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원일기
[25.4.12.]
꽃이 지고 열매가 만들어지고 있는 블루베리들이다. 꽃 솎기인지, 열매솎기인지 약간 애매하다. 엄밀하게 말하면, 열매솎기에 더 가까울 것 같다. 이미 수정되어 열매로 변한 부분이 대부분이다. 크고 좋은 열매를 얻기 위해 몇 날 며칠 솎기 작업을 해주고 있지만, 끝날 기미가 없다. 이번 추위가 지나가면, 복숭아밭도 꽃 솎기와 필요 없는 가지를 잘라줘야 하는 일이 밀려있어서 서둘러 해결해야 한다.
키가 큰 블루베리 나무를 활처럼 휘어서 작업하다 보면 물방울들이 얼굴에 떨어질 때가 있다. 달다, 꿀맛이다. 벌들이 열심히 날아다녔던 원인과 결과를 한꺼번에 알 것 같았다. 꽃을 만지는 내 손이 끈적해지는 이유를 알겠다. 아카시아꽃을 먹듯 블루베리 꽃의 꽁지를 빨아본다. 정말 달고 맛있다. 이제 보니 여태 벌들의 밥을 없애고 있었다. 벌들이 나를 따라다니며 밥을 없애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꽃술은 내 머리로 떨어져 앉아 있고, 꽃물은 내 얼굴과 옷들에 떨어져 본의 아니게 향기 나는 사람이 되었다. 내 삶도 향기 나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 그루 한 그루, 가지마다 살피며 꼼꼼하게 솎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린다. 떼어낸 꽃과 열매를 그 화분에 놓는다. 그 나무의 거름이 되도록 하고, 그곳까지 작업했다는 표시도 된다. 오늘 밤에 강풍과 비가 계속 예보되어 있다. 내일 아침엔 서둘러 농원에 가 봐야겠다. 복숭아 밭을 먼저 살펴봐야 하겠다.
[25.4.17. 초록의 승리]
봄꽃들이 물러가고 이파리가 올라오고 있다. 세상을 향해 손을 내미는 순한 이파리들이 초록으로 짙어지면서
나무들의 키를 키운다. 출근길에 하루가 다르게 초록으로 변해가는 가로수와 산과 들의 풍경이 날마다 새로운 날을 선사받는 느낌이다.
초록은 승리자가. 기어코 살아나서 나무를 키워 내고 말 테니까. 밝고 정의로운 세상을 우리도 반드시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의 증거다. 죽었던 나무가 다시 살아나는 듯 초록은 부활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린존, 그린벨트처럼 세상 무해한 초록이라는 생각이 든다.
농원의 은행나무도 드디어 이파리가 나오길 시작했다. 맹렬히 무성해져 갈 은행나무의 그늘을 상상한다. 오늘도 초록으로 물드는 싱그러운 날것의 하루를 과분하게 선물 받았다. 팔딱이는 생명력으로 또 의미 있는 하루를 즐겁게 만들어 보자~♡
[25.4.13. 대기불안정]
대기불안정으로 날씨는 맑은데, 기온은 낮고 바람은 심하다. 대기불안정은 찬 공기가 따뜻한 공기 위에 있어서 사흘 정도 찬기운과 강풍을 동반하는 날씨를 보인다고 한다. 블루베리 비닐하우스는 창문을 모두 닫아줘서 정상 기온을 유지하고 있다.
별다른 대책 없는 복숭아나무들이 걱정이다. 강풍에 꽃이 떨어지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꽃이 떨어지지는 않고 있다. 벌들이 꽃 속을 부지런히 날아다니며 수정할 시간이 필요한데, 개화 후 바로 강풍이다. 내일까지 강풍이 예보되어 있어 걱정이 많이 된다.
