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뭐라 말하기 애매한 수준의 결과물이 나올 때가 있다. 분명 아쉬운 부분은 있지만, 그렇다고 지시한 내용을 빼먹은 것도 아니고, 형식적으로는 요구한 바를 다 담고 있다. 하지만 결과물을 들여다보면, 조금만 더 고민하고 다듬었더라면 훨씬 나은 결과가 나왔을 것 같은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더 안타까운 건, 직원 스스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어디까지 하면 "괜찮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를 알고 있고, 그 선까지만 딱 맞춰서 움직인다. 알고 있음에도 굳이 더 하지 않는 것이다.
이보다 더 안타까운 일이 있을까?
왜 알고 있으면서 하지 않을까?
왜 자신의 에너지를 조절하며 일하고 있을까?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회사 일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쓰는 것이,
결국 나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시간을 더 써서 퀄리티를 높인다고 해서, 나의 커리어에 어떤 보상이 돌아올까?”
이 질문에 ‘그럴 이유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는 순간, 직원은 더 이상 에너지를 투자하지 않게 된다. 아마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이는 회사를 떠나진 않았지만, 마음은 이미 떠난 상태를 의미한다. 정해진 일만 하고, 그 이상은 하지 않는다. 몰입도 없고, 주도성도 없다. 하지만 책임질 일도 없다. 조직이 주도성을 끌어내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해도, 이미 마음이 떠난 직원에게는 별다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단지 동기부여 몇 마디로 바뀔 수 있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일하는 의미가 없다”는 판단이 선 순간, 직원은 크게 두 가지 선택을 한다.
1. 남아서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쓰며 버티는 길
우선 이선택을 한 직원은 역량이 뛰어난 직원일 확률이 높다. 자신의 에너지를 조절해 가며 아웃풋의 질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일머리가 있는 직원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자신이 어느 정도까지만 하면 된다라는 것을 알고 딱 그 수준까지 일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점은 회사입장에서는 손실이나, 직원입장에서는 회사에서의 자신의 에너지를 최소화하고, 나머지 에너지를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자신의 능력을 정확히 아는 직원들은 당장 조급하게 결정을 하기보다는 시간을 두며, 오히려 지금의 환경을 이용하며 자신에게 집중하는 선택을 한다.
하지만 이렇게 에너지조절을 하면서 회사에서 버틴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역량이 부족한 직원들 역시 회사에서 버틸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들은 선택지 없는 어쩔 수 없이 버티는 선택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경우는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지치게 되기 마련이다.
2. 실제로 회사를 떠나는 길을 선택.
설명이 필요 없다. 더 이상 회사에서의 시간이 무의미하다고 선택한 경우이다. 자신도 그렇고 회사도 그렇고 모두에게 좋은 선택은 이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고, 환경을 바꾸어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것에 다시 집중하고자 하는 선택이다. 이 선택을 하는 경우는 역량이 높거나 낮거나 크게 상관없이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결정이 이뤄진다.
두 가지 경우 모두 회사에게는 손해겠지만, 전자의 경우 회사차원에서는 더 큰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더 할 수 있는 직원임에도 어느 정도의 경계를 지켜가며 자신의 능력을 계산하며 일하고 있으니 몰입은 멈추고, 효율적인 체념이 시작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조직은 결과만 보고 ‘문제없음’이라고 착각한다. 정해진 일은 하니까, 큰 사고도 없으니까, 그냥 그렇게 넘어가기 일쑤이다.
문제는 그 이후이다. 몰입 없는 조직에서 더 나은 성과, 창의적인 해결, 주도적인 실행은 결코 나오지 않는다.
‘괜찮은 수준’의 결과만 반복될 뿐이다.
그렇다면 조직과 리더는 무엇을 해야 할까?
모두가 하는 이야기처럼 무작정 ‘열정을 끌어내라’를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강요만으로 될 일이 아니다. 회사가 고민하고 시도해야 할 일은 단 하나다.
직원이 다시 마음을 열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 일에 ‘의미’를 연결해줘야 한다.
사람은 이기적인 존재이다.
사람은 철저하게 자신이 의미를 느끼는 일에만 몰입한다.
그 일이 회사에 중요한 이유가 아니라,
그 일이 나에게 왜 중요한지를 설명해줘야 한다.
이 일이 고객에게, 조직에게 어떤 가치가 있느냐보다 더 중요한 건, “이 일을 하면 나에게 뭐가 남는가?”라는 것이다.
이 일을 통해 내가 어떤 기술을 쌓게 되는가?
이 경험이 나의 커리어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조직이 명확히 답해주지 못한다면, 직원은 점점 ‘소모’의 감각을 느끼게 된다. 애써봤자 남는 게 없다는 감정. 바로 그때부터 몰입은 끊기게 된다.
그래서 조직은, “이 일은 너의 성장과 연결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현실적인 언어로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좋은 경험이 될 거야”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너의 커리어맵에 있어 어떤 역량이 축적되는지, 어떤 책임의 경험이 되고 어떤 커리어 레버리지를 만들 수 있을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직원은 납득할 수 있어야 움직인다.
“이 일이 내 시간과 에너지를 들일 만한 가치가 있다”는 확신이 생겨야, 그제야 몰입이 시작된다. 조직은 반복적으로 이 의미를 이야기해줘야 한다. 그리고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과 구조로 증명해야 한다.
회사는 조직이 원하는 방향과 개인이 원하는 방향 사이의 교집합을 연결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적당히 힘쓰며 버티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회사를 활용하여 개인과 회사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만들어 내는 회사야 말로 진짜 똑똑한 회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