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사랑에 빠지고 그림자에도 - 20220902

나는 창문 너머를 동경하고 책상 위 그림자를 가지고 놀며

by 민이

학교 자리 바꿨는데 내자리
대박이야!! 맨뒷자리창가쪽!!!
대박인 이유 1.맨뒷자리임 2.창
가쪽임. 근데 이자리 바로 뒤에 에
어컨이 있어서 블라인드를 못내림!!
그래서 항상 올라가 있는데 그러면
하늘이보임!! 나..나 다시금 하늘과
사랑에 빠지고 그림자와도 사랑
에 빠졋서.. 진짜 창문으로부터의
햇빛에 생긴 내 손의 그림자만으로
하루종일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
- 20220902


교실 자리를 정하는 방식과 시기는 매번 달랐지만 보통은 제비 뽑기를 진행했었다. 숫자가 적힌 종이를 나눠갖기도 했고, 프로그램을 이용하기도 했다. 대다수의 아이들이 자신의 짝꿍을 기대하던 때, 나는 어떤 자리에 앉게 될지 궁금해했다. 키가 작아 앞자리를 원하기는 했지만, 시선이 닿지 않는 뒷자리도 좋았다. 통로 쪽이 이동하기는 편했지만, 바깥쪽의 아늑함도 원했다. 보통은 어떤 자리에 앉아도 나름의 이유를 찾던 나에게 자리를 바꾸는 것은 소소한 이벤트가 되어줬다.


이 날도 어김없이 나의 자리에 대한 만족스러움을 표현했다. 넓은 교실의 가장자리에 앉게 된다는 건 확률상으로 적었고, 그래서 좋았다. 무엇보다 밖을 볼 수 있는 창가라는 사실이 행복했다. 또한 일기에 적혀있듯이 블라인드가 내려갈 자리를 에어컨이 막고 있어 내릴 수 없는 자리였다. 나는 그 점이 좋았다.


낮이면 들어오는 햇빛에 자주 블라인드를 내려두던 시기였다. 창문의 권한은 창문 쪽에 앉은 사람에게 있다지만, 햇볕에 눈이 찡그려질 때면 당연하게도 블라인드를 내려야 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히려 청소 중에만 종종 열었을 뿐인 창문은 대부분의 시간 동안 막혀있었다. 그래서 항상 밖이 보이는 이 자리를 좋아하게 되었다.


교실의 소음은 사람에게서 발생하고, 내 주변에는 사람이 없었기에 항상 정적이었다. 수업 중에는 물론이고, 쉬는 시간과 긴 점심시간까지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그러던 틈에 시야로 들어오는 건 항상 창문 밖이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가 보였고, 가지에 않은 새가 보였다. 끊임없이 흘러가는 구름과, 그 사이 모습을 모이는 태양. 변하지 않는 건물과 변화할 뿐인 자연이 눈길을 끌었다. 창문 속 세상은 고요한 세상 속에서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주던 도피처였다.


또 하나 좋아하는 게 있다. 그림자를 좋아한다. 시간에 따라 바뀌는 기울기가 신기하고, 광원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하는 게 즐겁다. 무엇보다 나의 모습을 흉내 낸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두께감 없이, 색채도 없이 그저 외곽선을 따라 그린 듯 흉내 내는 그림자는 어렸을 적 친구이자 심심풀이 장난감이었다. 바닥에 그려진 또 다른 내 모습은 거울처럼 보였고, 누군가에게 배운 그림자놀이는 지금까지도 잊지 않고 있다. 뜨거운 태양 아래 설 날이 점점 줄어들던 때에 마주친 창 너머 태양은 다시금 나에게 그림자를 선물했다.


다시 자리를 바꾸는 날까지 나는 창문 너머를 동경하고 책상 위 그림자를 가지고 놀며 시간을 보냈다. 눈이 감기는 햇볕도 마냥 좋았고, 내가 원하는 모습이 내 시선이 닿는 곳에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자리를 벗어날 때 약간은 아쉬워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후의 자리는 어느 곳인지 모르겠지만, 그 자리 역시 나름의 좋은 점을 찾으며 똑같이 사랑했으리라 예상해 본다. 하늘을 사랑한 것처럼, 그림자를 사랑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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