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방황하는 날씨처럼 아이들 중에는 웃자라 잎마디가 좀 길어진 아이들도 있지만 대체로 원래 성장속도를 찾아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건조한 날씨라 요즘처럼 물 주기가 재미난 시절이 있을까 싶다.
혹여나 과습이 될까 걱정될 것도 없이 이틀만 지나도 바싹 말라 시들 거리는 잎사귀를 보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죽은 게 아닐까 싶어 물을 흠뻑 주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잎새를 세워주는 모습을 보면 참 작지만 확실한 즐거움이다. 그렇게 물시중을 들며 관찰하다 보니 조금씩 자라는 듯하다가 자람이 더뎌졌다. 이제야 분갈이 시즌이 온 거다.
화분을 조금 크게 늘리는 일이라 특별한 영양을 더 할 것 없이 이미 있는 흙에 추가로 새흙을 넣어주기만 하면 돼서 번거롭지 않고 금방 할수 있는 작업이다. 한 화분을 갈아 주다 보니 옆 화분들도 여유 있게 컸으면 하는 마음으로 번졌다. 앞으로의 겨울을 잘 지날 수 있게 한 사이즈씩 화분을 늘려주었다. 화분을 크게 키울 때, 예민한 애들은 죽기도 하지만 지금 우리 집에 남아있는 애들은 그래도 순둥 한 애들이라 큰 탈 없이 잘 버텨주고 있다.
적응을 너무 잘해서인지 성장을 멈췄던 애들은 꽃대를 올리기도 했고 새 잎은 물론 새로 싹을 올리기도 했다. 가드닝을 하면서 더디지만 확실히 보여주는 성장을 지켜보면서 기쁨을 느끼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 참 기특하고 대견해~! ' 이런 고마운 감정이입까지 되는 걸 보면 가드닝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인 게 맞다. 뜨거운 여름에 길어진 장마에 죽어나가는 화초를 보면서 감정이 상하기도 하고 관심을 덜 준 적도 많았다. 그냥 덮어놓고 죽지 않을 만큼만 물을 주고 환기를 시켜줬다. 하엽도 제때 치워주지도 못했지만 집사의 무심함에도 덤덤하게 자기 할 일을 하듯 자라 주었다. 오히려 그때서야 새순도 잘 내며 자신들이 잘 살아있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조용히 커주었다.
산에 피고 지는 수많은 초록이들을 보면 금방 자란 듯 하지만 우리가 가까이에서 볼 때는 마치 멈춰있는 것 같은 착각을 줄 정도로 고요하다. 성장하지만 고요한 침착성을 배우게 된다.
벌써 11월이다. 저 화초들처럼 우리들도 잘은 모르지만 2023년의 나보다 성장했으리라 생각한다.
내 눈으로 보기에는 너무 느려 보이지도 않지만 분명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는 성장한 마디와 풍성함이 있을 것이다. 바로 겨울바람이 불어 쓰러질 것 같았던 가로수들도 염려가 머쓱할 정도로 잎새를 물들이고 자기 할 일을 해내고 있다. 조금 부족해 보이는 오늘, 나도 당신도 분명히 어제보다 달라져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