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곧 학교에 가게 되니 아이보다 엄마가 더 준비할게 많아진다. 아이 친구엄마들도 워킹맘이든 전업맘이든 대체로 홀로 키우다가 7세쯤 되면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어서라도 놀이터에 나오고 학원에 보내는 분위기이다. 아이에게 드디어 홀로서기를 가르치려면 아이친구가 너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아이친구엄마'라는 글을 검색해 보면 우호적인 글보다는 스트레스받고 피해를 본 글이 너무 많았고 대부분 결론은 아예 시작도 하지 말고 어울리지도 말아라는 글도 많았다.
그래서 '관계'에 대한 고민을 안 할 수 없었다. 아이에게 공부 머리만큼 사회성을 키우는 게 가정교육의 핵심인데 그걸 엄마 입장에서 먼저 정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준 없이 무조건 잘 어울리라는 것도 기준을 너무 지켜 융통성 없이 어울리는 것도 아닌 다른 기준이 되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나 또한 아이 친구 엄마들과의 관계를 계속 어떤 방식으로 유지하느냐를 미리 생각해두고 싶었다.
결론은 상대가 누구든 만나는 그 시간에 최선을 다하는 '공손한 태도'에 집중하기로 했다.
아이 친구든, 아이 친구 엄마든 언제든 상황이 바뀔 수 있고 그 상대방이 항상 내 마음과 같기를 기대하는 것은 욕심일 뿐이다. 관계는 소유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에 만남과 헤어짐은 유연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가려 만나기에도 세상에 꼭 만나야 할 불편한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그때도 진심을 다한다기보다는 '공손한 태도'에 집중을 하기로 했다.
진심이라는 것을 잘 전달하면 진정성으로 잘 받을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순도 높은 진심은 관계에 따라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상대가 대체로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태도가 공손하기만 해도 오해로 소원해지기 어렵다.
어떤 사람의 실수가 눈 감아지는 것은 그 사람이 보이는 일관된 공손한 태도가 진정성과 합쳐졌을 때 풀린다.
또 격이 다른 상대는 사람의 진정성을 이용해 상대를 휘두르는 무기로 쓰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을 근본적으로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특별히 부딪히지도 않게 태도를 예의 있게 차리기만 해도 더 이상 선을 넘을 수 없는 경계를 치는 것이다. 또 살다 보면 참 말이 안 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무시하되 다른 사람들에게 공손한 태도를 취한다면 사람들은 누가 피해야 할 사람인지 본능적으로 알게 되어있다. 그런 무리로부터의 은근한 보호만 받아도 일상을 살기에 충분하다.
개인주의라는 말이 주변에 스며들기 시작하다가 점점 전반적인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제일 눈에 들어오는 변화는 수많은 방송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너나없이 개인 채널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연예인 물론이거니와 방송작가, 나름 굵직한 방송사의 관련 앵커, 아나운서들도 자신의 프로필을 내세워 개인 방송을 하고 있다. 송길영 작가가 예견한 대로 '핵개인의 시대'가 다가왔다. 다분히 수직적이기도 하고 수평적이기도 한 관계를 중심적으로 자라오다가 어느 순간 자신부터 올바로 세워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개인주의라는 뜻을 잘 모르던 시절에는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태도로 혼용돼 쓰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어느 정도 '너는 너, 나는 나라는 존중'을 이해하는 행태로 수용하고 변하는 게 느껴진다. 그런데 학교에 가게 될 아이를 둔 부모들은 이 문턱 앞에서 어느 정도의 자기 경계를 알려줄지 참 혼동스럽다. 어울림을 가르쳐야 하는 지점에서 중심을 잡기가 어려웠다. 핵심 키라면 '배려'일 텐데 그 마저도 오랫동안 가르쳐주어야 할 개념이라 '태도'에 더 집중하기로 했다. 결국 공손한 태도 안에 배려가 포함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우리는 개인이면서도 전체에 포함돼 있다. 순간순간 작은 무리에 들어가게 되고 또 스쳐 지나가 개인이 되더라도 사회성을 키워야 한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안 든 깊은 뿌리에는 어쨌든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는 생존적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공손한 태도가 있다면 핵개인의 시대에도 충분히 따뜻하게 따로 또 같이 어울릴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