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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씨 Aug 18. 2022

일, 회사 그리고 나 (@토오베)

내 마음을 돌보는 디저트여행기 8편  by.OV5

솔구 : 너에게 일이란 뭐야? 


밍키 : 나한테 일은 돈 버는 거야. 사실 지금 하는 일이 원래 하고 싶던 일이 아니고 오히려 정반대의 일이잖아. 근데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좋고, 안정감이라든지 워라밸이라든지 나랑 맞는 장점이 있다 보니까 어느새 10년째 다니고 있어. 너는 어때? 너는 진짜 일이 많았잖아. 나랑 살 때도 매일 새벽 2-3시에 들어오고. 진짜 나는 쟤가 어떻게 버티나 했다니까. 


솔구 : 우리 팀이 진짜 야근을 많이 해서 부당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기는 했다? 그런데 모두가 집에 빨리 가고 싶어 하면서도 그런 말을 하면 ‘너는 우리 회사 문화랑 안 맞네?’하는 반응이 나와. 내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드는 감정이 ‘그럼 스타트업에 오면 안 되지.’라는 분위기로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어. 특히 초반에는 '주어진 미션을 향해서 인생을 건다!' 하는 분위기가 알게 모르게 있었지. 


밍키 : 사실 나도 PD를 하고 싶었는데 못했잖아. 반면에 너는 어쨌든 콘텐츠를 만든다는 점에서 네가 하고 싶던 일을 한 건데, 좋아하는 일에 네 생활을 다 투자한다는 게 어땠어? 


솔구 : 처음에는 나도 천직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이 회사에 내 모든 걸 부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다른 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갈수록 힘든 거야. ‘좋아하는 일을 하는 나’라는 자아도 있지만 그 외의 다른 나도 내 자아잖아. 그런데 한 자아에 모든 걸 다 쏟아부으면서 점점 다른 나를 잃어버리게 되고, 결국 내 삶엔 일 밖에 남지 않았어.



밍키 : 일에서 오는 만족감으로 커버할 수는 없었어? 


솔구 : 처음에는 커버가 됐는데 갈수록 너무 힘들었어. 내가 만든 게 너무 잘 돼서 매출이 몇 십억이 되고 승진도 하는 상황이 실제로 일어났다? 엄청 만족했지. 그런데 한편으로는 허무했어. 내가 이룰 수 있는 제일 베스트 시나리오였는데도 말이야. 드라마 검블유에서 보면 팀원들이 몇 달씩 잠 안 자고 야근해서 싸이월드 같은 걸 만들어서 대박이 터져. 그런데 다들 행복해하지 않아. 너무 나를 소모하고 갈아 넣어서, 결과가 너무 좋은데도 안 행복한 거야. ‘앞으로도 이거보다 더 잘 될 수도 있지만 행복할까?’하는 물음에 쉽게 대답할 수 없는 거지. 매일 나를 갈아 넣어서 일을 하는 사이클의 반복일 거 같은 거야. 사실 그 당시에는 갈아 넣는다는 표현을 쓰는 것조차 죄의식을 가질 정도였어. 내가 만약 검블유처럼 '임원을 달아서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할까?’하는 부분이 계속 고민이 됐어. 처음에 이 일을 하면서 느낀 보람, 동료들과 같은 미션을 향해 달려가는 분위기가 좋았지만 그건 일하는 나의 일부분일 뿐이잖아. 결국 나한테는 다른 나에 대한 갈망이 더 커졌던 것 같아. 친구들이랑 만나는 나, 연애하는 나 같은. 다른 새로운 걸 도전하는, 하고 싶은 취미를 하는, 이외의 수많은 나를 무시해야 할 정도로 일이 좋았던 건 아닌 것 같아.



밍키 : 지금 내가 하는 일은 사실 좋아하는 일은 아니야. 내가 원하는 건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크리에이티브한 일인데, 하고 있는 건 반대로 법을 기준으로 규제하는 일이거든. 10년 동안 일을 하면서 익숙해졌지만 뭔가 개인적인 성취로는 아쉬움이 많아. 물론 필요하고 중요한 일인데도 내가 진정 원했던 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서. 10년 차가 되니 불안하다기보다는 좀 지겨워. 앞으로 쭉 오랜 기간 다닌다고 생각했을 때 옛날에는 불행하다고 생각했거든. 어떤 사람은 그 안정성을 좋아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내게 중요한 가치와 괴리가 있으니까? 새로운 걸 만들고 싶어 하고 재밌는 걸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인데 회사의 나와는 괴리감이 컸지. 그만 두면 어떨까도 생각하지만 지금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만둘 것 같은데 하고 싶은 게 없어. 변명일 수도 있는데, 좋아하진 않지만 그만둘 이유도 없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이 회사를 다니면서 느낀 게 PD를 했으면 스트레스 컨트롤을 못했을 것 같아. 내가 스트레스 역치가 높은 사람이 아니더라고. 그리고 사실 PD가 아니더라도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기도 하잖아.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이 기획처럼 말이야.



밍키 : 앞으로도 일을 하고 싶어? 


솔구 :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일을 하고 싶다는 느낌보다는 재밌을 것 같다 싶은 게 너무 많아.


밍키 : 재밌을 거 같은 게 일이 되면 좋을까?


