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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한 나에게 주고 싶은 선물은?

가까이가기 질문상자 글쓰기

by 로사 권민희

1년이 되었다. 아빠의 암 진단을 받았던 날. 작년 오늘. 아빠는 김 00 내과에서 검사를 마치고 결과를 기다리면서 내가 서울역에서 사 가지고 간 필라 운동화를 갈아 신으셨다. 새 신발을 갈아 신고 진료실에 들어가니 암으로 의심된다며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이런 게 일반 내과에서 할 수 있는 얘기인가 조금 어리벙벙한 채로 두 사람은 병원을 나왔다.


둘 다 늦게까지 점심을 안 먹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아빠는 제일 서점에서 기다리시라고 하고 나는 본죽으로 갔다. 죽을 주문하고 아빠의 형제들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리면서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나왔다.

한참을 울다가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왜 안 오냐고 버럭 화를 내셨다. 전 같았으면 그럴 때 나도 아빠에게 반응을 했을 텐데 그 조차 귀하게 느껴졌다. 얼른 갈게요. 나와서 길에서 파는 카네이션 꽃 바구니를 하나 샀다.


죽을 포장한 종이백과 꽃 바구니를 들고 얼마 걷지 않았는데도 다리에 힘이 없었다. 택시를 잡아 타고 집으로 가는 길, 창밖은 온통 푸르고 날씨가 너무 좋았다. 집에 도착해 아빠는 으레 껏 소파에 누우셨다. 죽이 식기 전에 함께 조금 먹고 집 바깥으로 나왔다. 아빠의 강아지 순돌이가 나를 졸졸 따라왔다.


순돌이가 지켜보는 뒷마당에서 쪼그리고 않아 눈물 콧물을 쏟으며 전화기를 붙들고 연습을 하고 결정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일어나는 모든 것을 최상으로 만들기로. 전화를 걸어 가깝게 지내던 의료 사협 선생님들께 상황을 알리고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물었다. 몇 가지 경우의 예를 들어주시면서 어떤 방식으로 시간을 보낼 것인지 살펴보라고 했다.


우선 서울로 함께 올라가서 큰 병원에서 정밀하게 검사를 받고 거기서 나오는 의견에 따라 선택하되 우리가 함께 힘을 모아야 했다. 여러 검사 끝에 병원에서 우리에게 알려준 시간은 2개월. 항암을 해도 6개월이라고 했다. 항암을 받지 않기로 결정하고 담대하게 다가오는 시간을 맞이하기로 했다. 하루하루가 너무나 귀하고 소중했다.


그렇게 여름을 보내고 가을 햇살을 함께 느끼고 10월 9일에 다른 생으로 여행을 떠나신 아빠. 여성이지만 사회를 위해 큰 일을 하라고, 자신이 미워했던 대통령의 이름 한 글자를 가져다 지어주셨던 분. 내가 무엇을 해도 어디에 있어도 나를 지지하고 응원해주셨던 사람. 오랜 시간 여러 가지로 취약하고 부족하다고 생각했지만 아빠의 존재는 내게 너무나 컸다.


1년, 임종을 앞뒤로 6개월여의 시간. 죽음을 맞이하고, 죽음 이후의 시간을 보내며 나는 조금은 다른 내가 된 것 같다. 나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과 연결된 삶에 대해서 이전과 다른 눈으로 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 정말로 보살핀다는 것은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더 많이 가슴으로 이야기를 나눴던 시간들.


덕분에 어제 저녁은 정말 선물이었다. 한 소녀를 위해 시간과 마음을 기꺼이 내고, okay pass! 에 아이처럼 좋아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과 저녁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그리고 지금 글을 쓰면서 실컷 울 수 있는 시간을 보낸 것도 선물이다.


돌이켜보니 작년 이맘때도 50일 글쓰기 프로젝트를 친구들과 함께 하고 있었다. 그때 그 친구들이 정말 큰 힘이 되어주었던 것처럼. 지금 함께 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낯선 관계지만 서로에게 힘이 되는 친구들이다.


1년 전 오늘 전화로 나의 연습을 도와주던 동료와 오늘 점심을 함께 먹었다. 의식하지 못했는데 식사를 하고 잠시 벤치에 앉아 몸이 따뜻해질 때까지 햇볕을 받고 가만히 앉아 있다가 헤어졌는데 버스 안에서 생각이 났다. 오늘 그렇게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참 고맙고 선물이었음을.


엄마와 평화롭게 통화를 나누고, 오후 시간 좋아하는 친구 몇몇과 이야기를 나눈 것도 좋았다. 오후에 잠시 다시떠오르기 팀과 관점 공유를 한 것도 너무나 감사했다. 저녁이면 비가 올 거 같은 날씨, 호젓하게 저녁을 지어먹고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도 귀하다. 오늘 저녁 나에게 어떤 선물을 할까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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