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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애 Oct 27. 2024

소설_09. 께름칙한 그림, 그리고 그림의 주인

할머니는 나를 채근했다. 논문에 대해 몹시 궁금해했다. 그리고 흥분했다. 왜 이 태석 화백 일에 대해 이토록 흥분하는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그건 할머니도 솔직하게 말해주지 않았다. 그래놓고 나더러 논문을 가져오라니.


그냥 화백의 업적 같은 거 정리해둔 거랬어요. 금지된 이유는 그 화백이 이권에 반하는 행동을 했거나 뭔가 찍혔겠죠. 괘씸죄같은 거라고나 할까. 그런 일은 역사적으로도 가끔 있는 일이잖아요.

나는 인철 선배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심드렁하게 넘기려 애썼다. 왜 금지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별 시덥잖은 이유로 학회에서 금지했을 거라고 넘겨짚었다.


어쨌든 보여드리는 건 어렵지 않아요. 할머니가 누구한테 말할 것도 아니고. 그나저나 현관에 저 그림 왜 걸어두셨어요? 정말 이태석 화백을 아세요? 회원들 중에도 안 계시는데.


그림이 좋아서. 마음에 들어.


그건 할머니 생각이구요. 회원들 생각은 다를 거예요. 궁궐 모임 전에는 치워 두세요. 영 께름칙해요.


나는 마음에 든대두.


요즘엔 저런 기법 안 써요. 한 물 갔어요. 그러니까,

나는 말을 하다말고 할머니는 쳐다봤다. 할머니의 눈빛에서 싸늘함이 느껴졌다.


너도 별 수 없는 어린애구나. 유행이나 따지고. 저렇게 생동감이 느껴지는 그림은 의외로 흔치 않아.


생동감이요? 저는 왠지 살의가 느껴지는데요?


난데없는 어린애 취급에 나는 순간 심사가 뒤틀렸다. 그래서 지지 않았다. 아니 지기 싫었다. 할머니가 아무리 미술에 조예가 깊다 해도 현재 대학에서 미술을 정통으로 공부하고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니던가.


살의?


할머니는 '살의'라는 단어가 거슬렸는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그게 그러니까, 귓바퀴가 꼭 블랙홀 같아요. 생존위협을 느꼈다랄까. 블랙홀에 빠지는게 좋은 느낌일 순 없잖아요.


나는 애써 분위기를 비다듬으려고 일부러 비시시 웃어 보였다. 이쯤이면 할머니도 같이 웃어줄 만 한데.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할머니의 태도는 여전히 싸늘했다.


좋든 나쁘든 그 정도의 기운이 느껴졌다면 그건 잘 된 작품이야. 여러 모로 네가 배울 점이 많다고 보는데.


흠, 그런가요?


겨우 그런 그림을 두고 내가 배워야 한다니. 약간 빈정이 상했다.


적어도 열정이 보였다는 소리잖아.


그것은 할머니의 가시 박힌 충고였다. 왜 그 그림을 이토록 칭송하는지 모르겠다만 어쨌든 나는 잔뜩 심사가 뒤틀렸다. 그동안 내 그림에 대해 정성 어린 조언을 해주면서도 이런 식으로 할퀸 적은 없었는데.


열정 없는 그림은 세상에 없어요. 저 좀 이상하게 들리네요, 할머니.


열정 없는 그림은 독살스러운 숨조차 쉴 수 없어. 너도 숨이 팔딱팔딱 붙어있는 그림을 그려야 해. 내가 너를 꼬집자는 게 아니야. 그리고 어차피 그 그림은 돌려줄 때가 됐어. 주인이 곧 찾으러 올 테니 실랑이는 그만 하자.


주인이요? 그게 누군데요?


할머니는 더이상 대답해주지 않았다. 나는 아리송한 표정으로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할머니가 이토록 칭송할 정도의 그림이라면, 궁궐에 드나드는 회원 중 누군가가 주인이겠거니 하는 생각에 더는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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