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서 너무 떠드는 거 아니냐? 자기네들만 일하는 것도 아닌데. 좀 너무한 거 아니야?"
"가서 말하면 되잖아~ 그 정도는 말할 수 있는 거 아냐?"
"아니다~ 그냥 이어폰 꽂고 일하지 뭐^^"
신기하게도 언제부턴가 매일같이 떠들던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웃고 떠들던 직원들은 찾아볼 수 없고, 사무실은 조용해졌다.
" 요즘은 저쪽 좀 조용해졌다. 누가 이야기 한 건가?"
" 아 못 봤어? 블라인드에 올라온 거? "
" 누가 올렸잖아. 시끄럽다고~ 우리만 느낀 게 아닌가 봐~ 그거 본 거 아닐까?"
회사 안에서 서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행동은 달라지고 변화가 이뤄진다.
누가 봐도 참 신기한 일이다.
도대체 회사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겉으론 조용하다. 회의에서도 무난하다. 웃으며 맞장구치고, 때로는 리더의 농담에도 박수를 친다. 하지만 그들이 퇴근하고 노트북을 열면, 또 다른 얼굴이 등장한다.
잡플래닛. 블라인드와 같은 익명의 공간 속에서 자신을 감추고 회사에 불만을 쏟아내는 사람들.
익명 뒤에 숨어, 회사와 조직을 향한 불만과 분노를 쏟아내는 사람들.
‘회사가 한심하다’, ‘이직만이 답이다’, '회의만 세 시간하고 결론이 없다' ‘대표는 무능하다’는 문장이 줄줄이 올라온다. 그들의 이름은 안전하게 감춰진다. 같은 회사 사람이라면 모두가 공감되는 이야기들이다.
회사에 불만을 갖지 않고 다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앞에서는 웃으면서 일하고 만족스럽게 다니고 있는 모습을 취하지만, 뒤에서는 회사욕을 하며 불만을 표출한다. 불만을 갖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표현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왜 이들은 익명의 공간에서 소통을 하고 있을까?
사람들은 왜 공식적인 자리에서 말하지 않을까?
직원들은 사실 말하고 싶다.
조직이 잘됐으면 좋겠고, 리더가 변화되었으면 좋겠고, 나의 현실이 조금이라도 개선되었으면 한다. 말을 안 해본 것도 아니다. 말해도 바뀌지 않는다는 학습, 말한 사람이 오히려 손해를 본다는 경험, 리더가 경청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짙어지기 시작하면 결국 직원들은 입을 다물고 익명의 공간으로 들어간다.
“우리만 이렇게 힘든 거야?”
“이게 내가 예민해서 그런 건가?”
하지만 누군가 먼저 같은 경험을 올려놓는다. 그리고 누군가가 댓글을 단다.
“나도 똑같이 느꼈어.”
그 순간 “내가 이상한 게 아니었구나”를 확인하며 안도하고, “이 회사는 정말 문제구나”를 외치며 공감을 얻는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직원들은 불만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자신의 현실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받고 싶을 뿐이다. 익명 게시판은 단순한 불만의 배출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거기엔 공감이 있고, 해방감이 있고, 위로가 있다. 회사에서는 얻지 못하는 감정들이다.
대화는 있지만 진심은 오가지 않는 조직, 말은 할 수 있어도, 말해도 된다는 확신은 없는 분위기
자신이 있는 회사가 이런 곳이라면 결국 말할 수 있는 공간은 ‘회사 바깥’에 생겨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익명의 공간이 더 진실하게 느껴진다.
직원 하나의 불만이 조직을 흔들진 않는다.
하지만 모두가 말하지 않기 시작하면, 조직은 조용히 무너지기 시작한다.
소통이 사라진 조직의 특징은 겉으로 보기엔 ‘정상’이라는 점이다. 회의도 잘 굴러가고, 웃으며 인사도 한다.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불만은 많지만, 그 누구도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조직은 그렇게 ‘조용하게’ 무너진다. 신뢰는 빠져나가고, 소통은 차단된다. 겉보기에는 멀쩡하지만, 내부는 이미 균열투성이다.
직원이 익명의 공간에 머무르는 이유는 회사 안에서는 아무도 그들의 이야기를 붙잡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회사를 욕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여전히 회사가 잘되길 바란다. 다만, 자신의 경험이 왜곡되지 않았다는 걸 누군가 확인해 주길 바랄 뿐이다.
말하지 않는 직원이 늘어날수록, 회사가 들어야 할 이야기들은 회사 밖으로 흘러나간다.
그리고 그때부터, 조직은 조용히 흔들리기 시작한다.
불만은 조직을 향한 마지막 감정이다.
그 감정조차 끊겨버린 순간, 남는 건 냉소뿐이다.
욕을 하는 직원이 무서운 게 아니다.
욕하지 않게 만든 조직이 더 무서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