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_01>1999년, 평성 꽃동네의 겨울.

by 랑애

경기도 평성에 위치한 꽃동네 요양병원.

간밤에는 흰 눈이 소도록하게 내렸다.

그 위에는 쓰러진 오토바이가 연신 엔진 소리를 내며 바퀴를 굴려댔다. 눈 속에 파묻혀 있어서 달리고 싶어도 더는 나아갈 수 없는. 성민은 그것을 보며 지난날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쌓인 눈을 보면 늘 떠오르는 환영이었다. 지우고 싶어도 돌이킬 수 없는 순간.


환영은 곧 성민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 사이 병원 창문에는 손바닥이 다닥다닥 붙었다.

잔뜩 성에가 낀 유리창 사이로 손바닥만 도드라지게 내놓은 그들은 성민을 궁금해했다. 평균 나이 75세. 대다수는 오갈 곳 없는 노인들이었다. 요즘 그들의 낙은 낭랑 18세 성민뿐이다.


뭘 봐?


새하얀 마당에 서서 성민은 병원 건물을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어딜 가든 자신을 따라다니는 시선들이 어지간히 불편하던 참이었다. 부담스러웠다. 더욱이 사춘기가 한창인 성민에게는 더더욱 짜증스러웠다.


성민의 목소리가 병원 건물을 휘감고 쩌렁쩌렁 울렸다. 그러자 손바닥들이 재빠르게 사라졌다. 건물 외벽에 걸린 시계는 어느덧 일곱 시를 향하고 있었다. 매우 추운 겨울 아침이었다. 성민은 손바닥들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 난 후에야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서둘러 병원 건물로 들어갔다.


눈 보고 왔구나?


아녜스 수녀가 성민에게 다정하게 물었다.

언제부터인지 이곳 평성에는 겨울눈이 정강이까지 찼고, 그럴 때마다 성민은 일찌감치 밖으로 나가 사색에 잠겼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른 수녀들이 물어도 입을 다문 성민이었다.


이거 가져가면 되죠?

이번에도 성민은 수녀의 질문에 답을 해주지 않았다. 뒤이어 나올 질문을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뻔한 질문들. 성민은 준비된 식판들을 보며 말을 돌렸다. 매번 식사 시간마다 각 병실을 순회하며 환자들의 식사를 돕는 일은 성민의 몫이었다.


응. 그래. 가져가렴.


아녜스 수녀는 늘 있던 일이라는 듯 성민의 무심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 그럴수록 성민을 위해 기도를 올릴 뿐이었다. 성민은 또래 아이들에 비해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익숙지 않았다. 아녜스 수녀는 이를 항상 안타깝게 여기고 있었다.


드르륵 드르륵.


성민은 음식이 담긴 수레를 요란하게 끌며 맨 앞 병실로 들어갔다.덟 명의 노인은 침대에 달린 보조 식탁을 펼쳐둔 채 성민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전 유리창으로 내다보았던 몇몇은 손바닥을 뒤로 숨기며 성민의 눈치를 살폈다. 혹시라도 자신의 손바닥을 알아챈다면 성민이 밥을 안 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성민이 병실 문 앞에 모습을 드러내자 그들은 듬성듬성 남은 이를 내보이며 웃었다. 대부분 뼈가 앙상하게 드러나 며칠은 굶은 것처럼 착각될 정도였다. 하지만 성민은 결단코 그들의 식사를 한번도 거른 적이 없었다. 대부분의 환자는 보호자가 없었고, 가끔 찾아오는 보호자가 있더라도 그들의 영양 상태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저 그들의 숨이 붙어 있는지만 확인하러 오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이곳은 일반 요양병원이 아닌 보호시설이었기에 그것은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었다.


성민은 맨 안쪽에 자리한 김상만에게 갔다.

늘 정해져 있는 순서지만 그는 보조 식탁도 펼쳐두지 않은 채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전 성민이 바깥눈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있을 때와 흡사한 눈빛이었다.


밥 안 먹을 거야? 또 이런다?


성민은 김상만의 보조 식탁을 강제로 올리며, 음식이 담긴 식판을 거칠게 올렸다. 그때까지도 그는 창밖만 바라볼 뿐 성민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굶어 죽을래? 이제 곧 동생 온다며.


성민은 김상만의 다리를 손으로 툭툭 쳤다. 남들이 보기에는 고작 열여덟 살에 불과한 소년이 칠십이 된 노인에게 버릇없이 군다며 용납하지 않겠지만, 이곳이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성민이기에 용서가 되는 행동이었다.


안 먹어. 굶어 죽을래. 내 동생, 이제 안 와.

왜. 왜 안오는데.

몰라.

금방 데리러 온다고 했다며.
그럼 밥 잘 먹고 기다려야지.

몰라. 안 와. 동생 안 와.


김상만은 손주 뻘이나 되는 성민에게 앙탈을 부려가며 토라졌다. 이를 달래려면 오늘도 삼십 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것이 뻔했다. 끼니마다 가끔 벌어지는 광경이었다.


배고파! 굶어 뒤질 노인네는 놔두고 나부터 줘!


입구에 자리한 양순자가 소리를 빽 질렀다.

그녀는 식탐이 굉장하여 먹을 것을 눈앞에 두면 침을 질질 흘리다가 마침내 이성을 잃어버린다. 그래서 밥주는 성민을 매우 좋아하고 예뻐했다. 그것은 오직 밥 때문인 것처럼 보였다.


양 여사 배고프대. 어쩔 거야. 진짜 안 먹어?

성민은 마지막 기회를 준다는 듯 김상만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그제야 김상만은 망설이며 우물쭈물하기 시작했다. 그의 눈동자가 좌우로 심하게 흔들렸다.


버린다?


성민은 김상만의 표정을 읽고는 일부러 심드렁하게 말을 내뱉었다. 곧 이어질 그의 태도를 충분히 예상하고 있던 터였다.


안 돼!


급기야 김상만은 '버린다'는 한 마디에 귀를 틀어막고 소리를 내질렀다.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말을 들었다는 듯 얼굴에 잔뜩 주름을 만들며 몸을 웅크렸다. 새빨개진 그의 두 귀가 열을 가득 내뿜느라 모세혈관을 확장시켰다. 곧 빵 하고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누가 김상만 할아버지 버린대? 밥 버린다고 밥!


성민이 답답하다는 듯 김상만을 보고 되레 큰소리를 쳤다. 김상만의 기분을 배려해서 조금은 자상하게 대해줄 법도 하지만 퉁명스러운 성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늘 같은 레파토리에 이미 이골이 난 상태였다.


김상만은 잠시 눈을 끔뻑이더니 수저를 들었다. 그리고 황급히 밥을 국에 말아 떠먹기 시작했다. 성민이 버리기 전에 모두 먹어치워버릴 심산이었다. 미역 줄기들이 부랴부랴 그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러다 사레가 걸렸는지 컥컥대며 물을 찾아 마시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 배고프다고! 굶겨 죽일 셈이야?


아까부터 그들을 지켜보던 양순자는 어느새 눈이 쑥 들어가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차례가 맨 마지막이라는 것이 늘 불만이었다. 이에 성민은 재빨리 밀린 식판들을 나눠줬다.


체하지 않게 천천히. 음식은 남기면 벌 받아.


그들의 대부분은 오갈 곳 없어 온 자들이었기에 유독 벌 받는다는 말에 민감했다. 이곳에서 쫓겨나는 것이 그들에게는 가장 큰 공포였다. 성민은 치사하게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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