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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만진 슬픔

이문재

by 민휴

오늘의 시 한 편 (53).

매일 시 한 편씩 올리다 보면, 금방 한 권의 책을 읽게 되겠지요?

첫 번째 책은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창비-2024)입니다.



오래 만진 슬픔


이문재

이 슬픔은 오래 만졌다

지갑처럼 가슴에 지니고 다녀

따뜻하기까지 하다

제자리에 다 들어가 있다

이 불행 또한 오래되었다

반지처럼 손가락에 끼고 있어

어떤 때에는 표정이 있는 듯하다

반짝일 때도 있다


손때가 묻으면

낯선 것들 불편한 것들도

남의 것들 멀리 있는 것들도 다 내 것

문밖에 벗어놓은 구두가 내 것이듯


갑자기 찾아온

이 고통도 오래 매만져야겠다

주머니에 넣고 손에 익을 때까지

각진 모서리 닳아 없어질 때까지

그리하여 마음 안에 한 자리 차지할 때까지

이 괴로움 오래 다듬어야겠다


그렇지 아니한가

우리를 힘들게 한 것들이

우리의 힘을 빠지게 한 것들이

어느덧 우리의 힘이 되지 않았는가





* 마음을 붙잡은 한 문장

우리를 힘들게 한 것들이

우리의 힘을 빠지게 한 것들이

어느덧 우리의 힘이 되지 않았는가


(왠지 모르게, 눈물이 왈칵… 그랬다. 오래 만진 슬픔이 몇 가지 떠올랐다. 그런 슬픔에 매몰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며 살았던 날들이 떠올랐다. 지금은 오랜 슬픔이 말끔하게 없어졌다는 말은 아니다. 오래 만지다 보니 “각진 모서리 닳아 없어”졌다. 매사를 슬프다고 생각하면 한정이 없고, 눈덩이 굴리듯 감정도 불어난다는 것을 안다. 긍정이나 감사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런 감정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밝은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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