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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휴 Oct 14. 2024

임신, 출산, 육아, 돌봄에서 살아남기

임희정 에세이 『질문이 될 시간』(수오서재, 2023)을 읽고


아나운서이자 작가, 말과 글을 업으로 한다. 부모의 이야기를 담은 《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라는 첫 책을 내고 나서 부모가 되었다. 엄마가 된 후 말하지 못하고 기록하지 못한 누군가의 고통과 희생이 너무 오랫동안 저평가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절대 미화되거나 뭉뚱그려서는 안 되는 진짜 ‘엄마 됨’의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쓰기 시작했다. ‘엄마’라는 존재 앞에 수많은 물음표를 안고 질문이 된, 질문이 될 시간을 살며 겨우 엄마가 되어가는 중이다. 글을 쓰면 삶의 면역력이 생긴다 믿으며, 〈오마이 뉴스〉와 〈브런치〉를 터전 삼아 글을 연재한다. 광주 MBC, 제주 MBC 아나운서로 근무했고, 현재 SK브로드밴드 뉴스 앵커로 활동하고 있다. - 작가 소개 전문     




임희정 작가의 에세이 창작클래스 학인이었던 나는, 선생으로 만난 임희정 작가를 신뢰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그의 첫 책 『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의 진솔하고 깊은 사유가 담긴 이야기에 감동하여 두 번째 책 『질문이 될 시간』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작가소개에서도 밝혔듯이, 작가가 체험한 임신과 출산, 육아, 돌봄으로 이어지는 지난한 과정들과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신체적, 심리적 아픔과 극복하기까지의 아픈 이야기가 담겼다.     


 

엄마가 된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게 될 내용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나도 그랬다. 처음 되어보는 엄마라서 갓 태어나 분홍빛이 채 가시지 않은 아이를 받아 들고, 이 아이를 어쩌면 좋을까 걱정부터 앞섰더랬다. 첫째는 친정엄마가 한 달을 꼬박 산후조리를 해주셨다. 엄마의 첫 손주였던 나의 첫째를 사랑으로 보살펴 주셨다. 엄마가 끼니마다 끓여주시던 뜨끈한 미역국이 얼마나 맛나던지. 열두 명의 손주 중 유일하게 내 첫째만 조리를 해 주신 엄마께 늘 감사한 마음이다. 한 달을 엄마께 육아 교육을 받고, 돌아왔어도 유별나게 카탈스러운 아이를 어쩌지 못해서 나는 두려웠고, 터덕거렸다. 내 집으로 왔을 때는 80세 시어머님이 아이 목욕과 기저귀들을 꼼꼼하게 손질해 주셨다. 마른 기저귀를 네 귀를 맞춰 얼마나 보드랍게 매만져서 개켜 주셨던지 바로 시장에 내다 팔아도 될 것 같았다.  

    



둘째 때는 아주 힘들었다. 친정엄마가 우리 집으로 오셔서 사흘 산후조리를 해 주시고 가셨다. 시어머님과 30개월 첫째의 돌봄과 집안일까지 겹쳤다. 남편은 직장 일이 한참 많을 때여서 육아에 투입될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무릎을 꿇고 청소를 하고, 빨래와 음식들을 해서 출산 후 3개월이 넘도록 팔목부터 손마디까지 쩔쩔거렸다. 그 콕콕 쑤시는 감각은 손이나 팔에 쥐가 났을 때 저린 느낌이 지속된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나의 출산과 육아, 돌봄에 관해 이야기하라면, 몇 페이지는 더 쓸 수도 있을 것 같지만 각설하고.   



  

『질문이 될 시간』은 임희정 작가의 힘겨운 임신과 임신 후 신체적 아픔, 출산 후 유선염, 산후통 등 겪을 수 있는 신체적 어려움의 총합체였다. 그로 인해 우울증까지 겹쳐서 이중고를 겪었다. 그 와중에도 작가는 ‘포기하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딸에게 보내는 편지글에서 “가장 큰 공포는 나보다 너를 잃는 것이어서 너를 잃지 않으려면 궁극적으로 나를 잃지 말아야 했다.”라고 말한다. 아이를 지키기 위해 버텨 온 엄마의 눈물겨운 분투에 눈물이 났으며 아이를 향한 사랑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이를 키워나가기 수월한 실제적인 정책이 필요하다는 구구절절 맞는 말들을 쏟아낸다. 직접 ‘엄마’로 살아보니 알겠는 것들을 겪어 본 사람으로서 말한다. 임신도 출산도 육아도 돌봄도 힘겹고 아팠다고, 쉽게 말해버리는 것이 엄마의 일이 아닌 것처럼 치부되는 사회적, 암묵적 합의를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미 엄마가 되었고, 앞으로 엄마가 되어야 할 여성들, 그리고 아빠가 되었고, 아빠가 될 남성들이 다 함께 읽고 실천해야 할 내용이 많다. 여러 가지 상황들이 좋기도 했고, 싫기도 했다는 양가감정을 솔직하게 적었다.


     

임희정 작가는 현명하게 대처하며 살아가고 있다. 자신을 돌보며 하고 싶은 일인 아나운서로 재취업해 당당히 살고 있다. 육아에 최선을 다하느라 자신을 돌보는 일을 놓치지 말라고 말한다. 육아를 대충 해도 된다고 말한다. 혼자서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육아에 공동책임이 있는 아빠와 함께 가사를 분담하고,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맡아서 즐겁게 육아를 해나가야 한다고 썼다.    


  

이 땅의 여성들이 몰래 숨어서 아파하지 않고, 당당하게 힘들고 어렵다고 말하고,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공감한다. 여성은 산모는 엄마는 당연히 아파도 참고, 속울음을 울어야 한다는 인식이 여성을 더욱 병들게 한다는 것을 작가는 온몸으로 말하고 있다. 자신을 위하는 것이 주위의 모든 사람을 위하는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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