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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일을 하는 사람이 불행하다는 선입견

일상에세이 끄적끄적 그냥..

by 공작


힘든 일을 하는 사람이 불행하다는 선입견



사람들은 직업 앞에 자동으로 수식어를 붙인다.
‘경비원’ 하면 ‘고단하다’, ‘청소 노동자’ 하면 ‘불쌍하다’, ‘대기업 직원’ 하면 ‘성공했다’. 의사면 '대단하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단순한 것일까?


내가 대학교 시절,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하다 경비원 아저씨에게 불쾌한 경험을 당한 적이 있다.
처음 들어간 아파트 입구에서 경비원은 내 가방을 빼앗아 열고, 전단지를 쏟아부으며 쌍욕을 했다. 전단지를 돌려보지도 못하고, 또 오면 가방을 찢어버리겠다는 협박과 함께, 가방을 싸서 나왔다. 그렇게 소소한 아르바이트를 하려던 내 꿈은 처참하게 짓밟혔다.


그때 알았다. 친절과 불친절은 직업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또 한 번은 내가 결혼하고 나서 신혼 초에, 돈이 없어서 어렵게 임대아파트에 살 때였다.
쓰레기를 버리는데 경비원이 나를 깔보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아니나 다를까 자신은 여기보다 더 좋은 아파트에 사는 것인지, 딸벌되는 나한테 꼬박꼬박 반말을 하며 쓰레기 버리는데 참견을 했다. 보다 못한 바로 옆동의 경비원아저씨가 내편을 들어주기까지 했다. 가난과 주거 형태는 결코 한 사람의 품격을 결정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아무 잘못 없는 내가 임대아파트에 고용된 경비원아저씨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내가 아는 또 다른 선입견을 깬 이야기도 있다.
서울 대기업에 다니던 선배 언니가 들려준 이야기였다.
그 회사의 청소 아주머니는 집이 두 채였다. 하나는 직접 살고, 하나는 전세를 주고 있었다.
일은 단순하지만, 그분은 안정적인 삶과 여유 있는 노후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힘든 직업 = 힘든 삶’이라는 방정식이 얼마나 허술한지 깨달았다.

또 내가 아는 지인은 마트 캐셔로 취직했는데,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그녀가 사는 아파트보다 더 좋은 아파트에 산다는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었다.


물론, 육체적으로 힘든 일은 대체로 열악한 환경이기 마련이다. 각종 민원에 시달리는 뉴스에 나올법한 이야기들도 많을 것이다.


소설 『까멜리아 싸롱에도 직업과 사람을 단정하는 장면이 나온다.

싸롱의 직원 ‘복희’는 생전에 청소 일을 하던 여성이다.
어느 날, 길을 가다 한 모녀의 대화를 듣는다.
“너 공부 못하면 나중에 저 아줌마처럼 된다.”
“더러워.”
복희는 토사물을 닦던 걸레를 든 채 모녀에게 다가가 말했다.
“제가 공부는 진짜 잘했는데요. 박복했어요.”
아이의 엄마가 놀란 표정을 짓자 복희는 덧붙였다.


“애기야, 공부 암만 잘해도 박복하면 아줌마처럼 된다.”


모녀가 떠난 뒤에도 복희는 걸레를 들고 웃음을 터뜨렸다.




겉으로만 봐서는 결코 알 수 없는 이야기. 복희의 대사는, 사람을 직업으로만 판단하는 세태를 조용히 비틀고 있었다.
싸롱에 모인 손님들은 그렇게, 겉모습 뒤에 숨겨진 삶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순간, 우리는 ‘누가 불행한 사람이고, 누가 행복한 사람인지’ 함부로 말할 수 없게 된다.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을 직업에 두는 것은, 표지만 보고 책 내용을 판단하는 것과 같다.


우리나라에서 힘든 노동을 견디고 본국으로 돌아가서, 모은 돈으로 집을 사고, 사업을 하는 그런 외국인들의 사례는 차고 넘친다. 무료한 사모님들이 외제차를 끌고 설거지 알바를 하더라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직업으로 사람을 평가하하는 이런 낡은 사상은 , 도대체 언제까지? 문학에서, 미디어에서 날마다 우려도 우려도 나오는 홍차처럼 오랜 시간 마르지도 않고 회자될 작정일까?

옛날 어떤 학원 광고에서"치킨을 튀기는 사람이 아니라, 치킨을 배달시키는 사람이 돼라"는 어이없는 광고 멘트가 생각나게 했다. 그리곤 그 이야기가 맞다며 신나게 떠들던 아이의 유치원모임에서 만났던 미숙한 여자가 떠오른다.

책상에서 공부만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때론 앞뒤 생각 안 하고 치킨을 튀기든, 치킨을 배달하든 길거리 지식을 쌓는 것이 생존에 더 유리한 법이다. 더군다나 치킨집창업이라고 쉬운가? 창업비용이 수천만원에서 억대로든다.

복희의 말처럼, 각자의 복이 언제 어떻게 오고 갈지 모른다. 창의적 문제해결력은 오히려 부딪히며 생존해 가며 쌓이는 것이다. 공부는 좋은 출발점을 선점하기 위한 기초체력을 쌓는 일에 불과하다. 공부를 못하면 저렇게 된다니 이게 말인지 방귀인지, 도대체 저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겉표지가 닳고 해졌다고 해서 내용이 낡았다는 뜻은 아니다.


화려한 표지가 깊은 내용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사람을 만날 때,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보다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를 먼저 본다면 어떨까.


그때서야 비로소,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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