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fore how it all started..)
나는 1984년 5월 5일생으로 2016년 올해 만 서른둘에 캐나다에 사는 한국 여자다.
이 곳에선 나는 '루나'라고 불린다.
캐나다 소설가인 얀 말 텔(Yann Martel)의 파이의 인생(Life of PI)이라는 소설이 있다.
뉴욕 타임스의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오르기도 하고 영화로도 만들어져 유명해진 이 소설이 슬그머니 머리에 떠 오른다.
부모님이 인도의 프랑스 식민지의 향기가 많이 남아 있는 지역에 동물원을 운영하시는 '파이라는 이름의 소년'은 장난감이나 액션 히어로가 아닌 어릴 적부터 종교에 심취해 다른 아이들과는 사뭇 다르게 성장해 간다.
그런 와중에 파이의 부모님은 캐나다 이민을 결심하고 캐나다로 가는 도중, 타고 있던 이민 선박이 난파되어 가족들과 선박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다 잃고 주인공 파이는 어딘 줄도 모르는 망망대해에 같은 배에 운송 중이던 고릴라, 얼룩말, 하이에나, 뱅글 타이거와 함께 구조보트에 남겨진다.
이 소설은 이 파이라는 주인공이 결국 어떻게 하여 살아남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며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는 신(God), 운명(Destiny)에 대해 생각하게끔 한다.
시간을 잠시 되돌려 때는 1994년, 나는 경기도 성남시의 반지하 단칸방에서 아빠, 엄마, 남동생과 살았었다.
나는 평범한 아이 었다.
없는 살림이었지만 동네 수학학원도 다녔고 저녁 한 끼 정도는 가족이 다 같이 모여 먹을 수 있었다.
공부도 잘했고 성격도 좋은 편이었고 얼굴이 예쁜 건 아니지만 못생기지도 않았고 명랑했다.
그렇게 평범하게 행복했던 초등학교 4학년..
그러다 보증을 잘못 서고 잇따라 사업에 망한 아빠가 술주정뱅이가 되고 난폭해져 엄마를 자주 폭행하자 엄마는 가출을 했고,
남겨진 내 동생과 아빠와 나는 아빠의 고향인 '충북 제천'으로 소리 소문 없이 순식간에 이사를 떠나버렸다.
이사를 떠나기 전 날 밤, 아빠는 가출한 엄마가 나를 낳아준 엄마가 아니라 내 생모는 어딘가 따로 있다는 출생의 비밀의 보따리까지 풀었다. 믿고 있던 모든 것들이 무너졌고 희망이라는 것은 영원히 사라진 것만 같던 지옥 같던 시간들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렇게 1995년도, 이사 간 아빠의 고향 충북 제천에서도 아빠의 술주정과 폭행은 여전했다.
그칠 줄을 몰랐다.
취한 아빠는 날 온몸에 멍이 들 정도로 때렸고 난 멍이 든 것이 아프고 창피해 웬만큼 나아질 때까지 학교를 가지 못했다.
그런 날들이 계속 반복됐다.
게다가 한 번도 배우지도 만들어보지도 못한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밤에는 취한 아빠가 무서워 잠들 수 없어 뜬 눈으로 지새웠다.
그때 여러 번 가출을 했다.
도망갈 때마다 여섯일곱 된 동생이 자기도 데리고 도망가라며 울었다.
난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녔던지라 어쩔 땐 하나님을 원망했다. 사랑한다며 이런 식으로 둘 수 있냐며.
정말 생지옥이었다.
그러다 정말 갑자기 아빠는 같은 해 거의 말, 심한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간경화 증세의 악화로 세상을 떠나셨다.
아빠가 돌아가시면서 나와 동생은 다시 성남으로 돌아왔고 나는 성남의 공장지대에서 구내식당을 운영하시던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내 남동생은 제 엄마와 함께 살게 되었다.
그렇게 다소 힘들었던 나의 십 대는 시작되었다.
