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치 않는 고통들이 쌓여가면 까만 어둠을 한 사발 들이키고 싶다
나는 병원을 무척이나 싫어하지만 병원은 나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피하고 싶은 많은 고통들 중 그나마 견딜 수 있는 육체의 고통은 잊을만하면 찾아오고 찾아오면 또다시 날 시험한다. 단순히 고통만을 피하고픈 마음이 아닌 고통으로 인한 아픔이 크기 때문에 피하려고 노력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다들 알다시피 삶에 있어 고통은 원하지 않는 순간에 불현듯 능구렁이처럼 스며든다.
그 고통들을 자주 접해보지 않았을 땐 언제 시작되는지, 언제쯤 끝날 것인지 감이 안 잡혔지만 수년을 반복해온 고통은 어느새 육체와 정신이 하나가 되어 언제쯤 올 것인지, 언제쯤 끝날 것인지 대략 감이 온다.
육체는 성년이 되기도 전에 날개가 꺾인 새 한 마리처럼 불편하게 살고 있지만 다른 수많은 새들과 푸른 창공은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를 새 한 마리를 신경 쓰지도, 의식하지도 않는다. 불편한 날개는 더 이상 완전히 부러지지도 않고 멀쩡하게 회복도 되지 않는 어정쩡한 모습으로 삶을 잘도 버텨주고 있다.
지울 수 없는 큰 상처로 인해 가끔은 먹이를 먼저 받아먹는 조금의 혜택을 누린다고 하지만 변함없는 생각의 깊은 곳에는 늘 평화롭고 평온한 어둠이 나를 보며 나지막하게 윙크하며 웃어주고 있다.
팝핑 캔디 같은 요란한 소리가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것만큼 큰 고통은 없다.
누군가는 그런 요란하고 화려한 것을 행복이라 지칭한다. 그러나 나는 죽지는 않았지만 죽은 것 같은 고요함의 적막이 행복이라 강하게 믿고 생각하고 있다.
탄생이 빛이라면 죽음은 어둠이라는 말이 있다.
제발 그런 따분하고 뻔한 편견에서 벗어났으면 한다.
타오르는 태양에 온갖 기대와 희망을 품고, 지는 태양에 어두운 낯빛을 하염없이 드리우지 않았으면 한다.
분명 누군가는 타오르는 태양의 눈부심에 두 눈이 멀고 타들어가는 육체와 마음의 고통으로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런 고통을 참고 견디며 태양이 지기만을 기다릴 것이다. 지는 태양은 서서히 식어가는 온도에 몸과 마음이 차분해지고 빛이 잦아들면 긴장했던 모든 것들이 차분해지고 고요한 적막은 육체와 정신, 그리고 마음이 아주 편히 쉴 수 있는 행복의 어둠을 선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사기에 가득 들어있는 액체는 몸속으로 들어가 생명을 살린다. 그러나 영혼은 더욱 약해져 마치 좀비 같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도 있다. 견뎌줘서 고맙다, 라는 말에 애써 웃으며 감사하다는 말을 건네지만 마음은 이내 씁쓸하다. 누구를 위한 삶이고 누구를 위한 견딤과 버팀일까. 동굴에 사는 박쥐는 희망이 불타는 환한 태양빛을 정면으로 받으며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세상에서 또다시 힘겹게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