솔구 : 좋아하고 즐겨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자체로도 견디는 힘이 될 것 같아. 나한테 제일 잘 맞고 이 시기에 해야 할 일이라는 확신만 있으면. 요즘에 엄마 아빠가 시작한 유튜브 편집을 도와주고 있는데 사실 조회수도 안 나오고 편집하는 것도 지루해. 하지만 그런 부분을 견디고 나면 완성됐을 때 '나는 뭔가 이런 걸 만들어야 되는 사람인가 보다'하는 느낌이 들더라고. 운동을 하는 중간은 고통스러운데 하고 나면 좋은 것처럼. 뭐든 즐겁기만 할 순 없지만 꾸준하게 지속 가능한 일이 되는 순간 마쳤을 때의 결과물이나 과정 자체에서 오는 즐거움이 고통을 뛰어넘을 수 있게 되는 것 같아. 9개 싫고 1개 좋으면 좀 그렇지만 7이 재밌고 3이 싫은 정도인 일을 만난다면 꾸준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밍키 : 직업으로 삼고 싶은 일이 있어?


솔구 : 아니. 내가 원하는 삶은 직업으로 정해져 있지는 않아.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해나가는 건데 지금 생각하는 것들은 하루아침에 다 이루어지지 않는 것들이거든. 사진가, 편집자, 게스트하우스 주인 등등. 고정된 직업이라기보다는 내 나름의 기준으로 삶에서 일의 종류와 비중을 구성해나가고 싶어. 


밍키 : 불안정성에 관한 걱정은 없고?


솔구 : 성향 자체가 그런 걱정이 원래 없는 편이야. 회사 다닐 때는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이 너무 좋았다? 스트레스 안 받고 돈 쓰던 삶이 너무 좋았는데, 그래도 월급이 없는 지금의 삶이 불안하진 않아. 만약에 남편이 잘렸다고 해도 미래가 불안하지 않을 것 같아. 타박은 하겠지만.


밍키 : 불안하지 않는 성격이 어디서 왔을까?


솔구 : 글쎄. 아빠는 30년 동안 준공무원이어서 안정적인 편이셨는데 항상 나한테 하고 싶은 거 많이 하고 살라고 하셨어. 그래서 그런지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직장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고 사업을 할 거라고 생각했어. 



밍키 : 나는 내 삶에서 돈을 벌어서 모아서 자산을 불려 나가는 게 적성에도 맞지 않고 비중도 크지 않아. 그래서 만약 진짜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지금 회사를 그만둘 수 있어. 지금 회사를 다니는 이유가 따로 하고 싶은 게 없고, 하고 싶은 게 생기면 시도를 해볼 수 있는 여유가 있는 회사라서 거 든. 사실 매출 압박, 불안정성 같은 게 거의 없는 편한 회사인데 너처럼 힘들었으면 버틸 수 있었을까 갑자기 궁금하긴 하다. 하지만 나는 플랜비 없이는 못 나왔을 것 같아. 확실히 나는 너보다 안정성이 중요한 사람이기는 한가 봐. 그런데도 10년째 회사를 다니면서 안정성과 편함만 쫓다가 정작 재밌고 내가 하고 싶은걸 못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함이 들기도 해. 결국에 회사나 직업이 정답이 될 수 없는 걸까?


솔구 : 답은 아니야. 적어도 나는 직업=인생은 아닌 것 같아. 



밍키 : 난 요즘 들어서는 돈과 명예가 있는 직업 부러워지긴 했는데. 인풋을 많이 넣고 아웃풋을 많이 받는 일이 부러워졌어. 내가 하고 있는 게 이 일밖에 없으니까 일에서의 성취가 내 가치가 된 느낌이 있거든. 직업의 가치로 내 가치를 한정 짓기 싫으니 내 가치를 높이기 위해 다른 걸 더 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어. 차라리 일이 많았으면 짧은 시간을 쉬어도 맘 편히 잘 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솔구 : 일이 신기한 게 내가 10이라는 인풋을 넣으면 다시 20을 넣어야 되고 계속 뭔가 투자를 해야 돼. 빚 더미처럼. 일을 진짜 많이 했는데도 계속 그 생각만 하게 된단 말이야. 어디서 멈춰야 될지 몰라서 처음에는 무작정 많은 일을 했는데 나중에는 너무 힘드니까 내가 나를 보호해야 한다는 의식이 생겨. 그래서 7시 땡 하면 일 생각을 그만두려고 해. 그렇게 해도 마음은 일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쉬는 것도 스킬이구나 생각이 들어.


밍키 : 일을 네 삶과 꼭 분리해야 될까? 


솔구: 보통 남들이 일로 나를 평가하는데 당연히 내가 못할 때도 있고 잘할 때도 있잖아. 그런데 나는 사람들한테 항상 완벽하게 보이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런지 못 할 수도 있는 부분들을 너무 나 자신이랑 동일시해서 스트레스가 쌓이더라고. 그래서 ‘난 최선을 다했다! 못할 수도 있지!’ 하고 너무 자책하지 않으려고 연습하는 중이야. 





추신. 디저트 여행은 매주 수요일 어두워지는 언젠가 연재됩니다.


위치 :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62-4 3층

한 줄 소개 : 특색있는 디저트와 모던한 감각이 돋보이는 인국역 찻집

밍키평 : 인스타 감성 백 스푼이 들어갔지만 편안함도 잃지 않은 부담없는 찻집

솔구평 : 따뜻한 차가 몸을 녹이고 레몬젤리의 상큼함이 기분을 가볍게 만들어주는 곳


OV5 1st Project '내 마음을 돌보는 디저트 여행'

사진 : 솔구

글 : 밍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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