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Part. 2

(Before how it all started...)

by 루나



필리핀은 익사이팅(Exiting)했다.

(Well, overall I would say...)



2006년, 당시 한국 나이 스물둘. 난 필리핀의 한 여대에 심리학과를 입학했다.

난 처절한 패배 끝, 부활의 찬스를 얻은 것 같은 기분이었고 정말 점 하나 찍혀 있지 않은 백지를 받아 들은 화가의 마음이었다.


잘되고 싶었고, 잘하고 싶다는 강한 열망과 엄마를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 힘들었을, 내 주제에 '유학'이라는 걸 다 해보는 영광을 안고 살다니, 무엇보다 모든 상황에 고마웠다. 그래서 정말 뭐든 열심히 했다.

영어공부, 필리핀 공부, 학교 공부, 어디 하나 소홀히 하지 않았다. 외로웠지만 행복했다.

For the 1st time, strange felt so good.






필리핀 생활을 시작한 지 한 삼사 개월 만에 엄마와 트러블이 생겼다.

그녀가 이십 년 만에 만난 딸을 겨우 몇 개월 만나 놓고 외국으로 보내 놓고는 그 멀리 있는 딸로부터 뭘 얼마큼 기대했는진 모르겠지만, 필리핀에 도착한 지 한 삼 개월인가 사 개월 만에 엄마는 나를 만난 것을 후회한다며 어차피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표도 있으니 다시 할머니한테 돌아가라고 했다.


이십 년 만에 만난 친엄마가 날 만난 것을 후회한다니, 만나지 않은 걸로 치자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내가 가는 곳마다 교묘하게 나를 쫓아다니는 그림자 같은 불운의 횡포에 지칠 대로 지쳐버렸다.



엄마가 부쳐주는 돈이 떨어지면 유학을 계속 지연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고 그래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돈을 벌어 오거나 필리핀에서 계속 학교를 다니면서 어떻게든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됐지만, 이왕 시작한 거, 끝을 보고 싶었다. 오기가 생겼다. 설마 죽기야 하겠어.


그렇게 엄마와의 연락을 끊고 난 학교에서 가끔 번역을 받아 작은 용돈 정도를 마련했고 한국에 계신 작은 아빠가 돈을 부쳐 주셔서 겨우 1학년을 마칠 수 있었다.

학기를 마치고 난 한국으로 잠시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렇게 2007년 1월,

시험을 마치고 머리를 식히러 놀러 나간 바(Bar)에서 친구와 함께 필리핀으로 여행 온 지 며칠 되지 않은 캐나다 남자 제이를 만났다.



지금 생각하면 제이를 처음 만났을 때 내가 홀려도 뭐에 단단히 홀렸던 것 같다.

아님, 제정신이 아니었거나.

하지만 무엇보다 외로워서, 힘들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래도 어떤 남자를 만나 동지 감, 사랑, 우정을 한꺼번에 그것도 너무 빨리, 그렇게 격렬히 느껴보긴 처음이었다.

생긴 것도 다르고 사고방식도 다른 외국 남자.. 게다가 이 사람이 휴가를 나와 만난 여자와 가봐야 어디까지 가겠어? 하는 생각이 압도해 그 사람을 사랑한다라는 마음과는 달리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그를 만나는 것도, 좋아하는 감정을 막는 것도, 멈출 수가 없었다.

사실, 사랑받고자 하는 마음은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 아닌가.

나는 그가 주는 사랑이, 그가 보여주는 사랑이 좋았다.



약 한 달 반 후 그이는 캐나다로 돌아갔다.

그리고 같은 해 삼월 말에 생일이 있던 이 남자를 만나러 나는 캐나다에 왔다.

한 달을 예정하고 들어왔는데 거기서 이주를 더 연장했다.

하지만 남기고 온 것이 너무 많아 필리핀에 돌아가야만 했다.



그 해 5월 중순, 필리핀으로 출국하기 위해 눈물을 쏟으며 도착한 토론토 공항에서 내가 티켓을 산 필리핀의 여행사가 부도를 내고 내 리턴 티켓(Return Ticket)을 취소해 돈을 수취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정말 내 인생의 드라마는 끝을 모르는구나...'

머릿 속엔 그 생각뿐이었다.



그래도 어쨌든 공항에서 항공사랑 싸워가며 내 잘못 아니니 비행기 태워 주시오, 배 째시오 싸우다 결국 삼일 후에 티켓을 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제이는 말했다.

“I think you should stay…”


그렇게 난 필리핀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놓쳤다.






(Charing Cross 전 집 뒷 마당)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굳이 캐나다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제이를 사랑했지만 두고 온 거, 버리고 온 거, 이 사람을 택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가정을 머릿속에 반복하며 정착하지 못했다.

아이를 낳기 전까진 싸움만 하면 가방을 싸고 한국에 가겠다고 협박을 했다.


그러다 2009년 5월, 난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건강하고 눈이 아주 예쁜 남자아이 었다.

그리고 자식이 생긴 뒤, 자식을 키우면서 캐나다를 진짜 집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필요에 의한 강제적 적응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필연적이었다.



2013년 12월 둘째를 낳았고 시간은 흘러 어느덧 횟수로 캐나다 생활 구 년째...

한국을 떠난지는 십 년째.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머릿속은 마치 각기 다른 생각들을 품고 있는 수 많은 거품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하고 영화를 볼 때면, 노래를 들을 때면, 요리를 하다가도, 샤워를 하다가도, 장을 보러 나갔다가도,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마치 페트병 콜라가 터져 넘쳐 나오기 일보 직전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Like something just got clicked.



And so, I've decided to let it all out and see where this takes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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