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_02> 봉사활동 왔어요!

by 랑애

아침 식사 시간이 끝났다. 아녜스 수녀는 평소보다 바쁜 손길로 기도책을 정리했다. 지하 식당에서 식사를 막 끝내고 올라오던 성민은 수녀가 손짓하는 것을 보자마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것은 이곳에 곧 방문자가 나타날 거란 의미였다. <꽃동네> 특성상 자주 있는 일이었지만, 성민은 늘 달갑지가 않다.


후.


역시나 한숨부터 나왔다.

수녀는 그런 성민을 보며 다 안다는 듯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베드로랑 동갑내기 친구들이 오네.


매번 방학마다 각 지역 단체에서는 이곳에 봉사활동을 온다. 주로 교사가 인솔해서 오는 동아리 위주의 방문이다. 봉사활동 점수가 대입에 반영되면서, 신청이 점점 늘고 있다. 꽃동네 측에서는 어떤 취지든지 감사한 걸음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성민의 생각은 달랐다. 또래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한창 학생 신분이어야 하지만 성민은 아니었다. 아무리 자발적 선택으로 이곳에 있다 해도, 학생들만 보면 왠지 자신이 초라해 보였다. 이듬해 봄이면 성민도 복학하겠지만 지금은 모든게 마뜩찮았다. 물론 아녜스 수녀도 이러한 성민의 심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또래를 피하려는 성민이 늘 안타까웠다.


학생들 좀 못 오게 하면 안 돼요? 봉사 점수 안 줘봐. 몇이나 오나.

성민은 또 빙퉁그러졌다.


사랑을 실천하러 오는 사람들을 수녀인 내가 막으라고? 너무하네, 베드로.


아녜스 수녀는 일부러 더 장난스럽게 웃었다.

의연한 대처였다. 이런 식의 대답은 성민을 입다물게 만든다.


아녜스 수녀님, 마당에 학생들 도착했습니다.


성민이 우물쭈물 하는 사이, 천정 스피커에서 안내방송이 나왔다. 수녀는 엘리베이터로 서둘러 향했다. 그러면서도 뒤돌아 성민에게 눈짓했다. 이번에는 제발 학생들과 터놓고 잘 지내보라는 무언의 표시였다.


쳇.


성민은 알아챘으면서도 입을 삐죽거렸다. 그리고 곧장 기도실 안쪽에 딸린 작은 방으로 갔다. 그곳은 성민이 지내는 방이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휴게실로 내주는 공간이기도 했다. 책상 위에 펼쳐진 공책을 덮어 책꽂이에 꽂았다. 스프링이 달린 연두색 공책인데, 성민의 유일한 보물이었다. 하루 일과가 빼곡히 적혀 있었고, 가끔은 일기를 써두기도 했다. 맨 뒷장에는 방명록 아닌 방명록도 있었다.


성민아, 힘 내. 널 만나서 반가웠어!

다음엔 학교에서 만났으면 좋겠어. 우리 학교로 와.

학교를 안 다닌다니 난 네가 부럽다.


맨 처음 누군가 그곳에 편지글을 적기 시작하면서 시작된 방명록이었다. 이번에는 어떤 글들이 적히게 될 지. 또래들의 방문이 반갑진 않아도 그들이 적어주는 방명록은 꽤나 재밌었다. 성민은 글이 주는 힘을 믿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잘 왔어요. 반가워요.


봉사활동을 온 학생들이 복도 끝에서 아녜스 수녀와 인사를 나누느라 시끌벅적했다. 성민은 거울을 힐끔 본 뒤 얼른 기도실을 빠져 나갔다. 복도에 선 학생들이 수녀와 이야기를 나누다 말고 성민을 일제히 쳐다보았다.


아, 이쪽은 김성민 베드로.
이 친구가 여러분이 할 일을 안내해 줄 거예요.
인사해, 베드로.

안녕하세요.


수녀의 소개에 성민은 무뚝뚝하게 인사를 했다.

이에 학생들은 서로 눈치를 살피다가 간단히 목례했다.

성민도 머쓱하게 살짝 목례하는 시늉을 했다.


김성민? 어머! 내 이름도 성민인데.
나랑 이름이 똑같네?


머리를 양갈래로 묶은 소녀가 대뜸 발랄하게 말했다. 얼굴에 주근깨가 박힌 소녀는 아까부터 성민을 보며 연신 생글거리고 있었다.


그래요? 이름 같은 친구를 만나서 베드로가 더 반갑겠네.


아녜스 수녀는 온화하게 미소 지었다. 소녀의 말 한마디에 복도 공기가 쾌활해졌다. 다들 긴장이 풀린 듯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하지만 성민의 생각은 달랐다. 학생들의 시선들도 불편하고, 대책없이 발랄한 소녀의 미소도 부담스럽기만 했다.


나랑 이름 같은 게 뭐가 저렇게 좋아? 얼굴도 제일 못 생겨가지고.


단지 이런 비뚫어진 생각을 갖고 있을 뿐이었다. 성민이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아녜스 수녀는 얼른 학생들을 휴게실로 안내했다. 정확히 열 명. 남학생 다섯 명과 여학생 다섯 명이었다. 이번에는 총 사십 명이 왔다고 들었는데, 나머지는 옆 요양원 건물과 부랑인 시설 건물로 이미 이동한 뒤였다. 성민은 학생들의 머릿수를 세며 그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때 이름이 같다던 소녀가 갑자기 휙 뒤돌았다. 그리고 성민을 향해 씨익 웃으며 손까지 흔들었다. 대책없이 밝은 성격에 무대포적인 친화력의 소유자가 분명했다. 소녀는 휴게실 문으로 사라질 때까지 눈웃음을 쳤다. 성민은 가만히 소녀를 보다가 문득 어떠한 생각이 떠올랐다.


어쩌면 저 못생긴 소녀와 엮일 수 있겠구나.

정신 바짝 차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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