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웃고만 살 수 없는데 그럼에도 웃는 사람이 좋다.
웃는 사람에게는 향기가 난다.
남을 배려하고 자신을 다듬은 인고의 향기 말이다.
우리는 많은 감정을 느끼고 감정을 나눈다.
아이처럼 투명함 자체가 영감을 줄수도 있지만 그것은 누구나 귀엽게 여기는 영롱한 목소리와 앙증맞은 비율에서의 절대미가 받쳐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 글을 나누는 대부분의 우리는 어른이다.
정말 많은 감정이 파도처럼 넘실거린다. 이 감정은 참 나약해 참기도 힘들지만 일정하게 유지하기도 힘들다. 곧 맛있는 게 입에 들어오거나 온도가 쾌적하게 맞춰주기만 해도 같은 감정도 누그러지고 해석이 바뀐다.
누가 보더라도 절대적으로 힘든 생로병사에 대한 일에 대해서도 정말 다양한 관점과 이해관계가 섞여있다.
살다 보면 일상을 유지하는 감정을 파괴하는 다양한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그런 일들이 자신의 평상심을 흐트러뜨려 웃음은커녕 표정조차 잃어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 시간들을 순간으로 만들어 버리는 사람들은 빛이 난다.
휴먼 다큐에서 보면 누가 보더라도 힘든 사고를 겪어 어려운 상태인 게 분명한데 꿋꿋이 싱긋 웃어주는 주인공을 볼 때가 있다. 나의 내면 그릇을 기준으로 보면 저 정도면 내내 무기력에 빠져있을 법한 상황에서도 생글생글 웃으며 사랑스러움을 내뿜는 주인공들 말이다. 그런 분들의 웃음 속에서 우리는 단지 기쁘기만 한 게 아니라 고통을 감내하고 현실을 살아가는 겸허함에 반하게 된다. 덕분에 일상 속에서의 감사함을 떠올리게 해 준다.
그 웃음 하나에 더 많은 삼킨 눈물이 있음을 그 눈물을 수많은 세월 동안 웃음으로 승화시킨 세월을 이해하게 된다.
우리는 각자의 창과 각자의 거울을 지니고 산다.
각자의 창과 거울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겠지만 깨끗하기만 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미 창이 깨져버린 사람과 거울에 흠집이 잔뜩 난 사람, 울퉁불퉁 왜곡 져 일생을 그 창들과 씨름하는 경우가 있다.
세상과 남들을 보는 창과 자신을 비추는 거울을 때때로 들여다봐야 한다.
이 창과 거울은 정말 내 것이었는지 정말 존재는 했던 것인지 말이다.
우리는 수많은 인지적으로 해석된 오늘을 바라보지만 수많은 감정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듯 해석도 언젠가 무의미로 바뀌게 될 것이다.
우는 게 나쁘다거나 약하다는 게 아니다. 운다는 게 쉬운 사람도 있지만 나이가 들면서 눈물샘마저 말라버려 슬픔에 둔해진 사람도 있다. 자기감정에 솔직하지 않은 게 아니다. 다만 웃어 넘기는 게 편해져 버린 사람도 있을 것이다.
눈물보다 진하게 미소 짓고 그럼에도 오늘하루 웃는 당신께 감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