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시부모님과 아기 키웁니다만 #11
아이는 태어나서부터 12살까지, 생각보다 많은 백신을 맞아야 한다. 특히 첫해는 ‘백신의 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종류가 많다. 나는 솔직히 아이를 낳기 전엔 이 정도일 줄 몰랐다. 다행히 한국 병원에서 주는 아기수첩을 따라가면 복잡한 백신 스케줄도 숟가락으로 밥 떠먹듯 착착 따라갈 수 있다. 문제는 그걸 따라갈 ‘정신력’이 매일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는 것.
육아를 하며 깨달은 건, ‘완벽한 엄마’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수면 교육, 애착 형성, 이유식, 놀이 교육… 아기 키우기 공부는 끝이 없다.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아기를 수유쿠션 위에 눕혀놓고, 한 손엔 핸드폰, 한 손엔 모유 수유 중이다. 내 하루는 “육아 + 가사 + 글쓰기 + (가끔) 운동”로 이루어진 완벽한 멀티태스킹이다.
임신 중에 18킬로가 쪘던 몸은 예전으로 거의 돌아왔지만, 배는 여전히 임신 4개월 차처럼 남아 있다. 운동을 해야지, 마음은 굴뚝같은데 현실은 냉장고 문 열다 말고 아기 울음소리에 닿는 삶이다.
그래서 요즘 내게 가장 소중한 시간은 화장실 가는 3분, 샤워하는 5분, 그리고 부엌에서 야채 써는 고요한 7분이다. 혼자만의 시간이 이렇게 귀할 줄은, 엄마가 되고 나서야 알았다.
한국에서 아기는 생후 5개월 시기에 맞아야 하는 백신을 2차까지 맞았다. 디프테리아, 파상풍, 백일해, 폴리오, b형 헤모필루스 인플루엔자 혼합백신, 그리고 폐렴구균 백신. 3차 접종은 인도로 돌아온 뒤 맞혀야 했다. 그래서 한국에서 다니던 소아과에서 백신 약 이름과 제조사를 사진으로 찍어두었다. 준비 완벽. 적어도 그땐 그렇게 믿었다.
지금 우리는 시부모님이 계신 이탈시(Itarsi)에 살고 있지만, 차로 1시간 반 거리의 대도시 보팔(Bhopal)로 이사 준비 중이다. 며칠 전 보팔의 반살 병원에 가서 헥사신(Hexaxim)이라는 혼합 백신을 맞혔다. 아기가 주사를 맞을 때마다 나는 간호사 옆에서 손을 꼭 잡고 있다. 아기가 자지러지게 울면 내 심장도 같이 덜컥 내려앉는다. 다행히 이번엔 금방 진정됐다. 주사를 맞고 나서도 체리는 웃으며 장난을 쳤다.
의사 선생님은 남편의 의대 선배 소개로 만난 분이라 유난히 친절했다.
“체중 8.2kg, 키 65cm. 잘 크고 있네요.”
그 말 한마디에 그간의 피로가 사라지는 듯했다. ‘그래, 잘 크고 있구나. 나는 지금까지 괜찮게 해온 거야.’ 그런데 바로 이어진 한마디가 평온을 깨뜨렸다.
“오늘 폐렴구균 3차도 같이 맞을게요.”
…네?
아뿔싸. 폐렴구균 3차! 완전히 잊고 있었다. 남편은 인도 생활을 챙기고, 나는 한국 일정표를 챙기느라 서로 놓친 것이다. 게다가 아기수첩은 한글이라 남편은 나에게 전권을 맡기고 있었고, 나는 그걸 ‘이미 다 기억했겠지’라며 넘겼다.
“몰랐어? 오늘 같이 맞아야 해.”
“미안해, 확인을 못 했네…”
그날 집으로 돌아오며 머릿속이 복잡했다. ‘헥사신은 잘 맞혔는데 왜 폐렴구균은 놓쳤을까?’ 나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완벽하려 애썼지만 결국 또 틈이 생겼다. 다음날 한국 병원에 연락해 체리가 맞았던 백신 종류를 확인했다.
“프리베나 13이요. 요즘은 프리베나 20으로 업그레이드됐어요.”
아기수첩을 다시 보니 희미한 도장이 찍혀 있었다. ‘프리베나 13’… 그 흔적을 이제야 본 내가 밉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혼자 살 땐 건망증의 피해자가 나 혼자였지만, 이제는 작은 실수 하나가 아기에게 닿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철렁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말했다.
“완벽한 엄마는 없어. 대신 노력하는 엄마는 있잖아.”
며칠 뒤, 시어머님, 남편과 함께 아기를 데리고 이탈시의 소아과로 갔다. 대기실에는 다양한 연령의 아이들이 앉아 있었고, 산부인과와 분만실이 함께 있는 그 병원은 인도의 소아과 분위기 치고 꽤 아늑했다.
그날 체리는 폐렴구균 3차를 무사히 맞았다. 그리고 나는 같은 날 A형 감염 예방주사를 같이 맞았다.
병원에서 나오는 길, 체리는 내 품에서 곤히 잠들었다. 왼팔에 작은 반창고 하나 붙었을 뿐인데, 왠지 모르게 마음이 먹먹했다. 아기가 아닌 내가 더 아픈 날이었다.
한국과 인도를 오가며 육아를 한다는 건, 두 나라의 매뉴얼을 동시에 업데이트한다는 뜻이다. 하나는 ‘체리의 백신 스케줄’, 또 하나는 ‘나의 마음 회복 스케줄’. 하나는 병원에서 받는 접종표, 또 하나는 내 안에서 조금씩 채워지는 ‘엄마로서의 내공표’다.
<육아라는 신세계에서 새로 배운 것>
태어나자마자 아기는 세상과의 첫 약속을 백신으로 시작한다. 처음 1년은 ‘백신의 해’라 불릴 만큼 바쁜 시기다.
- 출생 직후: B형 간염 1차, 결핵(BCG)
- 2개월: DTaP(디프테리아·파상풍·백일해) 1차, IPV(소아마비) 1차, Hib(뇌수막염) 1차, 폐렴구균 1차, 로타바이러스 1차, B형 간염 2차
- 4개월: DTaP 2차, IPV 2차, Hib 2차, 폐렴구균 2차, 로타바이러스 2차
- 6개월: DTaP 3차, IPV 3차(선택), Hib 3차, 폐렴구균 3차, 로타바이러스 3차(선택), B형 간염 3차, 인플루엔자(독감)
- 12개월 전후: MMR(홍역·볼거리·풍진), 수두, A형 간염 1차, 폐렴구균 4차
작은 팔에 붙은 반창고 하나에도 마음이 덜컥 내려앉지만, 그만큼 부모의 마음도 단단해진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오늘도, 아기의 건강한 한 걸음을 함께 만들어가는 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