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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작업실 Nov 19. 2024

아이의 정원

아이가 내년에 학교를 가게 된다. 많은 미취학 부모님들은 대체로 혼자 지내지만 어쩌다 같은 입장의 엄마들을 만나면 쌓아두었던 정보와 불안을 나누곤 한다.

미디어에서는 부질없다고도 하고 선배 엄마들도 모여서 얘기하는 것은 필요 없다고 얘기를 하지만 그래도 누구나 성장 단계에서 거치는 미흡한 모습이 있다. 끼리끼리 만나게 돼서 그런 건지 머리로는 알아도 행동은 본능적으로 불안을 확인하게 된다. 나는 다를 것이라 배짱 좋게 믿었던 교육 신념도 순식간에 허물어져 또다시 다른 선택지를 생각하게 한다.


정원 가꾸기는 각자 다양한 방식으로 도움이 되겠지만 나에겐 특히나 아이를 키울 때 드는 여러 가지 감정을 이입하기 좋은 도구가 된다. 첫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모든 상황에 그 벅찬 감정을 이입하듯 아이에 대한 사랑을 여러 가지 상황에 비추어 보게 된다. 내 사랑의 방식이 적절한지 말이다. 꽃의 생김이 다르고 자람의 속도도 다르고 까다로운 정도도 다르다. 처음에는 하나의 품종으로만 비유를 했다면 이제는 넓어졌다. 한 사람마다 각각의 서사가 있듯이 그게 한 품종의 나무에만 비유하기엔 작게 느껴졌다.

 만약 정원이라고 생각한다면 오히려 내 손아귀의 여유가 생기게 돼 아이를 더 크게 인식하게 되는 것 같다. 한 차원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다양한 차원에서 아이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자꾸 아이가 생각하는 정원이 있는데 내가 개입해서 뭘 심을까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리석고 좁은 생각인지 알게 해 준다. 나는 그저 아이가 자신의 길을 찾는 감도를 높이는 일에 집중할 수 있게 지켜보는 역할을 잘 해내야 한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내가 고민해야 할 부분을 부모님이 개입해 고민하실 때 가장 분노했던 기억이 있다.


꿈의 영역이라고 말하는 미술 전공을 선택한 것도 그 길을 내가 선택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쭉 밀고 갈 수 있었던 것도 나의 선택에서 오는 끈기이자 열정인걸 알고 있다.

큰 꿈만이 아니다. 작은 성취도 마찬가지이다. 얼마 전부터 줌바를 운동으로 배우고 있다. 줌바라는 장르는 내 평생 해본 적도 없고 나의 결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과목이었다. 그런데 그 운동을 3개월간 계속 유지 중이다. 왜 그럴까 생각하니 유사하지만 한 번도 똑같지 않고 또 다음 단계가 있었고 모르는 영역을 계속하고 있다는 자체가 동기가 된다는 걸 알았다. 그저 그 시간에 잘 있기만 해도 몸이 한결 잘 따라 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한마디로 직접 부딪히면서 느끼는 잔재미가 계속 유지하게 하는 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내가 나서서 뭔가를 할수록 아이에게 자기가 선택해서 오는 우러나오는 잔재미를 끊어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 흥미만큼은 아이에게 빼앗아서는 안 되겠다는 깨달음과 함께 아이만의 정원 그 울타리를 타 넘어가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게 됐다. 자꾸 내 입장에서 중요하다고 느끼는 뭔가를 심고 싶을 것이다.

또 엄마인 내가 재밌다고 느꼈던 것을 심고서 뿌듯함을 느끼고 내 만족을 하고 싶을 것이다. 아이를 위한다지만 속에 숨어있는 칭찬받고 싶은 결핍된 어른,  엄마인척 하는 어린아이가 있을 것이다. 어린아이가 어린아이를 키우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아이가 스스로 생각해서 만들어가는 정원을 그저 바라봐줄 수 있는 엄마가 돼야겠다.

아이의 성장을 바라기 전에 나부터 성장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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