랑 무를 길러서 그 어렵다는 김장을 해야 하는 것일까? 이 나이 먹도록 엄마 곁에서 시중이나 들었지 직접 김장을 해 보지 않았다. 겉절이나 열무김치, 깍두기 등 조금씩 먹는 거야 담가 먹었지만 30 포기 이상 대량의 김장은 혼자서 해보지 않았다.



올해 팔순이 되신 친정엄마는 김장파업을 선언하셨다. 고향 동네에서 맛있게 담가 판매하다기에 10kg을 적잖은 돈을 주고 샀다. 엄마는 "맛있다"라며 좋아했지만, 내가 먹을 때는 엄마표 김장김치에 한참 못 미쳤다. 우리 오 남매와 부산에 사는 작은 아버지댁까지 일곱 집의 김장을 한평생 해 오신 엄마다.



배추김치, 갓과 파김치, 깍두기, 동치미... 엄마는 김치공장을 방불케 하는 대행사를 치르셨다. 김치를 버무리는 날에는 온 가족이 모이고, 동네 아줌마들이 몇 분 오셔야 일이 마무리되었다. 밭에서 배추를 끊어와서 손질하여 간하고 씻고, 양념 만드는 일이 보통일이 아니다. 김장을 마치고 나면 몸살이 나셨다. 몇 해 전부터 김장행사 그만하자고 신신당부를 해도 기어코 단행하시더니, 올해부터는 어렵겠다고 말씀하셔서 오 남매가 모두 대환영이라고 했다.



화학조미료 없이 손수 만든 양념으로 버무린 엄마표 김장김치는 최고의 맛이다. 멸치 젓갈을 직접 담가 내린다. 다시마와 멸치 육수를 삶는다. 방앗간에나 있을 법한 대형 믹서기에 마늘과 생강을 간다. 직접 길러서 담근 매실청과 고춧가루 50근이 넘게 들어가는 연중 가장 큰 행사였다.




친척집과 마을 회관에, 김장하기 어려운 집에 모든 배정이 끝나야 김장도 끝나는 것이다. 엄마는 그런 분이다. 한평생 나눔을 미덕으로 살아온 사람. 자기가 베푼 덕이 자식들한테 복으로 돌아온다고 믿는 사람말이다. 오 남매도 그렇게 산다. 주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나누는 삶이 미덕이라고.



엄마 없이 나 혼자 아파트에서 김장을 해 낼 수 있을까? 김치는 절여서 준비하고 양념을 사서 버무리자고? 남편의 말에 귀가 솔깃해진다. 어찌 되었던지 얼지 않고 최대한 자라도록 기르며 때를 기다리기로 한다. 엄마처럼 맛나게 김치를 담가, 위층 할아버지도 옆집 인사 잘하는 이네도 아랫집 쌍둥이 엄마네도 나눠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으로 벌써,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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