강물은 어제 내린 비 덕분인지 더 많이 불어났다.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평화로운 봄의 강물이다. 넓은 들판으로 흘러가서 가문 봄을 해갈하고, 풍작을 가져오기를 기원한다. 내 마음을 알겠다는 듯 돌돌돌 흘러가는 물들의 발걸음이 빨라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25.4.14. 복숭아밭에서]
이틀 동안의 비바람에도 꿋꿋하게 버텨내 준 고마운 복숭아나무들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복숭아밭에 갔는데,
꽃들이 떨어지지 않고 피어있는 모습에 탄성이 나왔다. 튼튼한 열매로 자라줄 것 같아서 힘이 나는 아침이었다.
초록은 분홍과도 잘 어울린다. 오후에 또 비가 시작되었다. 블루베리 하우스에서 꽃 따주기 작업을 하면서 마음은 복숭아나무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있다. 오늘까지만 더 버텨달라고, 내일은 밝은 날이 될 테니까. 화창한 날씨로 벌들과의 조우를 꽃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25.4.12. 초록숲에서]
초록에 갇힌 날은 행복하다. 오늘과 내일 강풍이 예보되어 바깥은 벌써부터 심상치 않는 바람이 불고 있다.
만발한 복숭아꽃이 채 수정되기도 전에 떨어져 버릴까 걱정되어 둘러보고 왔다.
블루베리 하우스 안에서는 제법 평화로운 시간이다. EBS 정경의 클래식클래식에서 울려 퍼지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에 취해 있다. 꽃들이 너무 많아 솎아주기 작업 중이다. 수정률이 좋아서 간격과 수정 상태를 살펴보며 솎기를 해주고 있다. 종일 초록 숲 속에서 블루베리 꽃과 열매들과 라디오만 있어도 행복한 시간이다.
나는 블루베리 하우스에서 꽃과 열매를 솎아주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고, 옆지기는 선별장 옆 컨테이너를 독차지하고 쉼터를 만든다고 똑딱거리다 도움이 필요하면 가끔, SOS를 한다. 둘째는 본부 쉼터에서 엄마의 농원용 미니 라디오를 쟁취해서 종일 놀고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시간은 강풍이 부는 속에서도 자기만이 세상 속에서 잔잔한 행복을 누리고 있다. 그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느끼지도 못하며 무심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25.4.11. 이 맛에 텃밭]
지난주에 뿌렸던 열무 싹이 반짝 빛나며 돋아나고 있다. 이 맛에 텃밭, 이 맛에 열무다. 씨앗을 심을 때,
사랑도 함께 심었다. 또렷한 모양의 초록색 하트가 줄줄이 올라오고 있다.
"사랑해요~ 사랑해요~"
열무싹들이 속삭이고 있는 것 같다. 잠깐 집에서 풀려난 "지니"가 열무에 물을 주고 있는 내 발을 제 앞발로 감싸며 놀아달라고 한다. 물부터 줘야 해서 동작을 멈추지 않았더니, 열무를 맛있다고 먹고 있다. "지니"도 사랑이 많이 필요한가 보다. 사랑이 듬뿍듬뿍 자라나서 여름내 귀한 먹거리가 될 사랑스러운 열무다.
엄마께 드릴 채소를 몇 가지 수확했다. 상추랑 쑥갓이랑 아욱이다. 엄마께 배달 가는 날은 마음이 부풀어 오른 다. 별것 아닌 것을 가져다 드리면 맛나게 드셨다고 꼭 전화를 해 주시는 엄마다. 맛나게 드시는 풍경을 생각만 해도 행복해진다.
"네가 가져다준 쑥갓으로 나물 만들어 먹고, 아욱으로 된장국 끓이고, 상추쌈으로 아빠도 나도 맛나게 먹었다."
사랑표 하트 모양 열무 싹이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나고 있다. 초록으로 짙어가는 열무 싹이 너무너무 사랑스럽다. 시금치와 치커리도 시간 차를 두고 조금씩 올라오고 있다. 토마토도 꽃을 피웠다. 노란 꽃이 몇 개씩 생기고 있다. 텃밭은 이렇게 자그마하면서도 풍성한 마음을 나눠 주고 있다. 오늘도 소확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