난 인근에 있던 제법 이름 있는 여중, 여고를 다녔고.. 비바람 치던 인생의 바다 어딘가를 건너 남자친구도 사귀어 보았고, 독실한 크리스천인 할머니를 따라 열심히 교회도 다녔다.
번듯한 부모는 없었지만 번듯한 부모 없는 애라..라는 소리가 듣기 싫어 공부도 열심히 했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다.
사는 게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처럼 악몽 같진 않았다.
그 땐 학교에서도 교회에서도 친구들 사이에서도, 제법 쓸모 있는, 그래서 인정받고 사랑받고 또래의 친구들처럼 나름 평범하게 살 수 있어 행복했던 것 같다.
난 항상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as long as I remember.
다른 꿈을, 다른 일을 하는 나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글을 쓰는 것이, 나의 생각을, 나의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이 옷을 입고 있는 것보다 편했다. 글을 쓰는 것에, 글로 나를 표현하는 것에 운명을 느꼈다.
초 중 고 시절엔 대박 나지 않으면 돈을 잘 못 번다는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내 입으로 하긴 웃긴 얘기지만 나가는 대회마다 상을 타 왔고 중고등학교 모두 상을 많이 타 와 학교 이름을 빛냈다고 공로상을 받고 졸업했다.
이래저래 나도 내가 글 쓰는데 꽤 기질이 있다고 생각했고 글 쓰는 사람이 아니면 뭐가 되겠나 싶었다.
그렇게 스무 살이 되었지만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해 재수를 했고 그때 즈음, 고등학교 신문 편집부 시절 만나게 된 언니가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것을 보고 돈 못 버는 시인 소설가 해서 뭐하나, 돈 잘 버는 거 하자, 드라마 작가 같은 거, 그렇게 시작해 한국방송작가협회 드라마 작가반을 수료했고 방송국에서도 일을 했다.
이렇게 이 길을 파다 보면 언젠간 되겠지, 뭐라도 되겠지 하던 열정으로 넘쳤던 스물한 살, 친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보고 싶다고. 한 번 만나자'고.
그 시절 나름대로는 아버지가 돌아가신지도 오래되었고..
뭔가 통찰력 있는 글을 쓰기 위해서 나 자신의 뿌리를 알아야 된단 생각에 그간 나를 버리고 도망가 잘 먹고 잘 사는 엄마의 이미지를 가진, 누군지도 모르고 자란 ‘내 엄마’를 만나야겠단 생각을 했다.
그렇게 엄마를 만나자 내 인생의 배는 또 다른 곳으로 향하게 되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운영하시던 공장 안의 식당 한편에 살던 나를 위해 엄마는 자신이 살던 인천에 작은 전세 아파트를 구해주었고 그렇게 난 '성남에서 인천'으로 이사를 했다.
할머니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너도 기댈 곳이 필요할 텐데, 네 친엄마니 따라가라셨다.
그렇게 사랑받고 싶어 엄마가 살고 있는 도시로 이사했지만..
엄마의 남편과 아들은 나의 존재를 알지 못했고, 보험회사를 운영하며 바쁘게 사는 엄마는 기대와는 다르게 기댈 곳이 되지 못했다.
그때 처음으로 스트레스로부터 오는 장염에 걸렸다.
내 진짜 엄마라고 만났지만 그녀의 남편과 아들의 그늘 밑에 살아야만 하는 게 서러웠고 만나는 남자는 많았지만 다칠까 봐 정 주기가 무서웠다.
그러면서도 외로워 끊임없이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다, 달아나고파 생각한 유학..
일하면서 모은 돈 몇 푼을 챙겨 들고 영화를 배우기 위해 프랑스 유학은 어떨까 하는 찰나, 엄마가 당시 대학교 교수를 하시던 삼촌이 유학을 다녀온 필리핀을 얘기했다.
그리고 2006년도 6월, 나는 한국을 떠나 필리핀의 한 여대에 심리학 전공으로 입학했다.
(To be continued.... in part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