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화백의 업적 같은 거 정리해둔 거랬어요. 금지된 이유는 그 화백이 이권에 반하는 행동을 했거나 뭔가 찍혔겠죠. 괘씸죄같은 거라고나 할까. 그런 일은 역사적으로도 가끔 있는 일이잖아요.
어쨌든 보여드리는 건 어렵지 않아요. 할머니가 누구한테 말할 것도 아니고. 그나저나 현관에 저 그림 왜 걸어두셨어요? 정말 이태석 화백을 아세요? 회원들 중에도 안 계시는데.
그림이 좋아서. 마음에 들어.
그건 할머니 생각이구요. 회원들 생각은 다를 거예요. 궁궐 모임 전에는 치워 두세요. 영 께름칙해요.
나는 마음에 든대두.
요즘엔 저런 기법 안 써요. 한 물 갔어요. 그러니까,
너도 별 수 없는 어린애구나. 유행이나 따지고. 저렇게 생동감이 느껴지는 그림은 의외로 흔치 않아.
생동감이요? 저는 왠지 살의가 느껴지는데요?
살의?
그게 그러니까, 귓바퀴가 꼭 블랙홀 같아요. 생존위협을 느꼈다랄까. 블랙홀에 빠지는게 좋은 느낌일 순 없잖아요.
좋든 나쁘든 그 정도의 기운이 느껴졌다면 그건 잘 된 작품이야. 여러 모로 네가 배울 점이 많다고 보는데.
흠, 그런가요?
적어도 열정이 보였다는 소리잖아.
열정 없는 그림은 세상에 없어요. 저 좀 이상하게 들리네요, 할머니.
열정 없는 그림은 독살스러운 숨조차 쉴 수 없어. 너도 숨이 팔딱팔딱 붙어있는 그림을 그려야 해. 내가 너를 꼬집자는 게 아니야. 그리고 어차피 그 그림은 돌려줄 때가 됐어. 주인이 곧 찾으러 올 테니 실랑이는 그만 하자.
주인이요? 그게 누군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