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덕순 엄마, 글을 쓰기 시작하다

평범한 인생을 담은 특별한 일기장

by 덕순



지금까지의 내 삶을 색으로 표현하자면 심심한 무채색에 가깝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는 삶을 고대로 따라 살아왔기 때문이다.


남들처럼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나와

수능이라는 큰 거사를 치르고 대학교에 입학했다.


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취업 준비를 열심히 해서 원하는 회사에 취직했다.


7년 동안 같은 회사를 쭉 다니면서 승진도 하고,

지금의 남편을 만나 연애에 결혼까지 했다.


모두가 원하는 것 같은 평범하고 행복한 삶의 조건을 다 이룬 셈이다.




조금 심심한 내 인생과는 달리

이 세상에는 통통 튀는 형광색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 많다.


예를 들어 퇴사를 하고 세계 여행을 떠났다던지,

갑자기 어릴 적 꿈을 좇아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다던지,

무일푼으로 사업을 해서 크게 일궈냈다던지...


그들에 비하면 내 삶은 평범함을 넘어 초라해 보이지만,

나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싫어하고,

지극히 안정적인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나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딱히 불행한 건 아닌데...

시간은 점점 더 빨리 흐르고

별생각 없이 떠밀리듯 사는 것 같아.'




안정적인 직장도 있고

결혼해서 아기까지 있으니

이만하면 많은걸 누리고 사는 건데,


언제부터인지 내가

뒤에서 떠밀리듯이 살면서

점점 더 빨리 늙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입시 지옥, 바늘구멍 같은 취업문...


그동안 수많은 경쟁을 뚫고 살아왔지만,

원하는 회사에 취직한 후로는

반드시 완수해야 할 퀘스트가 더 이상 없었다.


나름 만족하고 다니는 곳이어서 이직 생각도 없었다.


목표가 없는 삶이라 매 해가 똑같았고,

그렇다고 재미를 찾자고 모험을 할 용기도 없었다.




마치 꿈을 꾸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말도 안 되는 상황이 펼쳐져도

꿈속의 내가 단 한 번도 '왜?'라는 의문을 갖지 못하고

꿈속을 현실인 것 마냥 헤매는 것처럼.


나이를 먹을수록

어릴 적부터 바라온 '나'와

너무 멀어진 '나'를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내 삶에 '왜'라는 의문을 갖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꿈꿔왔던 나는 무엇이었을까?

그런데 왜 나는 지금의 내가 되었을까?


주변에서 이렇게 살라고 날 떠민 걸까?

아니면 내가 선택한 걸까?

왜 아직도 나는 그대로일까?




고민과 고민을 이어갔고,

나는 그 고민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불현듯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을 기록하지 않으면 꿈속의 기억처럼 새하얗게 잊혔기 때문이다.


언젠가 나는 기록에 대해 이런 생각을 남겼다.


어릴 적 시간은 느리게 흘렀고
매 해마다 이루어야 할 과제가 있었기 때문에

그냥 시간이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어도
내 기억에 남는 것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시간은
매 해마다 내 학년이 올라가지도
새로운 입시를 준비하지도 않기 때문에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시간이 흘러가도록 내버려 둔다면,
내 기억에는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된다.

나는
내 일상을 기록하고
내가 배운 것을 기록하고
내가 성찰한 것을 기록해서

무채색이 되어버린 내 인생을
기록이라는 물감으로 칠하고 싶다.

노력하지 않으면
갈수록 빨리 흘러가는 세월을 타고
무채색으로
늙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과 생각의 기록이 겹겹이 쌓이다 보면

언젠가 나도

'딱히 불행한 건 아닌데

떠밀려 살고 있는 것 같은 삶'

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고민의 기록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 새로운 생명이 찾아왔다.


태명 '덕 있고 순한 아이', 덕순이.

덕순이를 처음 알게 된 순간부터

심심했던 내 인생에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어떻게 하면 덕순이가 나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나는 내 삶을 돌이켜보며,

내가 살면서 채우지 못한 것들을 채워주고 싶었다.


이것은 단지 어릴 적 내가 못 가진 비싼 장난감 같은 게 아니었다.


안전한 길을 찾아 이끌어주는 엄마보다

스스로 길을 찾아 헤맬 수 있게 뒤에서 따라와 주는 엄마가 되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경험을 선물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육아라는 내 평범한 삶의 연장선에,

이 거창한 목표를 칠하기 시작했다.


아기를 등에 업고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이 과업은 현재 진행형이다.


매일매일 몸과 마음이 쑥쑥 자라는 덕순이처럼

그동안 나도 육아라는 새로운 경험을 통해 많은 것들을 배워가고 있다.




평범하고 고된 육아 일상이지만,

나는 아기와 함께 성장하는

특별한 이야기를 담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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