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니작업실 Nov 12. 2024

어제보다 달라져 있을 것이다.

질척였던 여름이 지나고 바로 겨울이 까 걱정했지만 가을이 제 모습을 찾은 것 같다.

우리 집에 머물고 있는 화초들은 이제야 숨을 쉬고 일정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한동안 방황하는 날씨처럼 아이들 중에는 웃자라 잎마디가 좀 길어진 아이들도 있지만 대체로 원래 성장속도를 찾아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건조한 날씨라 요즘처럼 물 주기가 재미난 시절이 있을까 싶다.

혹여나 과습이 될까 걱정될 것도 없이 이틀만 지나도 바싹 말라 시들 거리는 잎사귀를 보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죽은 게 아닐까 싶어 물을 흠뻑 주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잎새를 세워주는 모습을 보면 참 작지만 확실한 즐거움이다. 그렇게 물시중을 들며 관찰하다 보니 조금씩 자라는 듯하다가 자람이 더뎌졌다. 이제야 분갈이 시즌이 온 거다.

화분을 조금 크게 늘리는 일이라 특별한 영양을 없이 이미 있는 흙에 추가로  흙을 넣어주기만 하면 돼서 번거롭지 않고 금방  있는 작업이다. 화분을 갈아 주다 보니 화분들도 여유 있게 컸으면 하는 마음으로 번졌다.  앞으로의 겨울을 잘 지날 수 있게 한 사이즈씩 화분을 늘려주었다. 화분을 크게 키울 때, 예민한 애들은 죽기도 하지만 지금 우리 집에 남아있는 애들은 그래도 순둥 한 애들이라 큰 탈 없이 잘 버텨주고 있다.

적응을 너무 잘해서인지 성장을 멈췄던 애들은 꽃대를 올리기도 했고  새 잎은 물론 새로 싹을 올리기도 했다. 가드닝을 하면서 더디지만 확실히 보여주는 성장을 지켜보면서 기쁨을 느끼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 참 기특하고 대견해~! ' 이런 고마운 감정이입까지 되는 걸 보면 가드닝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인 게 맞다. 뜨거운 여름에 길어진 장마에 죽어나가는 화초를 보면서 감정이 상하기도 하고 관심을 덜 준 적도 많았다. 그냥 덮어놓고 죽지 않을 만큼만 물을 주고 환기를 시켜줬다. 하엽도 제때 치워주지도 못했지만 집사의 무심함에도 덤덤하게 자기 할 일을 하듯 자라 주었다. 오히려 그때서야 새순도 잘 내며 자신들이 잘 살아있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조용히 커주었다.

 산에 피고 지는 수많은 초록이들을 보면 금방 자란 듯 하지만 우리가 가까이에서 볼 때는 마치 멈춰있는 것 같은 착각을 줄 정도로 고요하다. 성장하지만 고요한 침착성을 배우게 된다.

벌써 11월이다. 저 화초들처럼 우리들도 잘은 모르지만 2023년의 나보다 성장했으리라 생각한다.

내 눈으로 보기에는 너무 느려 보이지도 않지만 분명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는 성장한 마디와 풍성함이 있을 것이다. 바로 겨울바람이 불어 쓰러질 것 같았던 가로수들도 염려가 머쓱할 정도로 잎새를 물들이고 자기 할 일을 해내고 있다. 조금 부족해 보이는 오늘, 나도 당신도 분명히 어제보다 달라져 있을 것이다.




이전 28화 공손한 태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